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윤서진 매니저님?” 키는 어림잡아 180 후반. 탄탄한 몸매와 함께 웃을 때마다 보이는 보조개. 어딘가 서늘하지만 다정해 보이는 눈매.
“안녕하세요, 저는 LOVER 7, 시리얼 넘버 KAI- 071, 카이입니다.”
‘백윤호 이 자식.”
카이는 강아지파도, 늑대파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여우상? 날카로운 눈매와 약간은 새침한 입술. 약간 헝클어진 머리와 회색 후드티. 장난끼 많은 남고생을 연상시키는 외모였다.
“아, 안녕하세요. 윤서진입니다. 한 달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일단 들어오세요.” 카이는 능숙하게 서진을 집 안으로 안내했다.
저택의 내부는 굉장히 독특했다. 기본적인 인테리어는 검은색 베이스였고, 간간히 하얀색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세련되고도 매혹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카이와 잘 어울렸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오브제와 바닥재 등으로 꾸민 깔끔한 디자인이 포인트였다.
서지의 방은 2층이었다.
“엥?” 자신도 모르게 툭 나와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방만 초록색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 방만 초록색이예요?”
“백윤호 팀장님이 지시하셨어요. 서진 매니저님이 초록색을 좋아하신다고.”
서진은 움찔했다. 평소에 자신에게 무심한 백윤호가 내 취향을 알고 있었다고?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인간이다.
‘백윤호 생각은 그만하자. 일단 일에 집중해야 돼.’
“대충 정리하고 내려오세요. 저녁 준비하고 있을 게요.” 카이는 안내를 마친 뒤, 주방으로 내려갔다.
“후우.” 서진은 짐을 내려놓고, 침대에 툭 앉았다. 꽤 피곤했다.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한 장씩 살펴봤다. 오늘 할 일은 스무고개 게임.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마 서비스가 상용화된 이후에도 이런 절차를 차례대로 진행할 것이다. 아마 매니저인 서진은 사용자와 LOVER 7간의 대화 내용을 토대로 설정을 수정하고, 만족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대충 짐을 정리한 서진은 서류를 들고 주방으로 내려갔다. 요리를 하는 카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저게 정말 로봇이라고? 완전 인간 같잖아.’ 새삼 놀라워하는 서진이다.
“오셨어요? 일단 드시고 시작하시죠.” 카이는 식사부터 권했다.
서진은 마지못해 숟가락을 들고 어색하게 웃었다. 뒤이어 이어진 정적. 둘은 대화도 없이 묵묵히 밥을 먹었다.
“저기..” 서진이 말문을 열였다.
“제가 알기론, 사용자에 따라 외모, 성격, 배경까지 세팅되어 있다고 하던데.. 혹시 카이는 어떤 사람이예요?”
“제 이름은 카이. 경기도 수원시 출생. MBTI는 ENFP. 운동을 즐기고, 직업은 대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어요.”
“아..” 서진은 말문이 막혔다. 이게 과연 로봇이란 말인가? 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래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사실 백윤호가 자신을 속인 거 아닐까? 로봇이 아니라 인간을 데려온 거 아닐까?
“아, 어떤 생각하시는지 알겠다. 잠시만요.”
이상한 기계음이 잠시 짧게 울렸다.
“으악-!” 서진은 이내 소리를 질렀다.
피부 시스템을 제거한 카이는 영락없는 로봇이었다. 온갖 기계들로 이루어진 본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체의 내부가 아니었다. 수많은 불빛과 소재로 이루어진 로봇의 속살. 카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전 로봇이에요. 온전히 서진 매니저님만을 위해 존재하는.”
서진은 흠칫하며 진정했다. 다시 숟가락을 들어 밥을 마저 먹었다. 사실 밥이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억지로 먹었다.
“서진 매니저님 말고 서진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카이가 물었다.
서진은 “그래요.” 라고 어색하게 대답했다.
