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범인가, 민주주의 설계자인가

by 김작가a

김재규 재심, 45년 만의 역사적 반전

서울고등법원이 2025년 2월 19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궁정동 안가에서 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사형당한 지 45년 만의 일이다. 대법원은 5월 13일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하며 재심 개시 결정을 확정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10·26 사건’은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2.

사법부의 치욕, 다시 법정에 서다

김재규는 1979년 12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80년 5월 24일 형이 집행됐다. 당시 그는 군사재판을 통해 내란 목적 살인죄로 기소됐으며, 재판은 17일 만에 졸속으로 마무리됐다. 변호인단은 “재판이 아닌 개판이었다”고 표현하며, 당시 보안사령부가 재판부에 ‘쪽지’를 전달하며 개입한 정황까지 제시했다. 이번 재심은 단순한 개인의 명예회복을 넘어, 대한민국 사법부가 과거의 오류를 바로잡고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당시 수사 과정에서 김재규가 수사관들로부터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며, 절차적 문제와 인권 침해가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비상계엄과 군사재판의 위헌성

김재규 측은 첫 공판에서 “1979년 10월 27일 비상계엄은 위헌·위법했고, 그 이후 이어진 수사와 재판 또한 위법했다”며 “내란 목적 살인은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비상계엄의 위헌성 △민간인에 대한 군사재판의 부당성 △내란 목적 부재 등을 항소 이유로 제시했다. 조영선 변호사는 “당시는 전시·사변에 준하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비상계엄과 포고령은 헌법·계엄법에 반한다”며 “보안사와 군 사법경찰은 민간인인 피고인을 체포할 수 없었음에도 직권남용 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또한 “피고인은 졸속으로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도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했고, 공판조서 열람도 허용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유신체제 종말인가, 정권 찬탈인가

김재규의 행동은 오랫동안 ‘정권 찬탈을 위한 반역’으로 규정돼 왔다. 신군부는 그를 내란범으로 몰아붙였고, 그의 사형은 정권 교체의 서막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재심은 그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김재규는 최후 진술에서 “각하는 갈수록 애국심보다 집권욕이 강해졌다”며, 국민의 불행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족과 변호인단은 김재규의 행동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결단으로 보고 있다. 여동생 김정숙 씨는 “오빠가 막지 않았다면 국민 100만명이 희생됐을 것”이라며, “김재규의 동생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재판은 대한민국 사법부로서도 치욕의 역사일 것”이라며, “이번 재심은 사법부가 스스로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계의 재평가, 교과서 서술도 바뀔까

학계와 언론은 김재규의 행동을 두고 여전히 ‘반역’과 ‘혁명’ 사이에서 평가를 고민하고 있다. 재심 결과에 따라 김재규 개인의 명예 회복뿐 아니라, 10·26 사건과 유신체제 종말, 그리고 신군부의 정권 찬탈 과정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이는 후대의 역사 인식과 교과서 서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김재규의 총성이 유신체제를 끝냈다는 점에서, 그의 행동은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한다. 반면 일부 보수 진영은 “국가원수를 살해한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시대와 관점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민주주의의 설계자, 혹은 파괴자

김재규는 단순한 정보기관장이 아니었다. 그는 유신체제의 내부에서 그 모순을 목격했고, 결국 총을 들었다. 그의 행동은 민주주의를 향한 설계였는가, 아니면 권력욕의 발현이었는가. 이번 재심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그는 재판에서 “나는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행동했다”고 말했다. 그의 문장은 선언이었고, 기도였으며, 저항이었다. 만약 재심에서 내란 목적이 부정된다면, 김재규의 행동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의거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커진다.

역사의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김재규 재심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방향성과 사법 정의의 기준을 되묻는 질문이다. 45년 전, 한 사람의 총성이 유신체제를 끝냈고, 또 다른 체제가 시작됐다. 이제 우리는 그 총성의 의미를 다시 묻고 있다. 역사는 늘 재판 중이다. 김재규라는 이름은 그 재판의 중심에 있다. 내란범인가, 민주주의 설계자인가. 그 답은 이제 법정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기억 속에서 다시 쓰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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