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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약 짜는 거로도 싸우는 게 결혼

이혼일기, 세 번째 상담 episode 1.

by 검정멍멍이 Mar 28. 2025




나는 치약을 아무렇게나 짜도 되는 사람이었고 그는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치약을 무심히 눌러 쓰다가 불편해지면 그제야 울퉁불퉁한 아래 부분을 밀어 올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번 한치의 울렁임도 없이 입구 가까이 치약이 꽉 채워져 있어야 했다.  



그냥 나는 자유롭게 치약을 쓰다가 때가 되면 정리하는 게 편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처럼 쓰면 계속 신경이 쓰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불편하게 했다.



치약 짜는 거로도 싸우는 게 결혼이라며, 내가 결혼을 언급할 때마다 인생 선배들이 해줬던 얘기는 결혼 생활 내내 나를 불편하게 하는 현실이었다.



그와 함께 사는 동안 치약은 사소한 문제였다. 사소했지만 단순하지는 않았다. 마치 보일 듯 말 듯 지독하게 손에 박혀 있는 가시 같았다. 가시를 진지하게 뽑아내려 하면 피를 볼 것만 같았다.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려 하면 우리 사이가 영영 심각해질 것만 같았다.


인생은 생각보다 단순할텐데...
우리의 치약은 "진지하게 사는 것과
심각한 것을 '늘' 착각하게" 만들었다.




띵동. 띵동.


    ─네, 들어오세요!


끼이익. 띠디딕.

문을 열고 들어가 밝게 인사했다. 세 번째 만남에는 조금 더 씩씩해진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동안 어떠셨어요?


    ─요즘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있어요.


띠리링, 띠리링. 기본 벨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바쁩니다.' 하며 급히 전화를 끊는 걸 보니 광고 전화 같았다.  



    ─뭘 정리하시려고요?
 

    ─사진이나 아니면 제가 가지고 있던 파일들이요. 외장하드 3개에 흩어져 있는 것들을 정리하지 못해 좀 어지러운 상태라서요. 이게 나이를 먹어갈수록 쌓이는 것만 생기고 뭔가 정리되지 않는 기분이 계속 오랫동안 이어졌거든요. 그동안 퇴사를 꽤 많이 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기러기처럼 계속 살다 보니까...
 
    ─이직을 자주 하셨어요? 몇번 하셨어요?

 
    ─예. 결혼하고 처음부터 주말 부부를 했어요. 저는 강릉에 회사가 있었고요.

 
    ─그 회사는 결혼하실 때까지 계속 다녔던 거고?

 

    ─네. 결혼한 이후에도 다녔고 애가 생겨서 서울로 올라오게 됐죠.

    ─애가 생기고 배가 불러오기 전쯤 제가 정리하고 올라가는 게 현실적일 것 같았어요. 그때 이직 한 번 했었고 그러고 나서 거기에 이직한 지 한 달 만에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져서 이혼하려고 퇴사를 한번 하게 됐고요. 그 이후로도 한... 세 번 정도 이직을 했던 것 같아요. 계속 이직을 많이 했었어요.



예전부터 난 사람을 압박하고 조급하게 만드는 환경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어릴적 서울에 놀러가면 느끼던 답답하고 삭막한 기분을 매일 느끼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강원도를 떠나 산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한참 취업을 위해 발버둥치던 시절, 훨씬 좋은 조건과 누구나 다 아는 근사한 회사의 입사 기회도 마다하고 굳이 강원도에 머물러 있던 내가 서울 사람과 결혼해 살고 있으니... 참 운명인지 인연인지 싶은 생각이 들때면 인적이 드문 조용한 편의점을 찾아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렇게 이따금 헛웃음 지으며 털어 놓는 캔맥주 한 잔이 소중한 위로가 되었다.

 



    ─우리가 두 번 만났잖아요. 두 번 만나서 여기서 하신 거나 아니면 우리가 나눴던 얘기 중에 조금 다가오거나 다루고 싶은 게 뭐가 있었나요?

 

    ─다가오거나 다루고 싶은 것?
 

    ─네. 아니면 좀 의미 있게 들렸거나, 의미 있게 얘기하셨거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하고 지난 시간에 대화하면서, "아이가 참 무서웠겠다."라고 선생님이 하셨는데, "무섭진 않죠."라고 제가 대답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아... 아버지가 선생님이 집을 뛰쳐나가니까 화내며 부르셨던 상황?

 
    ─네. 그 부분에 대해 저 자신에게 물어봤어요.

    ─왜 자꾸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괜찮은 척하고 얘기하는 버릇이 나오지? 내가 왜 그렇게 할까? 안 괜찮잖아. 안 괜찮으니까 네가 괴로워하고 있는 거잖아. 그리고 그때 무서웠을텐데 왜 선생님한테 '그때 무섭진 않았어요' 라고 말 했을까 궁금했어요.

    ─'세월이 흘러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때가 너무 괴로우니까 그때의 기억을 잊고 살기 위해 일부러 노력했기 때문에 희미해졌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요. 그렇게 자신과 얘기하다 보니까 '무서웠다'라는 감정이 맞는 것 같았어요.


    ─그러셨군요.


    ─또... 지금 여기 들어오기 바로 전에 엄마랑 전화를 하고 왔어요.


    ─어떤 전화요?


    ─때마침 "날씨가 춥네 잘 지내니?" 이렇게 문자를 보내셨더라고요. 제가 좀 별로 말이 없거나, 이상하다 싶으면 엄마가 뜬금없이 문자를 보내서 안부를 묻곤 하시죠.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엄마의 문자를 보고 뭔가에 홀리듯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물었다.



나 옛날에 왜 아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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