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처음 만났던 날이 선명하다. 그는 꽤 냉정하고, 차가운 인상이었다. 첫 만남 자리에서 그가 나에게 건넨 말은 뜻밖이었다. "저, 마음에 안 들면 지금 바로 가셔도 괜찮아요." 당황스러웠다. 이런 말을 첫 대면에,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니.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건가? 그 사람을 잘 모르겠다고 느끼면서도 이상하게, 더 알고 싶었다. 뭔가 특별한 기운이 느껴졌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금방 알 수 있었다. 아, 이 사람… 꽤 괜찮다. 생각보다 유머도 있고, 꽤 재밌는 사람이구나. 딱딱한 껍질을 두른 것 같지만 그 안에 뭔가 따뜻한 게 있음을 직감했다.
물론 감성적인 나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나는 그날그날의 기분과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이었고, 그는 그런 나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내 입장에서는 서운함이 쌓였고, 툭하면 "왜 그렇게 공감 능력이 부족해?"라며 소리치곤 했다. 그는 속으로 천천히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느린 속도를 답답하게 여겼던 것 같다. 서로를 향한 방식이 너무 달라 자주 부딪히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늘 말보다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곤 했다.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않았고 “별도, 달도 따줄게” 같은 입에 발린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거라며, 그런 말은 진중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말 대신 행동으로,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그건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의 다정은 그런 식으로,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가 그의 사람이 되자 그의 모든 태도는 달라졌다. 그는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해주려 했고, 어리고 철없었던 나의 투정도 조용히 받아주며 나를 감쌌다. 그때 알았다. 이 사람은 다정함을 겉으로 내보이는 사람은 아니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깊은 사람이라는 걸.
그를 사랑하는 수만 가지 이유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몇 가지가 있다. 그는 고양이를 무척 좋아했다. 특히 길고양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아무리 먼 곳에 주차했어도, 차로 다시 돌아가 먹이와 물을 챙겨서 주는 사람이었다.
한바탕 비가 쏟아진 뒤 쨍쨍하게 마른 바닥 위의 지렁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풀숲으로 옮겨주는 사람이었다. "지렁이는 사람 손 온도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대." 그 말과 함께, 나뭇가지로 조심스럽게 들어 풀숲에 내려놓는 그의 손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해 보였다.
아스팔트 위 사슴벌레를 보면 혹시 풀숲까지 가지 못할까 봐, 직접 나무로 옮겨주는 사람. 길 위에 작은 달팽이가 인간에게 밟혀 죽을까 봐 걱정하며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주는 사람,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너무 여리고, 너무 따뜻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PS. 우리가 사랑에 빠진 이유.
서로 너무 닮아있던 두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