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나를, 나는 커피를 마신다

하루를 태우는 검은 연료

by zeon
매일 아침, 도시는 언제나 커피의 향으로 눈을 뜬다.


여명이 채 사라지지 않은 거리 위로, 아직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뜨거운 커피 향이 피어난다. 회사가 밀집된 여의도의 회색 건물 사이에서도,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쉴 새 없이 오가는 홍대 골목길에서도, 어디에나 에스프레소 머신의 쇳소리가 울려 퍼진다. 뜨거운 물이 분출되는 순간, 도시의 심장은 더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분주한 발걸음, 한 손에 들린 일회용 커피컵, 허공에 흩날리는 향기. 그 모습은 도시를 비추는 거울상 같다. 커피는 나의 생존 연료이자, 내 삶의 작은 의식 같은 것이 되었다. 빌딩 숲 한가운데, 단 한 그루의 원두나무조차 자라지 못하는 이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하루를 원두의 맛으로 시작한다. 도시가 갈아 넣은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원두가 날마다 분쇄되듯, 나 또한 조금씩 갈려나간다.


도시는 피로하다. 그래서 커피가 필요하다. 커피 없이는 하루가 굴러가지 않는 듯, 출근길 지하철역 앞 프랜차이즈 카페, 편의점 진열대의 캔커피, 골목 어귀 작은 가게의 핸드드립. 다양한 형태로 뿜어져 나오는 커피의 향은 지나가는 이들을 잡아 세운다. 졸린 눈꺼풀을 억지로 치켜뜨게 만들고, 아침의 흐릿한 정신을 붙잡아 일터로 밀어 넣는다.


원두가 물을 만나 커피가 되는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도시의 삶과 닮아 있다. 뜨거운 물이 원두 속 깊은 본질을 우려내듯, 도시라는 뜨거운 현실은 내 삶을 추출한다. 한 모금의 커피가 쓴맛도 나고, 신맛도 나며, 고소하기도 한 것처럼, 도시에서의 하루도 그 모든 맛이 뒤섞인다.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복합적인 맛은 커피의 정체성이자 내 삶의 맛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어김없이 커피 한 잔을 들고 서서히 걸었다. 식은 마음을 따뜻한 온기로 데우고, 잠든 정신을 쓴 맛으로 깨웠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분주한 도시 속에서 나만의 고요를 마셨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나의 각성은 곧 도시의 각성이고, 내 호흡은 곧 도시의 호흡이라는 사실을. 도시와 나는 서로의 연료가 되어버렸다.


때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커피의 쓴맛은 본래 피로와 졸음을 덮기 위해 선택된 타협의 맛일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하루하루를 버티는 방식처럼. 너무 쓰지만 달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거부할 수도 없는, 그런 맛. 그것이 도시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커피를 마신다. 원두도 자라지 않는 이 빌딩 숲에서, 유일하게 피어나는 향기를 들이마신다. 커피가 없다면 도시는 어떻게 깨어날 수 있을까, 나는 또 어떻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까.


아니, 이 쓴맛 속에서 나만의 달콤함을 녹여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