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글은 캐나다에서 만난 여러 인연들을 나누고자 한다.
1. 마크 매니저와 쥐, 그리고 빈대
우리가 토론토에서 살던 100년 넘은 아파트는 지어진 후 페인트칠 이외에 리모델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 같은, 아주 낡고 오래된 건물이었다. 1층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늘 났고, 엘리베이터는 느리고, 덜덜덜 소리가 났다. 마크는 우리 아파트의 매니저였다. 1층에 마크 가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아파트 렌트비부터 각종 보수, 수리 문제는 마크가 맡아 해결하는 듯했다. 마크는 키가 큰 백인이었는데 영어 발음이 특이해서 물어보니, 영국에서 아들 둘, 부인과 함께 이민을 왔다고 했다. 마크의 부인은 인도 여자분으로 인도 전통 의상인 사리를 몸에 감고 다니셨다.
마크는 그렇게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았지만,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 크게 도와주지 않았다. 기껏해야 전구를 갈아주는 일 정도였다. 처음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꼭대기 층인 7층이었는데 이사 온 지 반년 정도가 지나자 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엄마의 말씀으로는 엄마 어릴 때 한국에서 쥐를 보는 것이 흔했다고 하시는데, 난 그때까지 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우리 집에서 쥐를 처음 발견한 건 나였다. 겨울 어느 날, 식탁에서 엄마와 저녁을 먹고 있는데 냉장고 쪽에서 “찍찍찍~” 소리가 났다. 무슨 소리 인가 해서 고개를 돌려보니, 현관 쪽으로 꼬리 달린 회색 동물이 지나가고 있었다.
“으악! 쥐다!”
쥐를 본 그날 밤, 급한 대로 쥐덫을 마트에서 사서 쥐가 나왔던 냉장고 뒤 쪽에 두었고, 다음 날 아침 마크에게 짧은 영어로 우리 집에 쥐가 있으니,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마크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쥐가 나왔다고? 아… 그랬구나. 쥐는 우리들의 친구이지. 쥐 덫을 사다가 놔봐. “
쥐가 친구라니… 마크가 우리에게 전해준 말은 이 말이 전부였다.
여러 번 관찰한 결과, 쥐는 라디에이터를 통해서 아파트로 들어오는 듯했다. 결국 추운 겨울에도 라디에이터를 끄고 나올만한 구멍을 다 테이프로 막아버리고, 이동식 히터를 방에 켜고 지냈다. 그럼에도 매일 쥐가 찍찍대는 소리가 들렸고, 똑똑한 쥐는 쥐덫에 속지 않았고, 밤마다 엄마와 나는 괴로웠다. 어느 밤에는 바닥에서 요를 깔고 주무시는 엄마의 팔 위로 쥐가 스르륵 올라 다녀서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신 적도 있다.
결국, 우리는 마크에게 다른 층에 빈 아파트가 있으면 제발 옮기고 싶다고 했다.
3층에 빈 방이 있다고 방을 보여주었는데, 저층이라 좀 어두웠고, 바닥은 더 오래되어 보였지만, 쥐만 피할 수 있다면야!
3층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짐도 별로 없었고, 같은 건물이었지만, 이사는 참 고되었다. 무거운 것들은 문방구 아저씨한테 부탁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3층으로 이사 가자 쥐는 정말 보이지 않았다.
휴!
그런데, 이사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등에 두드러기가 여러 곳에 생겼고 가려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알레르기약을 먹어도 없어지지 않았다. 한인 타운이 있는 크리스티역에 가서 한인 의사를 찾아갔는데, 피부 상태를 보더니 알레르기는 아닌 것 같고 빈대에 물린 것 같다고 했다.
뭐라고요? 쥐에 이어서 빈대라니!
이 사실도 마크에게 다음 날 알렸다. 쥐만큼 친근한 동물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역시 마크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부자리를 잘 말리고 빨라고 했던 것 같다. 엄마가 내 이부자리를 큰 쓰레기봉투에 넣고 햇빛 비치는 베란다에 며칠을 두었다가 뜨거운 물에 빨고 내가 자던 침대도 다 소독했다.
지금 만약에 이런 일이 렌트한 아파트에 생긴다면, 쥐 퇴치 업체, 빈대 퇴치 업체, 소독 업체를 불러달라고 아파트 매니저에게 요구했을 것이다. 당연히 세입자가 아파트에 요청할 수 있는 사항이다. 서툰 것 투성인 우리 모녀의 캐나다 유학 생활에 친절하게 대해주며 도움을 주었던 많은 캐나다 인들 중에, 마크는 유일하게 얄미운 캐릭터로 기억된다.
