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와 한국의 문화 비교 체험 극과 극

김밥 같은 다민족 이민 생활

by 티나


1. 지구 반대편 학교의 수업에서 ‘아무거나’ 병을 고치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공립 고등학교는 9학년에서 12학년 과정인데, 나는 11학년으로 편입을 했다. 매 학기는 9월에 시작되는데, 11학년 1학기 내가 듣게 될 과목으로는 수학, 화학, 지리, 생물, 음악, ESL

(English as Second Language)이었다. 캐나다는 학생들이 각자 해당 수업을 듣는 교실로 찾아가야 하는 대학교 같은 시스템이다. 교실을 계속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옆에 앉는 친구는 매번 바뀌었고 마주치는 친구들도 매번 달랐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의 책들은 대학교 서적 같은 두꺼운 책들이었는데, 학기가 시작되자 중고 책들을 선생님들이 나누어주셨다.


자유복을 입고, 여러 수업을 각각 다른 장소에서 듣고, 대학교 언니 오빠들이 들고 다니는 전공 서적 같은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는 내 모습이 좀 어른스러운 기분을 주기도 했다.


과목마다 분위기는 천차만별이었다. 음악 시간 같은 경우에는 음악과 예술을 좋아할 것 같은 힙합 옷차림의 학생들이 미적거리며 수업에 와서 졸기도 하고 자주 결석을 하기도 했다. 반면, ESL 수업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와 같은 학생들에게 적응의 필수 코스였기 때문에 수업 분위기가 매우 진지했고 수업 참여도가 높았다.


캐나다 학교의 수업 방식은 대체적으로 한국과 많이 달랐다. 선생님이 지식을 전달하는 주입식 수업 진행이 흔한 한국에서와 다르게, 캐나다에서는 선생님이 질문을 많이 던지고, 학생들에게 발표와 토론을 장려했다. 수학처럼 정답이 딱 정해져 있는 질문들은 한국에서 학교 다녔던 나에게 너무나 익숙했지만, 주관적인 생각을 말하거나 글로 써야 하는 과제들은 참 곤란했다.


특히 책을 읽고 주제를 정해 에세이를 쓰는 숙제가 많았는데, 비교적 늦게 유학을 온 나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결국 영어 튜터를 구해서 영어 공부를 집중적으로 더 해야 했다. 나는 한 편의 에세이를 열 번 가까이 고친 후에야 겨우 제출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문해력과 창의력이 부족한 편이었던 나는 캐나다에서 에세이 숙제를 겨우겨우 해 낼 때마다 ‘아. 책을 더 많이 읽어둘걸!’ 하는 후회를 자주 했다.


어릴 적 내 별명은 ‘아무거나’였다. 누군가가 이게 좋아, 저게 좋아라고 물어보면 늘 ‘아무거나!’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묻는 사람도 드물었고, 그런 질문을 받으면 너무 낯설어서 대답조차 어려웠다.


유학은 내가 처음으로 스스로 원했던 선택이었다. 그런데 막상 캐나다에 와보니, 수업과 과제는 내 생각을 묻는 질문들로 가득했고, 나는 그 ‘아무거나’ 병을 고치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내가 한 선택 때문에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줄까 눈치를 보거나, 비난받을 일도 줄어들었다. 캐나다는 내 생각을 표현해도 괜찮다고 처음으로 느끼게 해 준 나라였다.



2. 다민족 전시장 그리고 충격의 카페테리아


학교에는 정말 다양한 배경의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백인, 흑인, 아시아인으로 보여도 실제로는 유럽, 남미, 동남아, 그리고 혼혈까지 정말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있었다.


학교에서 종종 작성하던 서류에는, Ethnicity (민족성)을 묻는 항목이 있었는데, 단일 민족 국가인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게는 참 신선한 질문이었다. 내가 체크할 수 있는 항목은 Asian이었고, 그 외에도 White,

Hispanic, Black, First Natives (흔히 말하는 북미

인디언), Native Hawaiian or Pacific Islander

(더 락이나 마우이 같은 폴리네시안), 또 다양한 민족성이 결합된 혼혈인들이 해당되는 Multiracial 이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것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민족만큼이나 옷차림, 말투, 영어발음, 거기에 더해 점심에 싸 오는 음식까지 달랐다. 마치 인종 전시장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학교 생활 중 가장 충격적인 공간은 카페테리아였다.


캐나다 학교에서의 나의 첫 점심 메뉴는 김밥이었는데 혹시 혼자 점심을 먹게 될까 걱정도 있었다. 다행히

ESL 수업에서 만난 불가리아에서 온 알렉산드라라는 친구와 함께 먹기로 했다.


카페테리아는 딱딱한 패스트푸드점 의자가 놓인 넓은 공간이었고, 나와 내 친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같은 인종끼리, 같은 언어를 쓰는 친구들끼리 무리 지어 앉아있었다.


한쪽에서는 감자튀김, 치킨 너겟, 햄버거가 조리 중이었고, 과일 주스, 탄산음료, 머핀, 과자, 사탕, 초콜릿 같은 군것질거리가 판매되고 있었다. 줄을 서있는 학생들과 교직원들, 선생님들도 꽤 많았다.


그 모습을 보니 한국의 균형 잡힌 급식이 문득 그리워졌다. 그래서 엄마가 싸주신 김밥이 유독 감사하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알렉산드라는 햄 한 장, 치즈 한 장을 넣은 곡물 식빵 샌드위치를 손으로 먹었고 나는 햄과 시금치, 단무지, 우엉조림, 계란을 넣은 김밥을 젓가락으로 먹었다. 그녀는 김밥이 뭔지 물었고, 나는

“Kimbap”이라고 대답하며 하나 건넸다. 일본의 스시와 비슷하다고 설명했지만, 그녀는 한 입 먹고는 다시 달라고 하지 않았다. 입맛에 잘 안 맞았나 보다.


3. 토론토는 김밥 같은 도시


요즘에는 미국 마트에서 김밥을 보는 것이 그리 낯설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미국의 트레이더죠라는 마트에서는 한국산 냉동 유부 김밥이 너무 인기가 많아서 1인당 수량을 제한한 적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내가 토론토에 있던 2006년, 김밥은 서양에서 아직 생소한 음식이었다.


소박하고 대중적인 한국 음식인 김밥.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카페테리아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김밥 속 재료처럼 느껴진다. 김밥 재료 속 다양한 야채처럼 서로 다른 민족들, 그리고 그 재료들 모두를 감싸는 김처럼, 각양각색 민족들을 포용하는 캐나다. 하지만 동시에, 재료들이 완전히 섞이지 않고 같은 재료들끼리만 모여있던 모습도 역시 캐나다였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내가 김밥의 재료 중 하나로, 이렇게 오랜 시간을 살고 있게 되리라는 것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이야기들은 한국 시간으로 매주 일요일 연재됩니다. 다음 주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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