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_The Ghost in My Mind #5
“언니, 어세스타에 지원해 보는 게 어때? 아무래도 공부하는 동안에는 돈 벌기가 쉽지 않잖아. 그래도 한 달에 몇 번 가면 적지만 용돈은 벌 수 있으니까 괜찮지 않아?”
X가 나에게 어세스타 강사 제안을 처음 했을 때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보다 1년 먼저 어세스타에 들어간 X는 강사로 활발하게 경력을 쌓고 있었고, 나는 석사를 마치고 상담심리사 자격증 준비를 위해 대학상담센터에서 인턴상담사로 일하며 생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인턴상담사는 수퍼비전과 교육을 제공받으며 상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따로 급여가 없으며 일반적으로 일주일에 3일 정도 출근을 한다. 내가 근무하는 센터의 경우 인턴은 하루는 종일 근무를 하고 다른 하루는 반나절 근무, 그리고 금요일 오전은 무조건 수퍼비전 교육이 있었다. 결국 출퇴근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일주일에 꼬박 삼일은 인턴 수련을 위해 무급으로 일을 해야 했고, 그만큼 생업에 투자할 시간은 부족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던 X는 나에게 어세스타라는 회사에 강사 지원을 권유했지만, 그 당시 나는 수퍼비전 보고서 제출과 부족한 상담을 위한 공부와 준비만으로 이미 온정신이 포화상태라 다른 일은 고려할 여력이 없었다. 더욱이 상담심리사 시험 준비를 하며 복잡한 서류 준비로 강박증과 불안증이 생겨 미칠 지경이었고, 이후 박사 지원까지 이어져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X의 제안은 내 관심 영역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던 중, 폭풍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고 약간의 숨을 돌리고 있을 때 X는 다시 어세스타 강사 이야기를 꺼냈다. X는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집요하고 끈질긴 편이다. 내가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완곡하게 거절하면 얼마 후 여지없이 다시 그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관련된 소식을 넌지시 전달한다. 나는 눈치를 챘으면서 모른척하기도 하고, 때로는 싫다고 단호하게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타이밍을 봐서 X가 그 이야기를 또 꺼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X에게 종종 '너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고 말해주곤 했는데, 그때도 정확히 X는 내 불안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맡고는 비집고 들어왔다.
“내가 작년에 얼마나 강의를 많이 했는지 알잖아? 그리고 강의 제안이 회사에서 오면 스케줄 보고, 되면 한다고 하고 아니면 못한다고 말하면 돼. 어차피 박사 공부하는 동안에 다른 일 하기 쉽지 않잖아. 남는 요일이나 시간에만 강의하러 가면 되니까 괜찮지 않아, 언니? 한 달에 세네 번만 해도 밥값이나 차비는 벌잖아.”
내 현실적인 사정을 대강은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X가 도움을 주고자 배려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친구이기에 모른 척해줬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경제적 압박은 늘 함께였다. 석사 때는 그래도 다시 공부한다는 부푼 희망과 약간의 젊음과 의지가 있어서 주경야독하는 나 자신이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부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재정적 고민을 묵고한 채로 논문을 읽어야 하는 현실적 괴리감이 점점 버거웠다. 이러한 나의 내적 고민을 감지하고 타이밍을 정확히 파악한 X가 다시금 어세스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왜 고맙다는 마음보다는 불편감과 수치심이 먼저 들었을까. 지금 이 순간에 어세스타는 '나'라는 굶주린 물고기가 거절하기 어려운 미끼라는 것을 X는 본능적인 감각으로 알고 있었고, 그 감각을 나에게 사용한 순간 내 레이더는 굴욕감이라는 경고를 울렸다.
나는 도와달라고 말한 적도 없었고, 그저 친구로서 장기간 일하며 공부하며 겪는 빠듯한 생활고에 대해 푸념 섞인 말로 이야기한 것뿐이었다. 더욱이 여러 번 거절을 하였는데 또다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치 내가 이 상황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잠시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어세스타 강사를 병행하면서 박사 공부를 할 때 이점에 대해 X는 설명했고, 나는 현실적 고민에 한편으로는 솔깃하는 내가 참 간사하기도 하고, 친구의 배려를 계속 거절하는 내가 참 배은망덕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경제적 고민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나의 무능력이 수치스러웠고, 그 냄새를 맡은 X가 제안하는 말이 배려이고 도움이지만 기묘하게 나에게 패배감을 주는 것 같아 나의 삐뚤린 마음에 실망했다.
“어세스타에 지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데?”
오랜 고민 끝에 내뱉은 나의 말에 X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다. 나는 피어오르는 굴욕감을 애써 눌러가며 지원 방법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꼼꼼히 물었지만, 마음 한켠이 묵직하게 가라앉아 X의 대답들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흩날렸다. 나는 뭔지 모르게 이 제안을 결국에는 허락함으로써 X의 통제를 승인하고 X의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것 같았다. 그 결정에 따른 잠재적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알면서도 현실적인 불안에 무언가에라도 발을 걸쳐 놓으면 조금은 안심될 것 같아 모른 척했다. 이것은 X가 친구로서 나를 배려하고 도움을 주려는 것이지 통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이것은 분명히 X가 나에게 베푼 진심의 도움이자 구체적인 통제의 시작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때는 현실이 다급했기에 어세스타 강사로 첫 수업을 하는 날, 나는 X에게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 고맙다고 말했고, 이것은 나의 진심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의 경제적 고민은 어세스타가 아니라 의외인 사람의 도움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 지도교수님께서 뜻밖에 조교 자리를 제안해 주셔서 나는 박사 과정에 들어간 첫 학기부터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학업과 조교일, 그리고 생업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느라 정작 어세스타에 강사로 들어갔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나는 한 학기에 세네 번 정도만 강의에 참여하였다. 이후 감사하게도 조교에 이어 교수님 연구를 보조하는 일을 박사 과정 내내 맡게 되면서 대부분의 학비를 장학금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되었고, 내 생업도 바빠져서 어세스타 강의 참여율은 점점 낮아졌다. 학교에 몰두하느라 줄어든 시간만큼 어세스타는 강사 자격을 유지하는 정도만 일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어세스타 소속 강사라는 이력서 한 줄은 내가 개인 수업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종종 나는 X에게 제안해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전달하곤 했는데, 이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나의 마음과 함께 X가 나를 통제하려는 의도가 있을 리 없다는 확인을 위한 맹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