2. 전차 기사아저씨
이 아저씨를 만난 날은 엄마와 내가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11학년 2학기 봄방학 즈음이었던 것 같다. 30도가 넘는 날씨에도 나무 그늘만 가면 시원했던 토론토의 여름을 지나고, 누르스름하게 변한 단풍잎들과 새파란 하늘을 원 없이 보여주는 토론토의 짧은 가을, 또 추수감사절이 있는 10월 중순 이후부터 매우 춥고, 눈이 많이 오는 토론토의 겨울을 마침내 지나서 눈이 도대체 언제 그만 오고 봄이 오려나 지쳐갈 무렵, 정원들을 분주하게 가꾸는 이웃집들을 보며 봄이 코앞에 드디어 왔음을 실감하게 될 시기였다. 며칠 전에도 눈이 살짝 오기는 했지만, 봄의 햇볕은 따뜻한 온기를 세상에 퍼트리는 중이었다.
봄을 맞아 엄마와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토론토에는 한인 여행사들이 꽤 있는데, 한인 신문에 광고된 천섬 (Thousdand Islands) 당일 여행 코스를 예약했다. 천섬은 1800여 개 이상의 섬으로 이루어진, 캐나다 온타리오주와 미국 뉴욕주의 국경을 따라 흐르는 세인트 로렌스강에 위치해 있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싸우전아일랜드 드레싱이 이 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강 위에 떠있는 천 여개 이상의 섬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니! 사진을 보니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바다가 아닌 강이라는 점은 달랐지만, 마치 한국의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같았다.
엄마와 나는 배낭에 짐을 챙겨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푸르스름하게 동이 틀 무렵이었나? 밖에서 큰 사이렌 소리가 나서 잠에서 화들짝 깼다.
‘삡! 삡! 삡!’
가끔 밤에 사이렌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 또 크게 들린 적은 처음이었다. 문을 열어보니 연기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복도에서 사람들이 걸어 내려오는 소리가 쿵쿵 쿵쿵 들렸고, 창문 밖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잠옷 차림으로 나와있었다.
“엄마! 빨리 나가야 돼! 일단 여권, 핸드폰, 노트북, 지갑 이 정도만 챙기고 얼른 서둘러서 우리도 대피하자!”
중요한 것들만 급하게 챙기고 잠옷 차림으로 엄마와 나는 아파트 정문으로 나가있는 다른 주민들과 함께 서있었다. 새벽 5-6시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거의 모두 잠옷 차림,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지갑은커녕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지만, 애완동물들을 안고 있었다. 소방차 여러 대가 순식간에 출동했고, 소방 대원들이 아파트 문으로 들어갔다. 7층 아파트 건물에 모든 창문을 봐도, 연기나 불이 창문 밖으로 나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문제일까? 우리 집이 혹시 다 타버리는 건 아닐까? 아 그리고 오늘 엄마와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여행은 못 가겠군. 무사히 우리 집에 다시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무리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아직 쌀쌀한 새벽이라 우리 모녀는 점점 몸이 차가워졌다. 윗니와 아랫니가 탁탁 부딪히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서 있었을까? 우리 아파트 앞으로 지나가는 빨간 전차 기사 아저씨가 전차를 우리 아파트 앞에 세우고 문을 열었다. 전차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며,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많은 주민들을 안으로 불렀다. 그 뒤에 오는 전차 아저씨도 전차를 철로에 세우고 문을 열어 아파트 주민들을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전차 2대 정도가 추위에 떨고 있는 우리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철로 위에 서 주었다. 기사 아저씨는 추위에 떠는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전차 문을 닫고 히터도 틀어주셨다. 기사 아저씨의 친절한 배려에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더 기다렸던 것 같다. 들어갔던 소방 대원들이 밖으로 나오면서 주민들에게 이제 들어가도 된다고 말해줬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정확하게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어떤 집에서 연기가 많이 나서 화재 경보음이 울린 거였는데, 연기를 빨아들이는 기계를 사용해서 연기를 제거했고, 여러 안전 점검을 한 결과 화재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우리가 집으로 다시 들어간 시점은 8시쯤이었다. 여행사와 집합하기로 한 9시까지 1시간이 남아있었다. 기적적으로 재빠르게 준비를 하고 우리 모녀는 9시 집합 장소까지 무사히 잘 도착하여 아름다운 천섬 여행을 잘 다녀올 수 있었다. 추위에 떠는 사람들을 위해 전차를 세워주신 기사 아저씨, 출근 시간이 곧인데 정차된 전차들 때문에 불편했을 다른 주민들, 새벽에 재빠르게 출동해 준 10여 명의 소방 대원들은 우리 모녀의 행복했던 천섬 여행을 가능하게 해 준 천사들이었다.
