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_The Ghost in My Mind #4
X와 학교 동아리 모임에서 만난 친구로 그저 머물렀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그저 각자의 길을 응원해 주는 친구로 남았으면 어땠을까 후회해 본다. 하지만 학교라는 경계를 넘어 석사 과정을 거쳐 우리는 점점 일적으로도 공유하는 부분이 늘어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X의 사업에 내가 참여하는 부분이 많아지면서 급격히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한 사람을 삶의 여러 영역에서 겹치며 만나지 않는다는 내 신조를 내가 깬 대가다.
친구는 친구로, 회사 동료는 동료로, 학교 동기는 동기로 남는 것이 편하다. 물론 회사 동료가 퇴사 후에 친구로 더 깊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깊어진다’는 말 안에는 사적인 이야기를 공유해도 안전하다는 인식이, 이 사람과 회사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역사(歷史)를 만들어도 괜찮다는 내적 확신(inner conviction)이 생겼다는 의미가 있다. 그만큼 삶의 여러 층위를 공유할수록 서로의 높은 허들을 통과해야 한다. X도 동아리 친구에서 친한 친구로, 석사 과정 동문으로, 그리고 이어 공적인 업무 계약 관계로 이어지다 보니, 하나의 허들에 진입할 때마다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는 일상의 사소한 것에 기쁘고 감동적인 순간도 많았다면, 관계의 겹이 여러 층을 이룰수록 놀라거나 실망하는 장면들이 늘어갔다. 서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기묘한 긴장감이 돌곤 했다.
“난 걔 싫어. 그러니까 언니, A 만나지 마. 날 무시했단 말이야.”
난 X와 A의 서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내게 A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X는 계속 A가 자신을 아는 척하지 않고 무시했으니 이상한 아이라며 나에게 같이 지내지 말라고 칭얼거렸다. 처음에는 그저 웃으면서 들었지만, 이 레퍼토리는 반복되었고 나에게 더 이상 웃긴 이야기가 되지 못했다.
“나한테 A는 괜찮은 사람이야. 아니, 요즘은 꽤 좋은 동기야. 그러니까 네가 싫다고 나한테까지 강요하지 마.”
참다못해 나는 정색하며 말했다.
X는 여느 때처럼 결국은 내가 자신의 입장에 동의해 줄 것이라 예상했었는지, 나의 대답에 당황스러운 표정이 잠시 스치더니 더 강하게 A가 얼마나 비상식적인 또라이인지 설파하였다. 난 그런 X의 모습을 보며 황당했고 짜증이 나서 X의 얼굴을 굳은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고 매우 불쾌했다. X의 목소리와 몸짓은 내가 X의 말에 동의하지 않은 것에 분개했는지 점점 커졌고 난 아연실색했다. 내가 A를 두둔하고 편을 들어주고 있다고 X는 화를 내었고, 나는 이것은 누구를 편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A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라 일러주었다.
나에게 A는 대학원 동기로 독특한 면이 있지만 겪을수록 정(情)이 많아 손해도 많이 보는 열심히 사는 친구였다. 그런데 X는 자신을 아는 척하지 않았다고 A의 이야기만 나오면 물어뜯었다. X가 A에게 느끼는 불쾌감까지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 감정을 나에게 강요하는 것은 지나침이었다.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니까 너도 싫어해야 해’라고 강요하는 통제였다.
통제 욕구(desire for control)는 예측이 불가능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낄 때 자신의 환경을 통제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내 안의 불확실성과 불안이 통제라는 가면을 쓰고 외부로 드러나는 것이다. 일상적으로는 자기 방을 청소하거나 설거지나 옷 정리 등으로 환경을 통제함으로써 내 불안을 잠재우려 하고,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내가 불안을 느낄만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함으로써 나의 불안을 낮추려 한다. 그래서 불안은 타인을 무의식적으로 조종하고 통제한다. 위험하니까 혼자 밤에 밖에 다니지 말라고 잔소리하고, 독감 주사 맞지 않으면 위험하니까 빨리 병원에 가라고 하고, 그 친구는 이상하니까 만나지 말라고 한다.
전에도 X에게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그때는 나를 ‘통제’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좋아하고 의지하는 친구라고 여겨서 귀엽고 고마웠다. 하지만 이번에 A에 대한 X의 지나친 판단과 이를 나에게 강요하는 행동은 분명 통제이자 경계 침범이었고, 이는 나에게 엄청난 불쾌감과 무례함을 주었다. 그날 작은 언쟁이 있은 후 나는 마음이 너무도 무거웠다. 전에는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는데 친해질수록 강도가 세지고 있었다. 내가 X와 이전처럼 좋은 친구로 지내기 위해서 A는 또라이로 남아야 했다. X는 자신과 친한 내가 어떻게 자신을 무시한 A를 좋게 평가할 수 있냐며 이는 배신의 행동이라고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것은 X의 관계적 불안에서 비롯된 통제였다. 내 친구니까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면 안 되잖아. 이렇게 자신의 통제 그물 안으로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날 사건은 X와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보면 X는 내가 A와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마다 A를 또라이로 만들고 내게 A에 대한 편견을 은연중에 심어 A와 가까워지는 것을 방해했다. 그래서 결국 내가 A에 대한 X의 평가에 동의하게 만들었고 우리의 사이는 더욱 공고해졌다. 나에게는 A보다 X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기에 이래도 괜찮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나의 지나친 허용은 지나친 간섭과 통제를 낳았고, 나는 X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무의식 중에 우리의 관계에서 A를 밀어내기 위한 X의 통제는 오히려 내게서 X를 밀어내는 역효과를 가져오고 있었다. 이러한 미묘한 불편감의 역동은 마치 이안류처럼 우리의 바다 밑바닥에서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