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심장은 오늘도 뛴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by zeon
서울은 모든 도시와 이어진다.


KTX역과 고속터미널은 도시의 심장이다. 혈액을 내뿜 듯, 사람들이 쏟아져 나가고, 다시 흘러들어온다. 모든 도시는 이 심장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서울과 대전, 대구와 부산, 광주와 목포. 지도 위에 점으로 찍힌 작은 도시들은 철로와 도로를 따라 하나의 순환계를 이룬다. 그리고 그것들을 잇는 중심은 역과 터미널이다.


저마다 들고 나는 목적은 다르지만, 모두 서울역으로 모인다. 그곳에서 사람과 사람이 마주치고, 삶과 삶이 흘러 이야기가 서린다. 부산으로 향하는 여행객, 지하철을 환승하는 직장인, 역 광장에서 기다리는 연인, 추위를 피해 들어온 노숙인까지. 서울역은 모든 계층, 모든 목적, 모든 방향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곳이다. 누군가에게는 고향으로 가는 짙은 설렘, 다른 이에게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옅은 아쉬움의 시작이다.


추석을 앞둔 연휴 첫날, 서울역 대합실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나는 그 틈에서 잠시 앉을 자리를 둘러보았지만, 서 있을 공간도 여의치 않았다. 입장과 퇴장이 끊임없이 반복되었지만, 쉴 공간은 쉽사리 생기지 않았다. 입가에 낮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커피라도 마실 요량으로 발길을 옮겼다.


커피점 앞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주문하려는 사람들과 음료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뒤엉켜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 같았다. 안내 방송이 들려오자 사람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승강장으로 흡수되듯 사라졌다. 나는 그 움직임에 섞이지 못한 채, 한 사람의 관찰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어느새 강물처럼 나를 휘감았다.


행렬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열차는 도착하자마자 승객을 뱉어내고, 곧 다시 사람들을 삼켰다. 시작과 끝이 같은 문 사이로 스쳐갔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나의 하루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집에서 출발해 일터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작은 회로. 모든 여정은, 사실 떠남을 가장한 귀환이었다.


역은 그래서 모순적 공간이다. 이탈과 일상의 경계에 놓여 있다. 서울을 떠나는 사람은 이 도시가 강요하는 속도에서 잠시 벗어난다. 기차 안에서 그들은 비로소 잠들고, 창밖 풍경을 응시한다. 반대로 서울로 도착한 사람들은 다시 긴장한다. 캐리어를 움켜쥐고, 휴대폰을 확인하며, 어딘가로 빠르게 걸어간다. 서울역은 이완과 긴장,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놓인 중립지대다.


나는 역이 없는 도시를 상상했다. 아마 숨통이 막힌 듯 정체의 어둠 속에 갇힐 것이다. 순환은 곧 도시의 생명이었다. 그리고 역이 존재하기에 나는 여전히 어디론가 떠날 수 있고, 동시에 돌아올 수 있다. 정거장은 나의 피로를 증명하면서도, 또 다른 시작을 허락한다.


떠나는 자와 돌아오는 자가 얽히는 곳, 모든 방향이 한 점으로 모이는 곳. 그래서 서울역은 단순한 교통 거점이 아니라 도시의 심장이자 존재의 은유처럼 다가온다. 나는 매일 쌓이는 피로 속에서 탈출을 꿈꾸지만, 결국 도시 속으로 회귀한다. 완전한 도피는 없다. 하지만 도피를 꿈꾸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


서울역은 거대한 거울이 되어 묻는다.
너는 지금 떠나고 있는가, 혹은 돌아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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