3. 아기 할아버지
아기 할아버지는 쥐를 피해 3층으로 이사 간 우리 집에서 건너편에 사셨던 할아버지의 별명이다. 대화는커녕 굿모닝, 하이, 헬로 이외에는 다른 말을 한 적도 없는 이웃 사이였지만, 주름이 많은 흰 얼굴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아기 할아버지를 보면 우리는 늘 반가운 마음이었다.
할아버지는 흰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으신 가지런한 얼굴에, 말끔한 옷을 차려입고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매일 동네를 걸어 다니셨다. 가끔 우리 모녀에게 손을 흔들어주시기도 했다. 아장아장 앞을 보고 걸으시다가 우리를 마주칠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웃어주셨는데, 걷는 보폭 그리고 그의 웃는 모습이 꼭 아기 같았다. 그에게 아기 할아버지는 찰떡같은 별명이었다.
우리가 3층으로 이사 간 뒤, 할아버지를 더 자주 마주쳤다. 우리 아파트는 방이 1개 있는 아파트가 대부분이었는데, 아기 할아버지처럼 혼자 사는 노인분들이 많았다. 캐나다에서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이 되면 다른 곳에서 사는 가족들의 집에 가서 아파트가 텅텅 비는데, 아기 할아버지도 역시 명절에는 보이지 않으셨다가 며칠 후 보이시곤 하였다. 거동도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아무 도움 없이 혼자 사시는 것이 좀 걱정이 되었는데, 명절에 챙겨주는 가족이 있으신 것 같아서 다행인 마음이 들었다.
내가 12학년 2학기, 졸업 전 거의 마지막 시험을 보고 일찍 집에 온 날이었던 것 같다.
“아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같아.” 엄마가 말씀하셨다.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직감했다. 이미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집에서 돌아가신 지 한참 후에 발견되었다는 것을. 독거노인의 고독사였다.
하긴 한 일주일 전부터 좀 수상한 느낌이 들긴 했었다. 우리 아파트는 주기적으로 각종 전단지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세대마다 문고리에 걸어두었는데, 앞 집 아기 할아버지네 문고리에 그런 비닐봉지가 두세 개가 걸려있었다. 혹시 어디 아프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명절 때 가끔 집을 비우시기도 하니 어디 가셨겠거니 생각했다. 아파트 매니저 마크가 할아버지가 렌트를 내지 않으셨는데 전화도 안되고 최근 보이지도 않으셔서 스페어 키로 문을 열었던 모양이다. 마크가 발견했을 때 아마 할아버지가 이미 며칠 전에 돌아가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엄마가 말씀하시기를, 검정 양복을 입은 남자 몇 명이 와서 들것에 할아버지를 검은색 영구차에 싣고 갔다고 알려주셨다. 아마 토론토시에서 나온 직원들인 것 같았다고 하셨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죽음이지만, 앞 집 할아버지의 고독사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던 가까운 위치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던 것 같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___할 걸‘의 늪에 빠져서 죄책감이 들었고 마음이 괴로웠다. 할아버지한테 간식도 가끔 드리고 더 살갑게 안부를 물어볼 걸, 며칠째 할아버지가 안 보일 때 혹시 괜찮으신지 똑똑똑 해 볼 걸, 아니면 마크에게 며칠째 할아버지네 집에 광고지가 계속 걸려있는데 괜찮으신지 확인해 달라고 말해볼 걸,…
우리 아파트 근처에 있는 세탁소 주인이 한국분이셨는데, 아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분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름은 윌슨 씨. 캐나다에서 기차 기관사로 오래 일하셨고, 가족은 없으신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삶을 사셨는지 물어라도 볼 걸… 그리고 나의 오지랖으로 윌슨 할아버지를 좀 더 일찍 발견하여 할아버지가 이 생에서 마지막이 좀 덜 외로웠다면 좋았을 텐데! 이방인에게 늘 활짝 웃어주셨던 분이니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 같다.
내 나이 서른이 넘은 지금, 어떤 사인에서 윌슨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분의 죽음을 내가 어찌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며 위로한다. 아기 할아버지가 혹시 하늘에서 우리 아빠를 만나셨다면 아빠에게도 환하게 웃어주셨기를…
오늘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 일요일에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