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춘기의 힘, 불편한 감정과 화해하는 방법
2019년 01월 06일 일기글 발췌. 영하 2도
‘갱춘기(更春期)’. 갱년기의 혼란을 넘어, 삶의 하프타임에서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 정체성을 재정비하는 시기임을 수차례 이야기했다. 이 시기는 후회와 불안, 그리고 미진한 현실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이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볼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가장 쉬운 길을 택하려 한다. 나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 "내 인생의 이 불편한 지점은 누구 때문인가"라는 질문의 총구를 가족이나 직장, 혹은 사회를 향해 겨누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말과 행동을 하기에 늘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갱춘기의 진정한 힘, 즉 새로운 봄을 맞이할 용기는 바로 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데에서 시작된다고 거듭 말하고 싶다. 이상적인 자아상으로부터 빨리 탈출하려는 용기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요즘 과거에 썼던 일기글을 하나씩 끄집어내서 읽어보고 있다. 2019년 1월 7일의 일기글은 그 경계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일기글의 제목은 '불편한 감정도 내 감정이다.' 솔직히 이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불편한 감정의 총구를 남 탓으로 돌리려는 나를 만날 때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당시 나는 국을 끓이고 설거지를 하는 일상적인 가사 노동 속에서 밀려오는 짜증과 불편함을 그대로 일기글에 표현하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교활해서, 가사 노동 자체가 주는 불편함에 '왜 나만 고생하고 있는가'라는 억울함을 덧붙이고, 그 실체를 곧바로 가족과 아내에게 전가할 구실을 찾는다. '와이프가 이런 일을 안 하니까'라는 판단은, 순식간에 나를 피해자로 만들고 아내를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타인을 비난하는 총의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는 순간, 나는 내 감정의 주인이 아닌, 불편함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결점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마찬가지로 아내도 가사 노동을 전담했을 때는 지금 일기글과 같은 동일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순간 얼마나 남편인 나를 미워했을까? 함께 가사 노동을 해도 힘든 일들이라는 사실을 행동으로 직접 해보는 요즘 더더욱 아내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갱춘기에는 특히 易地思之(역지사지)와 동행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인정해야 할 '나의 부족한 부분'은 노동을 못 하는 신체적 능력이나 외부의 환경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불편함을 회피하고 책임을 전가하려는 내면의 나약함이다. '나는 이런 사소한 일에 짜증을 느끼는 부족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기 수용이다. 설거지하기가 싫은 감정, 내가 더 많이 희생한다는 착각, 이 모든 것이 오로지 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감정은 '불편함'에서 '나의 책임'이라고 방향이 바뀐다.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공존하는 그 경계에서, 나는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고 '꾸준히 실천'하는 용기 있는 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삶의 연속 선상은 늘 선택을 강요하므로 경계에 서서 좌우를 살펴야 한다'라고 다짐했듯이, 갱춘기는 끊임없는 경계가 필요한 시기다. 우리의 생각은 언제든 가장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여 타인을 비난하는 길을 선택하며 자기 합리화의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나의 모든 감정이—심지어 가장 옹졸하고 부정적인 감정까지도—오로지 나의 것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감정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타인을 탓하는 대신, '내가 지금 이 상황을 불편해하는구나'라는 나의 결핍을 수용할 때, 비난의 에너지는 '나는 앞으로도 이런 불편한 일을 꾸준히 실천할 수 있다'는 자기 다짐의 자양분으로 변환된다.
갱춘기를 견뎌내는 힘은 대단한 업적이나 극적인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매일의 사소한 불편함 속에서, 나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그래, 이게 바로 나야. 그리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거야"라고 되뇌는 고요한 수용의 힘이다. 부족한 모습도, 활기찬 모습도, 열등감에 빠진 모습도, 우월감에 충만했을 때의 나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외부의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근육을 키우고 노년기 인생의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