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틀은 대부분 맞아
우리 집에는 규칙 경찰이 산다. 콩이는 어른 품에 안겨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도 손을 꼭 들곤 했다. 1학년 담임 선생님도, 2학년 담임 선생님도 콩이 때문에 곤란하셨던 적이 있다며 웃으며 얘기해 주셨다. 수업 종이 울린 후에도 아이들을 조금 더 놀게 하려고 모른 척하셨더니, 콩이가 "얘들아, 이제 수업 시간이야. 모두 자리에 앉아!!"라고 크게 외쳤다고. 한 번은 수학 시간에 유인물을 나눠주셨더니, 왜 교과서로 수업을 하지 않냐며 이의 제기를 했다고도 하셨다. 콩이에게 규칙은 선생님도 예외가 없다.
규칙들이 지켜질 때 콩이에게 이 세상은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세계가 된다. 그 세계가 흔들릴 때면 아이는 몹시 불안해한다. 한 번은 집에 오는 길에 갑작스레 일정이 바뀌어 서울역을 들러야 했다. 아이는 그때부터 집에 돌아올 때까지 차 안에서 한 시간 가까이 울었다. 도무지 달랠 방법이 없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 주인공은 매일같이 김밥을 먹는다. 어떤 재료가 들어 있는지 한눈에 다 보여서 '믿음직스러운 음식'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어보니 꽤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여전히 콩이에게 김밥은 여러 맛과 식감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자극적인 음식'이지만, 언젠가는 시금치와 당근이 훤히 보이는 김밥을 믿게 되기를 바란다. 그날이 오면, 엄마가 짜장밥 안에 야채를 몰래 숨기는 밀수꾼 같은 짓도 그만둘 수 있을 테니.
아이가 다섯 살이 되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였다. 매일 바뀌는 급식 메뉴와 놀이 활동들도 아이에게는 흥미보다 불안을 먼저 건드리는 듯했다. 유치원이 끝난 후에도 여러 치료센터를 오가던 때라 어른들조차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김밥처럼 하루를 보여주기로 했다. 냉장고 앞에 비주얼 스케줄표를 만들어 붙였다. 식사 시간 대신 식판 그림을, 언어치료 대신 치료사 선생님 사진을 붙였다.
나는 아침마다 회장님께 브리핑하는 비서가 되어 그날의 일정을 읊어주었다. 주말 저녁마다 다음 주 주간학습계획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학생으로 이십 년 넘게 살아온 엄마였지만, 평생 들여다본 적 없던 주간학습계획을 매주 성실하게 인쇄해 읽었다. 규칙 경찰 덕분에 뒤늦게 모범생이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등교 준비 일과도 십분 단위로 패턴화 했다. 마침 뻐꾹 시계가 30분마다 울려 일상을 세세하게 쪼개주었다. 아이가 경쾌한 뻐꾸기 소리와 함께 건강한 루틴을 찾아가길 바란다며 콩이 이모가 건넨 선물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유용했다. 느릿느릿 옷을 입는 아이에게 "뻐꾸기랑 콩이 중에 누가 먼저 준비되는지 시합해 볼까?" 한마디면 충분했다.
하지만 일상의 틀을 만들어주는 동시에, 그 틀을 조금씩 깨 보려는 시도도 했다. 콩이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고모가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왔는데, 너무 당황스러웠던지 울면서 30분 넘게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그 뒤로 한동안 고모가 의도적으로 불쑥불쑥 찾아오기 시작했다. 열 번 넘게 반복하고 나니 이제는 활짝 웃는 얼굴로 "꼬모!!" 하며 달려가 안긴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때로는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몸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콩이를 단련시킨 일등공신은 의도치 않게 스케줄을 펑크 내는 허술한 엄마였는지도 모른다. 2학년 개학식 점심시간, 학교 보안관실에서 전화가 왔다. 교문 앞에 콩이가 이십 분째 혼자 서 있다는 것이다. 개학식 날은 일찍 끝난다는 걸 내가 깜빡한 것이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읍소를 해 급한 불은 껐다. 온갖 걱정을 안고 퇴근 후 어땠냐고 물었더니, 콩이는 생각보다 훨씬 덤덤하게 대답했다.
“조금 걱정은 했는데, 그래도 괜찮았어."
매일 아침마다 스케줄을 묻는 아이에게, 이번에도 야심 차게 알록달록한 스케줄표를 만들어 주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콩이가 묻는다.
"엄마. 월요일 오후에 사회성교실이라고 적혀있는데, 왜 어제는 거기 안 갔어?"
"아... 그게... 다다음주부터 시작인데 미리 적어놓았어."
"오늘은 할아버지 등교라고 적혀있는데, 왜 엄마랑 학교 가???"
"으응... 할아버지 오늘 진료받으러 가셨거든. 그치만 걱정 마. 스케줄표의 큰 틀은 대부분 맞아. 큰 틀은..."
콩이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규칙 경찰관님에게, 평균에서 표준편차 하나쯤 벗어난 이 적당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예전에 연구과제 예산안을 작성하며 일억을 천만 원으로 적어내는 바람에, 습관적으로 검토하시다가 "아토선생!!" 하고 부르짖던 윗교수님의 눈빛이 콩이와 겹쳐진다. 이후로 교수님은 내게 일을 맡기실 때마다 꼭 다시 확인하셨다.
설마, 콩이도...
엄마의 펑크를 걱정해 매일 아침 스케줄을 알면서도 물어보는 것일까. 몇 년 전 제주도에서 탔던 렌터카 번호까지 기억하는 아이니,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겠다.
규칙 경찰관에게 규칙 범법자 엄마는 꽤 적절한 조합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아이의 유연성을 키워준다는 핑계로, 타고난 이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콩이가 엄마랑 사느라 고생이 많다.
얼마 뒤, 학교에서 보내온 활동사진 속에서 콩이의 메모를 발견했다.
아이는 괜찮았던 것이 아니라,
불안을 견디는 법을 배워나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