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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겨울 친구와 헤어졌다

부제_ The Ghost in My Mind #1

by 이안류

지난 겨울 나는 친구 X와 헤어졌다. 7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해 온 친구가 내 삶에서 사라졌고, 그 이별을 고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다. 싸우고 헤어졌어도, 우리는 함께 일을 하고 있어서 일주일에 적어도 이틀은 같은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래서 이 이별은 나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눈에서 멀어져야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하는데, 마음에서 멀어져도, 4개월 가까이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가며 지내야 했다. 마치 그림자가 존재하는 것을 알지만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올해 2월 공간까지 분리되어 완전한 이별이 이루어졌을 때, 나는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친구 X는 이제 내 눈앞을 그림자처럼 살아 움직이지는 않지만, 내 마음에 어두운 유령처럼 내려앉아 있다가 문득문득 나를 휘저어 놓았다. 헤어지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친구 X로 인해 힘들었던 기억을 나의 주변인들에게 하소연하며 내 이별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노력했다. 지인들의 동의에 위로받고 못내 안심하였지만, 그럴수록 내 안에 X가 더 견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을 바보 같이 나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난 애도(哀悼)를 위해 이 글을 쓴다. 제 머리 못 깎는 중(衆)인 나는 이제야 상실의 애도를 글로 푼다.








행복했거나 재미있었던 기억들이 대부분인 것이 참 신기하다. 나이를 먹어 만난 우리는 서로 매우 다른 성격이었지만 서로 인생에서 큰 변화를 겪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쩌면 각자 인생의 맹렬한 폭염기를 지나 한풀 꺾인 간절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도 달랐던 우리가 친구가 되었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삶의 땀내에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칼날이 무뎌져 있었고, 이제는 내달리기보다는 옆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강제로 마련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사자의 이빨이 빠지고 발톱이 무뎌지고 체력이 떨어지면 초식 동물들과도 두런두런 지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칼과 방패를 잠시 내려놓은 채 초원에서 만났다.



그래서 더 좋았던 기억들이 많았다. 서로 챙겨주고 걱정해 주고 응원해 줄 수 있는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있었다. 내 인생의 쳇바퀴가 나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 몰라 불안했기에 서로에게 더욱 의지했었다.

이 시기를 잘 넘겨보자고,

잘 할 수 있다고,

서로를,

아니 어쩌면 나를 닮을 X를,

응원했었다.



하지만 계절이 그러하듯 환절기가 지나면 다음 계절이 다가온다. 우리도 그러했다. 친구 X에게 먼저 뜨거운 계절이 찾아오고 있었고, 나는 그 열기 속에 들뜬 친구 X를 보았다. 새로운 기회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공존했던 X는 온몸으로 그 감정들을 쏟아냈다. X의 눈빛과 피부에서 일렁이는 의욕과 도전, 활력을 피부로 느끼며 나는 내가 막연히 예상했었던 것보다 X의 기세가 더 매섭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상을 공유하는 친밀감 속에서 막연한 미래를 함께 잦던 실타래가 팽팽해져 왔다.



한창 때 서로의 모습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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