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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나솔사계] 미스터 강 & 23기 옥순

사회적 회피가 불러오는 관계에 있어 정서적 소외

by 이안류

이번 <나솔사계>에서 자격지심, 열등감, 시기, 질투에 휩싸인 출연자들이 한 사람을 앞담화, 뒷담화, 남 탓으로 몰아가며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매도하는 장면은 참으로 보기에 끔찍했다. 실제 촬영은 고작 3박 4일에 불과한데, 그 사이에 벌어진 출연자들의 관계적 역동은 연애 버라이어티라기보다는 정말 살벌하고 리얼한 사회실험에 가까웠다.



23기 옥순이 ‘어장 관리’를 한다며 열폭하는 여자 출연자들이나 자신의 자격지심을 방어하기 위해 옥순을 먼저 차버리고는 이를 옥순 탓으로 돌리며 여자 무리에 합류한 미스터 한이나, 방송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최악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버렸다. 결국 이들은 각자의 무능력과 무매력, 열등감을 모두 비겁하게 옥순에게 투사해 버리고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한데 뭉친 것이다.



대다수 시청자들이나 유튜버들의 반응은 어이없는 출연자들의 행동에 분노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이 시각에 동조하며 모든 원인을 옥순에게 돌렸다. 나는 이 논란 자체보다, 간과되고 있는 출발점인 미스터 강과 23기 옥순의 관계에 주목하고 싶다. 특히 이 논란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미스터 강의 기여도에 대해 말하고 싶다.



미스터 강은 사회적 관계에 몹시 서툰 인물이다. 회계사로서 사회적 성취는 인정받을지 몰라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상황에서 적응하는 사회 지능은 매우 낮은 편이다. 그는 스스로 지원해 프로그램에 출연했음에도 다른 출연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긴장하는 것으로 보아 사회적 수줍음이 높았고, 관심 있는 옥순에게조차 적극적으로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또한 다대일 데이트에서는 지나치게 경직되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고, 일대일 데이트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에 집중하거나 상대의 질문에 답하는 데 급급해 상호 간 원활한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옥순이 그와 더 대화하고 싶어 하는 운을 띄워도, 그는 피곤하다며 먼저 잠자리에 드는 모습을 보여 시청하는 나 또한 참으로 답답했다.



<나솔사계>의 미스터 강과 23기 옥순



더욱이 소극적인 행동으로 미스터 강이 옥순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자, 옥순이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는 상황은 정말 보는 사람을 황당하고 화나게 만들기 충분했다.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면 같이 이야기하고 싶고 이 사람이 어떤지 궁금해지지 않냐며, 이러한 마음이 괜찮다가도 갑자기 떠오른다며 옥순이 미스터 강에게 어렵게 자신의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자, 미스터 강은 “조울증 있어”라고 황당한 대답을 하여 방송 패널들과 나를 아연실색케 했다. 이러한 미스터 강의 반응은 상대의 감정을 공감하기보다 오히려 상대를 문제의 원인으로 만들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또한 방송 마지막에 <바다를 향해 외치는 출연자들의 고백>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출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은 바닷가로 가서 못다 한 말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다른 남자 출연자들은 대부분 참여했으나 미스터 강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에 23기 옥순은 미스터 강이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미스터 강에게 다녀왔냐고 일부러 물어보았다. 그런데 미스터 강의 대답은 어이없게도 “기억이 안 난다”는 그 순간을 모면하는 회피의 답변이었다.



