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느끼는 아이
콩이는 어릴 때부터 절이나 성당처럼 고요한 공간을 유난히 편안하게 여겼다. 길상사, 절두산성지, 명동성당. 자극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그런 곳은 아이에게 일종의 피난처였던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랬다(햇살을 안은 파도). 세상의 무수한 빛과 소리, 그리고 냄새들. 다른 사람들은 태연히 흘려보내는 자극이 내 안에서는 꽤 오랫동안 남아 나를 괴롭히곤 했다. 훗날 콩이의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 이후 ‘감각 과부하’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낯설기보다는 어딘가 무척 익숙했던 것도 그 때문이리라. 두 돌 무렵 미용실의 바리깡 소리에 온 세상이 떠나가라 울던 콩이를 보며, 부모로서 난처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날카로운 소리가 통증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공감되어 더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 난다.
세상을 강하게 느끼는 아이는 고요한 곳을 찾는다. 그리고 때로는, 타인의 고통도 그만큼 깊이 느낀다.
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던 제주의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콩이가 대뜸 말했다. 제주도에 여행을 왔으니, 작년에 갔던 약천사에 다시 가고 싶다고. 법당에서 만다라도 보고, 수월관음도도 봐야 한단다.
우리 가족은 제주에 갈 때마다 약천사를 들르곤 했지만, 그날은 기온이 40도 가까이 올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엄마는 밤샘 수행도 해본 나름대로 진지한 불자였지만, 푹푹 찌는 더위 앞에서는 여지없이 꾀가 났다. 그래서 콩이에게 슬쩍 제안했다.
“우리, 날도 더운데... 약천사 말고, 맥도날드에 가서 아이스크림 먹을래?”
콩이는 아이스크림을 정말 좋아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비장의 카드였으니까. 하지만 콩이는 아이스크림 대신 약천사를 택했다. 어쩔 수 없었다. 아이스크림에 감자튀김까지 얹어 드립니다! 평소에 잘 사주지 않던 간식까지 총동원해 회유해 보았지만, 협상은 무참히 결렬되었다.
결국 무더위 속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콩이의 고사리 같은 손에 이끌려 법당에 들어섰다. 공양미를 사서 소원을 기도칸에 적자고 했을 때, 나는 한번 더 놀랐다. 아빠가 여행 중에 손을 베어 대일밴드를 붙이고 있으니까, 아빠 손이 낫게 해 달라는 소원을 적자는 것이다. 설마 그것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포기했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아이가 보여주는 한없이 깊은 순수함 앞에서, 오히려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생일 케이크 앞에서도, 새해 소원 깃발 앞에서도, 콩이의 소원은 늘 자기 것이 아니었다. ‘엄마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나는 콩이의 새해 소원을 읽고 한참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콩이는 말로만 마음을 전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때로는 자신의 온 존재를 선뜻 건네주기도 했다. 작년 여름, 내가 앓던 지병이 악화되는 바람에 일주일 새 4킬로그램이 빠질 정도로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었다.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로 끙끙 앓으며 누워 있으니, 콩이가 다가와 자기 애착 담요를 엄마 덮으라며 내밀었다. 신생아 시절부터 속싸개로 쓰던 얇고 작은 면이불이었다. 한시라도 몸에서 떨어지면 불안해서 화장실뿐만 아니라 학교까지 갖고 다니던,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
"엄마..."
"응, 엄마 안 아파. 괜찮아. 왜?"
"이거 엄마 쓰라고..."
"세상에. 지금 5분만? 아니면 오늘 하루종일?"
"응. 오늘 하루 종일 ^0^ "
5분쯤 지나 콩이가 다시 방문을 열고 빼꼼 들여다보았다. 역시 소중한 담요를 하루 종일 빌리는 건 무리였나 싶어 웃으려는 찰나, 아이의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응. 엄마한테 이불 덮어주려고 다시 들어왔어."
소중한 애착담요로 나를 둥글게 감싸주는 아이의 다정한 몸짓에, 아파하던 몸과 마음의 구석구석이 따스함으로 가득 채워졌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아이는 감정을 못 느끼는 아이가 아니다. 콩이를 키우면서 그 사실을 자주 배운다. 오히려 타인의 감정까지 날 것으로 자기 안에 흡수하는 아이이기에, 때로는 그 많은 것들을 피해 자기만의 고요한 방 안으로 들어가 쉬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 생각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태도가 종종 눈치 없음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나는 그것을 벌거벗은 임금님 속 아이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눈으로 읽고 싶다.
콩이가 고요한 공간을 좋아하고, 가족의 작은 상처를 오래 마음에 품고,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선뜻 건네는 것은, 그 마음이 고스란히 사람을 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맑고 티 없는 순수함이 이 아이의 타고난 천성이라면, 그 빛을 오래도록 가슴에 지니고 살아갈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