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못미 코지
웰시 코기의 심각한 수준의 털 빠짐 탓에 우리 부부도 멘털이 탈탈 흔들린 적이 있다.
방금 청소기를 돌렸지만 코지가 지나간 자리엔 어김없이 털들이 우수수.
지금도 길고 뻣뻣한 두꺼운 털과 얇고 날리는 이중모가 집안 곳곳에 산재해 있다.
1년이 지나면서 심해진 털 빠짐에 우리 부부는 코지의 털을 밀기로 합의했다.
결혼 전 친정에서 키우던 시츄가 미용을 하고 온 날이 기억난다.
매번 가위 미용만 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도 지치셨는지 시츄의 털을 빡빡 밀어달라고 요청하셨다.
미용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시츄를 데리러 내가 갔다.
샵 안으로 들어갔지만 내가 찾는 우리 시츄는 보이지 않고 작은 울타리 안에 못생긴 한 아이가 지쳤다는 듯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희 시츄 미용 끝났다고 연락받아서 왔는데요."
"네. 미용 다 끝났어요. 데려가셔도 돼요."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시츄를 주실 생각이 없으셨고,
잠시 주춤거리던 내가 다시 못생긴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알게 됐다.
저 울타리 안의 못생긴 아이가 우리 시츄 강아지라는 것을...
"시... 츄... 아... 얘가 저희 애..."
"네~ 데려가시면 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 귀엽던 아이가 사라지고 비쩍 말라 눈만 동그란, 못생겨진 아이를 안고 샵을 나와서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우리 강아지도 못 알아볼 정도로... 못생겨 지다니!
"강아지도 다 털발이었다!"
웰시코기는 미용을 하지 않아도 된다. 꾸준히 빗겨주기만 해도 털이 나고 빠지고를 반복하는 아이다.
식빵같이 동그란 엉덩이를 만들어 주기 위해 엉덩이 미용만 가위컷을 해주는 분들이 계실 뿐이다.
우리는 심한 털 빠짐이 고민이었던지라 싹- 밀어 보기로 했다.
남편이 코지를 맡기고 찾아오기로 했고, 나는 미용을 맡기기 전 시츄와의 에피소드를
말해주며 못 알아볼지 모르니 놀라지 말라고 웃으며 귀띔했다.
남편은 내 말을 그저 농담으로 알았는지 웃어넘겼다.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자 역시나 '털발'이 사라진 못생겨진 코지가 날 반겼다.
털 옷이 사라지고 이발기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평소보단 의기소침하게 다가왔다.
아니면 혹시, 자신도 못생겨진 걸 알아서 자신감이 사라진 걸지도...
남편도 당황했다는 듯 말했다.
"시츄 얘기 미리 안 듣고 갔으면 코지 못 알아볼 뻔했어! 내 예상보다 훨씬 못 생겨서 우리 코지 아닌지 알았어."
남편의 말에 나도 코지를 지그시 보며 동의했다.
털발이 이렇게 중요하다.
'사람은 머리발, 강아지는 털발'
그 이후로도 한 번 정도 더 털을 밀었지만 집에서 얼굴만 빼고 셀프미용을 시켜줬다.
근데 그건 그거대로 웃긴 모습이었다.
다리는 너무 짧고 머리가 너무 큰 웰시코기가 탄생했다.
집에서 밀어준 탓에 털 결도 들쑥날쑥...
우린 그 이후 아직까진 한 번도 코지의 털을 밀지 않았다.
현재는 코지의 빠지는 털에 대해 자포자기한 상태이며 털과 함께 사는 인생,
코지를 위한 집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털을 밀어버릴 계획이 전혀 없다.
또, 웰시는 털을 밀고 나면 두 번 다시 예쁘게 안 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다행히 두 번 다 예쁘게 자라기는 했지만.
하지만, 털 때문에 강아지들을 파양을 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파양은 절대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기에 (한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으로 아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니 입양부터 신중했으면 좋겠다.) 털이 고민이라면 저렇게 털을 밀고 서라도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털발도 있지만, 강아지들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은 언제나 한결같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