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서비스가 된 세상, 우리는 무엇을 소비하는가

인간관계까지 월정액으로 구독하는 시대

by Simon park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서비스를 ‘구독’하며 산다.
넷플릭스로 감정을, 밀키트로 식사를, 배달앱으로 사람 없는 외식을,
심지어 데이팅 앱으로 인연을 정기결제한다.


더 이상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로 ‘삶의 단편’을 임시 대여하는 것이다.


이제 ‘좋은 하루’는 경험이 아니라 설계 대상이다.
카페에서 친절한 말투를 듣고,
콜센터에서 공손한 태도를 확인하며,
우리는 서비스를 소비하는 동시에
감정 자체를 소비한다.


그런데 여기에 묻힌 감정은 누구의 것일까?

호텔 프런트의 미소,
플랫폼 기사님의 별점 5.0 응대,
고객센터 상담원의 “도와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는
모두 실제 감정이 아니다.

그건 교육된 감정이다.
매뉴얼에 맞춰 제공되는 ‘정서노동’의 일부다.


즉, 우리는 타인의 ‘기분 좋은 연기’를 소비하며 산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진짜 감정에 어색해진다.
날 것의 불쾌함, 진짜 분노, 민낯의 실망감은
서비스 세계에서는 환불 사유가 된다.
“친절하지 않았다”, “표정이 별로였다”,

단 1회의 감정 탈선도 치명적인 클레임이 된다.

감정은 사적인 것이었지만,
지금은 서비스로서 시장에 진입했다.
우리는 감정을 사고팔고, 등급을 매기고,
별점을 통해 감정의 ‘품질’을 판단한다.


정서가 상품이 되면, 인간은 어떤 존재로 남는가?

플랫폼 시대의 정서노동은 더 교묘하고 더 잔혹하다.
과거에는 적어도 사장님 얼굴을 보고 웃었지만,
지금은 앱 너머의 별점 알고리즘이 감정을 추적한다.
불쾌한 고객의 말 한마디도,
리뷰 한 줄이 생계에 영향을 준다.


결국 이 세계에서는,
진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


서비스가 된 삶.
우리는 인간관계를 구독하고,
외로움을 배달하고,
감정을 자동결제한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우리는 진짜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소비 뒤에,
누구의 감정이,
얼마나 무너지고 있는가?


이 시대의 친절은, 때로 착취다.
우리의 ‘좋은 경험’은,
누군가의 감정이 희생된 결과다.

우리는 서비스를 고를 수 있지만,
그 서비스에 투입된 사람의 마음까지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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