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같은 김재규

by 김작가a

머리를 쓰다듬던 손

그는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군복을 입고 병참기지를 찾을 때마다, 나는 어린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늘 미소를 지었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넌 장군감이야. 눈빛이 살아 있어.” 그 말은 내 삶의 첫 번째 훈장이었다. 나는 그 말을 품고 자랐다. 세상이 나를 꺾을 때마다, 그 손길을 떠올렸다. 따뜻했고, 단단했고, 믿음을 주었다. 그는 김재규였다. 중앙정보부장이었고, 박정희의 측근이었으며, 결국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사람이었다.

조부의 땅, 김재규의 발걸음

우리 조부는 11사단 병참기지 부지하사였다. 그 땅은 국가에 기부되었고, 그곳은 군의 심장이 되었다. 김재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종종 감사의 인사차 병참기지를 찾았고, 조부와 담소를 나누었다. “선생님 덕분에 제가 군단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조부는 웃었고,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장면은 내 기억 속에 박제되었다. 권력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한 노인의 헌신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유신의 그림자

그는 유신의 심장부에 있었다. 박정희의 곁에서, 차지철과의 갈등 속에서, 그는 점점 침묵을 배워갔다. 그러나 그 침묵은 내면의 분노였다. 그는 민주주의를 믿었고, 국민을 두려워했다.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가끔 두렵습니다.” 그 말은 예언이었다. 유신의 그림자가 짙어지던 시절, 그는 이미 그 어둠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침묵했다.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때가 왔을 때,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종친회장은 고문사로, 고모부는 대령에서 옷을 벗었다. 나는 육사 입시에서 소외돠었다. 그 외 수많은 희생자들도 줄을 지었다.

궁정동의 총성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 만찬은 평온했다. 박정희는 술을 마셨고, 차지철은 경직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김재규는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권총이 있었다.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박정희는 쓰러졌고, 차지철은 저항하다 함께 쓰러졌다. 궁정동의 저녁은 피로 물들었다. 그 총성은 한 시대를 끝냈고, 또 다른 시대를 열었다.

혁명인가, 반역인가

체포된 김재규는 침착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민주주의를 위해 쐈다.” 검찰은 그를 국헌문란죄로 기소했다. 언론은 그를 반역자로 몰았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주장했다. 자신은 혁명자라고. 자신은 국민의 편이라고.

법정에서 그는 외쳤다. “자유민주주의는 3,700만 국민이 갈구하는 것이다!” 그의 말은 기록되었고, 그 기록은 후일의 민주화운동가들에게 영감이 되었다.

세계사의 파문

김재규의 총성은 단지 한국만의 일이 아니었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미국은 당혹했고 일본은 긴장했다. 박정희는 반공의 상징이었고, 그의 죽음은 동북아의 균형을 흔들었다. CIA는 보고서를 썼다.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은 지역 안보에 위협이 된다.” 일본 외무성은 긴급 회의를 열었다. “한국의 민주화는 일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김재규는 세계사 속에서, 작은 나라의 큰 파문을 일으켰다.

12·12의 그림자

박정희의 죽음 이후, 권력은 흔들렸다. 전두환과 신군부는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김재규는 그 혼란 속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말했다. “내가 쏜 총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군은 그것을 권력 찬탈의 기회로 삼았다.” 그의 말은 예언이었다. 5공화국의 탄생, 광주의 비극, 그리고 1987년의 함성. 김재규는 죽었지만, 그의 총성은 살아 있었다.

사형장의 마지막 말

1980년 5월 24일, 김재규는 사형당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변호인은 말했다.

“그는 끝까지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은 역사 속에 남았다. 그의 총성은 독재를 끝냈고, 민주화를 예고했다.

나의 기억, 그의 흔적

그가 떠난 후, 병참기지는 조용해졌다. 조부는 더 이상 그를 기다리지 않았고, 나는 그를 그리워했다. 그의 손길, 그의 말, 그의 눈빛. 그것은 내 삶의 일부였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기억을, 그날의 병참기지를, 그가 남긴 흔적을. 사람들은 그를 반역자라 했지만, 나는 그를 기억했다. 아버지 같은 사람으로, 따뜻한 손을 가진 사람으로.

땅 위의 침묵

그 병참기지에는 이제 법원이 들어섰고, 시청도 자리 잡았다. 공공의 이름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그 땅은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사용료는 단 한 푼도 지급되지 않았다. 조부가 국가에 기부한 그 땅은, 감사 대신 침묵으로 돌아왔다. 나는 수십 년간 소송을 벌였다. 서류는 쌓였고, 재판은 반복되었다. 정부는 응답하지 않았고, 법은 느리게 움직였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의 문제였고, 정의의 문제였다. 그 땅 위에서 김재규 장군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조부는 국가를 믿었다. 그리고 나는 그 믿음의 흔적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리고, 나의 민주화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병든 몸으로 글을 쓴다. 외로운 마음으로 싸운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는다. 김재규의 총성과 조부의 헌신, 그리고 나의 기억은 하나의 이야기로 엮여 있다. 민주주의는 선언이 아니라 과정이다. 나는 그 과정을 살아가고 있다. 법정에서, 광장에서, 글 속에서. 그리고 나는 다시 선언한다. “나의 민주화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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