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야구에 빠져드는 다섯 가지 심리학적 이유
어릴 때 나는 나름 야구를 좋아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바쁜 삶 속에서 야구에 대한 관심은 점점 사라져 갔다. 그러던 중 언니가 JTBC의 <최강야구>라는 프로그램을 보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무 생각 없이 나는 딴짓을 하며 곁눈질로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다. 기존 야구 중계는 전문 용어가 많고 지루하고 딱딱해서 재미가 없었는데, <최강야구>의 캐스터와 해설위원은 달랐다. 자기 팀에 대한 편파적이면서도 감수성 터지는 중계와 유치하기 짝이 없는 드립들, 그리고 난무하는 토템과 샤머니즘까지. 나는 어느새 화면 앞에서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 이 프로그램과의 인연을 시작되었다.
야구의 재미는 경기력에만 있지 않았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경기장 밖에서 드러나는 선수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삶의 단면들, 그리고 하나하나 이들과의 서사가 쌓여갔다. 특히 이미 프로에서 은퇴하거나 아직 프로를 밟아보지 못한 선수들이 ‘7할 승률’을 지키지 못하면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일자리를 잃는다는 설정은, 그들의 절실함을 더 크게 만들었고 시청자인 나의 몰입도를 높였다. 나는 단순히 관객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한 게임, 한 게임을 끝내며 삶을 이어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나는 시즌 2에 김성근 감독과 이대호 선수가 합류한 상황에서 <최강야구>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전의 그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처음에 내가 아는 사람은 김성근 감독과 이대호, 박용택 선수가 전부였는데, 어느덧 나는 라인업 멤버와 순서를 모두 알고 있는 애청가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방송사와 C1스튜디오와의 불화로 프로그램 존속 자체가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내가 사랑하던 프로그램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소식은 마치 내 삶의 일부가 부당하게 빼앗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화가 났고, 억울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부분의 선수들과 감독이 제작사인 C1스튜디오를 택해 새롭게 불꽃야구를 론칭했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뜨겁고 깊이 움직였다. 이들의 선택은 곧 ‘누가 진정성을 지켰는가’라는 증거가 되었고, 나 역시 그 끈끈한 연대에 더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불꽃야구는 단순한 예능 이상을 가고 있다. 올초 예상치 못한 악조건 속에서도 유튜브 채널로 정규 방송을 하고,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팬들과 함께 극장에서 방송을 보는 행사를 갖고, 방송국에서 라이브 중계를 넘어 이제는 홈페이지에서 자체 라이브 방송을 운영하며 팬들과 꾸준하고 적극적으로 호흡하는 불꽃야구는 야구중계의 새로운 방송 패러다임을 개척하고 있다. 그리고 삼천 원을 결제하며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는 나의 팬심에 나 또한 놀라고 있다. 이를 보며 나는 ‘왜 이렇게까지 열광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정리해 보면, 불꽃야구가 주는 매력에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었다.
전생을 거쳐 불꽃야구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단순히 경기를 보는 게 아니라 선수들의 삶에 들어가 있었다. 좌절, 웃음, 눈물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며 마치 내 이야기처럼 출연진들의 삶이 나에게 다가왔다. 심리학적으로는 이를 '서사적 동일시(narrative identification)'라 부른다.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에 몰입할 때와 마찬가지로, 선수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 삶의 경험을 대리경험한다. 그래서 임스타가 아름다운 방출을 하게 된 것이 반가우면서도 아쉽고, 드래프트에 선발되지 않은 영건들이 마치 좌절했던 내 젊은 시절 모습 같아 딱하고 짠해서 더 용기를 북돋워주고 싶다.
프로그램 존폐의 위기와 방송사와의 갈등은 나와 같은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그 위기를 함께 견디며, 우리는 더 강하게 연대했다. “끝까지 함께 간다”는 감각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집단 응집력(cohesion)'을 강화시켰다. 위기는 관계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만든다. 오히려 당연하게 시청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프로그램이 갑작스럽게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더욱 단단하게 뭉쳐 응원의 손길을 보냈던 것이다.
“나는 불꽃야구 팬이다”라는 말은 단순한 취향 고백이 아니다. 그것은 곧 “나는 진정성과 의리를 중시하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선언이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동일시(social identification)'라 한다. 내가 어떤 집단의 일부라는 감각은 곧 내 자존감과 정체성을 지탱한다. 그래서 같은 포인트에 열광하고 감동할 수 있는 것이다.
불꽃야구는 팬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참여자’로 대했다. 방송국이 없는 상황에서 불꽃야구는 유튜브라는 통로로 소통을 시작했고, 이후 라이브 채팅, 후원, 현장 참여 등 내가 보낸 응원과 행동이 실제로 변화를 만들었다는 확신과 기쁨을 선사했다. '자기결정성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라는 기본 욕구를 지닌다. 불꽃야구는 시청자들과 팬들에게 이 세 가지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 단순한 시청자를 넘어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양방향적인 즐거움과 뿌듯함을 주었다.
거대 방송사가 아닌 작은 스튜디오가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 상황은 언더독의 반란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언더독’을 응원한다.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란 사람들이 약자(underdog), 즉 불리한 조건에 놓였지만 끝까지 도전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한다. 우리는 불공정하고 불리한 상황 속에서 약자의 승리를 지켜보는 순간 더 큰 희열과 의미를 느낀다. 현실에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느껴지는 언더독의 반란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고, 그 일에 내가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팬들에게 엄청난 희열을 선사한다.
결국 불꽃야구가 특별한 이유는 콘텐츠를 넘어선 서사에 있다. 선수와 제작진에 의해 만들어진 양질의 콘텐츠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의 장을 형성했다. 그래서 위기 속에서 빛난 진정성, 서로를 믿는 끈끈함,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불꽃야구와 팬들의 관계의 순수성은 나에게 혼란한 이 시대에 정체성과 소속감을 주었다. 그래서 불꽃야구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야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순수한 관계학을 경험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불꽃야구를 본다.
대문사진 출처: C1스튜디오 홈페이지 https://studioc1.co.kr/vod/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