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_The Ghost in My Mind #2
나는 내 안의 지도 속에, 우주의 섭리 속에 사는 아이였고, X는 내비게이션으로 달려가는 현실 속에, 그 안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사는 친구였다. 젊은 시절 비슷한 업종에서 일을 하여 공감대가 크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공기였고, 본질적으로 우리는 퇴근 후 숨 쉬는 세계가 달랐고, 그만큼 생각도 비전도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랐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우리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났기 때문에 그동안 어떻게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앞으로 어느 목적지를 향해갈 것인지, 생각보다 서로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간절기라는 시간 속에, 휴게소라는 공간 속에, 만난 인연은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공간이 비틀어지면 그것이 착각임을 여지없이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어느덧 X가 조금씩 불편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X에게 뜨거운 계절풍이 불어오고 들뜸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기 시작할 때, 이렇게 우리가 한 발자국 각자의 길로 나아가는구나라고 처음에 생각했지만, 그 끝에 다다르면 너무도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는 것을, 다른 풍경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기질적으로 다른 우리는, 서로 다른 선택을 했고 그 방향성을 응원해 주는 동지가 되어갔다. 나는 계속 내 안을 다지려 공부를 이어갔고, X는 다시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분투했다. X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마다 불안감과 흥분을 쏟아냈다. 나는 전율하는 X에게 걱정과 위로와 축하와 응원을 전하며 나 또한 기쁨과 동시에 자극을 느꼈다. X 또한 내가 절망에 부딪힐 때마다 걱정해 주고 두려워할 때마다 특유의 밝음과 적극성으로 용기를 주었다. 이렇게 둘이 하나씩 이루어가는구나 생각을 하며 행복했던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X는 자신의 모든 경험과 기분 상태를 즉시적으로 대상에서 쏟아내는 사람이었고, 나는 내 안에서 먼저 생각이나 감정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X가 지속적으로 보고하는 자신의 사업에 관한 보고는 나에게 점차적으로 칭찬과 용기를 달라는 간접적인 메시지로 들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가 길어지자 나는 점점 지쳐가는 나를 발견했다. X가 발산하는 육체적, 심리적 에너지를 감당하기에 나는 태생적으로 성향이 달랐고, 내 일상과 학업, 업무로 인해 이미 번아웃이 되어 끝없이 응원과 칭찬을 보내야만 하는 상황에 탈진해 가고 있었다.
“언니, 내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너무 무턱대고 할 수 있다고 한 것 같아."
나보다 한 살이 어린 X의 목소리는 걱정보다는 들뜸으로 인한 흥분이 가득했다. 약간의 두려움과 그보다는 더 큰 들뜸, 기대, 설렘이 뒤섞인 감정을 X는 곧바로 누구에게 표현해야만 했고 어느덧 그 대상은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네가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담당자에게 계속 운을 띄웠던 거잖아. 덜컥 담당자가 해보라고 하니까 겁나는구나. 걱정 마, 잘 할 수 있을 거야. 네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일을 줬겠지.”
“정말 그럴까? 나 갑자기 막막해. 머리가 하얘서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강의 주제가 뭐라 그랬지? 나도 같이 생각해 볼게. 너무 걱정하지 마. 너 지금까지 이렇게 걱정하면서도 잘 해왔잖아.”
이러한 대화는 X가 일을 시작하며 하나씩 강의나 사업을 따올 때마다 반복되었고 처음에는 점차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X를 보는 것이 기뻤고 응원해 줄 맛이 났다. 그런데 이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더욱이 걱정했던 강의나 사업이 마무리된 후에도 X의 희열에 같이 기뻐해 주고 실망에 위로와 정서적 지지를 해주는 사후 작업까지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러한 피드백의 굴레는 무한으로 반복되었고, 나는 X가 일적인 성공의 압박으로 인해 느끼는 불안의 감정 덩어리를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고, 응원해 주면서, X가 막막하다고 호소할 때는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는 존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우리는 간절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서로를 응원해 주고 이해해 주는 친구로 만났지만, 충전을 마치고 각자의 도로로 진입하자 곧 그동안 너무도 다른 길을 달려왔다는 것을,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간절기 휴게소에서의 끈끈했던 시간들이 이러한 차이를 이겨내줄 것이라 우리는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