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다

by 우리

한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며칠을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마치 망망대해 한가운데 덩그러니 떠 있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스위치가 ‘탁’ 하고 꺼져버린 기계처럼, 감정도, 생각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였다. 죽는 것도 두려웠고, 그렇다고 살아가는 건 더 막막했다. 말 그대로, 그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지된 인간’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의 말이 떠올랐다. “죽지 못하면, 살아야지. 살아가야지. 어쩔 수 없어.” 그 한 문장이 나를 붙잡았다. 그래, 어차피 죽지 못한다면 살아야 했다.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하나씩 정리해야 했다. 다시 살아야 했다.


그렇게 간신히 몸을 일으켜 가장 먼저 한 일은, 그에게 연락하는 일이었다. ‘나, 이제 나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워보려 해. 그러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 기다려줄 수 있을까?’ 정말 간절한 마음을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미 그의 마음은 돌아서 있었다.


내 진심을 전하기도 전에, 그가 먼저 이별을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간신히 붙잡고 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그가 여전히 내 곁에 있을 거란 전제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아직 오로지 혼자서 일어설 자신이 없었기에. 그가 나를 기다려준다면,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다시 그의 앞에 서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마음의 문을 닫은 뒤였다.


“그런 연락을 남긴 채 사라지면,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트라우마야. 안 그럴 거라 믿었는데, 네가 또 이렇게 내 마음에 비수를 꽂을 줄은 몰랐어. 너는 네가 힘든 것만 생각하지? 내가 얼마나 무너졌는지는 생각 안 해봤어? 네가 이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엔 할 수 없었다. 이미 나는 감정이 주체되지 않았고, 무너진 채로 그를 붙잡기 위해 애원했다. 1시간이 넘는 통화 내내 나는 울고, 떨며, 매달렸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정말 잘못했어. 얼굴 한 번만 보자. 잠깐이라도. 제발. 나 너 없으면 못 살아. 또 무너질 거야. 네가 이러면, 나 또… 못 견딜 거야.”


그러자 그가 말했다.


“지금 또 죽겠다는 협박이야? 너 진짜… 너무 이기적이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걸. 내가 그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줘서 다시는, 정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그리고 마침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상처는 끝내 바라보지 못한 채 여전히 ‘나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워 끝까지 이기적으로 굴고 있었다는 걸.


그는 이제 나에게 모든 정이 떨어진 사람이었다.

이전 01화내가 사라졌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