이러한 미스터 강의 태도는 심리학적으로 사회 불안(social anxiety)과 사회적 회피(social avoidance)로 설명할 수 있다. 사회 불안은 타인의 시선 앞에서 과도한 긴장과 불편감을 느끼는 것이고, 사회적 회피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피하려는 태도다. 미스터 강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얼어붙거나 긴장하는 사회 불안을 드러내며, 이내 방으로 들어가 혼자가 되는 회피를 해결책으로 사용한다. 미스터 강은 문제 장소를 벗어나는 것을 넘어, 자신이 개입해야 할 연애 상황에 수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리고는 이는 자신의 성격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는데 이 또한 책임에서 회피하려는 방식이라 볼 수 있다. 분명 본인이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고 자신이 직접 지원해서 출연했다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목적에 맞는 행동을 스스로 해야 한다. 그런데 미스터 강은 자신은 선택 코너에서 23기 옥순을 선택하여 마음을 표현했으니, 나머지는 상대의 몫이라 넘기는 것은 관계에 있어 상대를 고려하지 못하는 미숙한 모습이다. 아마도 미스터 강은 이러한 방식으로 불안을 다루며 자기만의 공간으로 도피하는 것에 익숙할 것이다. 이러한 회피는 미스터 강이 성장하며 불안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주었겠지만, 미스터 강은 이미 성인이기 때문에 이제 이를 적절히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반면 23기 옥순은 미스터 강과는 정반대의 성향이다. 밝고 외향적이며 감수성이 풍부하여, 상대가 울면 함께 울 정도로 정서적 민감성(emotional sensitivity)이 높다. 그녀에게 연애란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으며 확인하는 과정이며, 그렇기에 대화를 통해 교감이 이루어질 때 관계에 확신을 가진다. 나는 옥순이 우는 모습을 보였다고 그녀가 지나치게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옥순이 방송에서 보인 눈물은 자기 연민의 눈물이 아니라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공감하며 흘린 눈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고생 없이 곱게 자라서 생기는 특성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에 진심으로 공명할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관계에 있어 옥순은 꾸준히 다가갔지만 미스터 강은 늘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두 사람 간의 갈등을 단지 외향-내향의 성격차이로 치부하고 싶지 않다. 다른 남자들이 인기녀인 옥순에게 적극적으로 데이트를 청하는 동안, 그는 태평하게 방에서 휴대폰을 보거나 잠을 잤다. 심지어 룸메이트가 미스터 강은 방을 사랑한다고 옥순에게 말하는 것을 보면 상황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가능하다. 이러한 관계의 불균형 속에서 옥순은 “나만 관계를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나?”라는 회의감과 외로움, 소외감 등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미스터 강의 회피는 고작 3박 4일인데도 불구하고 점점 옥순을 요구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옥순은 지속적으로 서운함과 혼란을 경험하지만, 미스터 강으로부터 이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옥순은 더 이상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가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미스터 강의 기여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극적인 행동으로 인해 방송 분량이 적다 보니 정작 이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그는 벗어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미스터 강의 회피적 태도는 23기 옥순이 관계를 확신할 수 없도록 만들어, 계속 다른 남자 출연자들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으로 이끌었다고 본다. 미스터 한에게 옥순이 황당하게 거절당했을 때, 미스터 강이 옆에서 상대로서 자기 역할을 해주었다면 옥순의 관심은 미스터 권에게까지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관계는 감정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에 있어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야 본연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감정만으로 관계가 유지된다면, 이 세상에 짝사랑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옥순의 입장에서 현 상황을 정리해 보면, 자신에게 관심 있다고 말하는 미스터 강은 행동으로 자신의 역할을 증명하지 않으며, 미스터 한은 옥순이 자신을 감당하지 못할 거라며 마치 배려하 듯 옥순을 미리 거절했고, 미스터 권은 뭔가 적극성을 보일 것처럼 말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회피하며 다른 선택을 하여 관계를 이어가지 못했다. 슬프게도 옥순에게 다가온 남자들은 상대인 옥순을 배려하고 마음에 확신을 주기보다는 자기애와 자기 연민이 더 큰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옥순은 현재 선택할 남자가 없는 난감한 상황인 것이다.



미스터 강은 순수한 매력을 가진 사람일지 모르지만 연애는 두 사람이 호감을 보였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그 마음을 상대에게 증명하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3박 4일의 일정 속에서도 미스터 강은 옥순에게 한 두 번의 표현으로 자신의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한 듯하다. 다들 밤늦도록 서로를 알아가며 짝을 찾으려고 모인 이곳에서, 자신은 이미 마음을 옥순에게 전했으니 남은 시간은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숙면을 취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러한 자기중심적 태도는 관계에 대한 책임을 상대에게만 전가하는 것으로, 남친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나는 23기 옥순이 미스터 강의 회피적 태도로 인해 확신을 잃고 힘들어하는 것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관계는 두 사람이 함께 짊어져야 하는 것이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 어쩌면 미스터 강이 상대를 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더라면, 옥순은 앞담화, 뒷담화와 같은 험한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옥순이 경험할 억울함과 외로움, 분노가 얼만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자신이 관계를 맺었다면 감정뿐만 아니라 그 역할을 성실히 다해야 관계가 유지된다. 우리는 텔레파시도 독심술도 없기 때문에,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은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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