정녕 이 로봇과 사랑에 빠져야 한다니. 사랑. 도대체 사랑이 무엇일까. 자신이 진정한 사랑을 해 본적이 있을까. 몇 번의 어린애 같은 연애를 해본 적은 있었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역시 본인에게 사랑은 백윤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백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환상이 깨질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본인이 어떻게 이 로봇에게서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서진은 정말 막막했다. 뒷정리를 하면서도 한달 안에 정말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둘은 거실 소파에 마주보고 앉았다. 본격적인 스무고개 게임이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영화, 음식, 책, 취미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중간에 분위기를 풀기 위해 서진이 먼저 술을 제안했다.
“로봇도 술에 취해요?”
카이는 잔에 와인을 따르며 대답했다. “네, 소주, 와인, 맥주, 브랜드에 따라 도수를 계산해서 취함 정도를 결정합니다. 서진 씨는 술이 강한 남성을 좋아하시네요. 그래서 제 주량은 꽤 센 편입니다.”
“흐음-.” 서진은 자료를 펼치더니 메모를 끄적였다.
‘시스템 설정, 계산 등 몰입을 해치는 요소는 수정.’
카이가 슬쩍 보더니 머쓱하게 덧붙였다.
“아, 이건 좀 부자연스럽나요.”
서진도 어색하게 웃으며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둘은 잠시 말없이 와인을 홀짝였다. 그러다 불쑥, 서진이 말했다.
“저희가 과연 한 달 동안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요?”
카이는 묵묵부답이었다. 서진은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 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카이가 말했다.
서진은 지긋이 카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믿지 않았다. 어차피 인센티브가 목적이었다. 사랑하는 척하면서 개선사항을 발견하면 그만이었다. 로봇과 사랑이라니. 말도 안 돼.
“전 애초에 그렇게 태어났어요. 서진 씨를 사랑하기 위해서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존재의 의미가 없습니다.” 카이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왜냐면 전 연애 로봇이니까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로봇. 상대방이 슬퍼하면 같이 슬퍼해주고, 기뻐하면 같이 기뻐해주는. 연인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게 제 일입니다.”
“서진 씨는 어떤 사랑을 원하시나요? 그 부분이 정확하게 입력되지 않아 제대로 수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서진은 망설였다. 모른다. 서진은 자신이 어떤 사랑을 원하는지 몰랐다.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니, 어떤 로봇을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내가 어떤 사랑을 원하는지.” 서진은 솔직하게 답했다.
둘 사이의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술기운이 슬며시 올라온 서진은 양 볼이 발그레했다. 그 모습을 본 카이도 재빨리 양 볼 설정을 바꿨다. 다행히 서진은 눈치재지 못했다. 와인을 연달아 마시려는 그녀를 카이는 제지했다.
“그만 마셔요, 매니저님. 계속 저 테스트 하셔야죠.”
물끄러미 카이를 바라보던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서류를 다시 펼쳤다. 그러나 서류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요. 음… 기업 코너의 혁신기술 덕분에 세상은 많이 바뀌었죠. 예전부터 인류가 열망하던 것들과 우려했던 것들이 모두 실현됐어요. 이제 인간들은 먹고사는 문제 대신 본인 삶의 의미를 찾아서 떠나고 있어요. 나도 곧 일을 그만둘 거예요. 이 과도기를 무사히 통과하면, 이제 인류는 기본 소득이 보장되는 시대에 살게 될 거니까.
세계 최고로 인간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당신 같은 로봇이 공개된다면 이제 인류는 사랑하기 위해 더 이상 노력하지 않을 거예요.
예전에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소개팅도 나가고, 구애도 하고, 그러다 결혼도 해서 애도 낳았죠. 같이 늙어가고, 살아가면서 인생의 풍파를 견뎌내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어요. 그 어느 것보다도 사랑은, 인간이 살아있음을 확인해주는 마지막 장치라고 할 수 있었죠.
그런데 당신들이 세상에 나오면, 인간들은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요? 아마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그게 자연스럽겠지만, 기존의 성인들은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난 그게 궁금하네요.” 그녀는 살짝 눈치를 보았다.
“아, 기분 나빴죠. 죄송해요. 난 그냥… 이렇게 같이 앉아있는 게 너무 신기해서….”
카이는 곧 대답했다. “전 이해해요. 무조건적인 공감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매니저님의 감정을 이해해요. 말씀하신 대로 전 시스템이죠. 누군가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인간은 절 창조해냈어요. 그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절 만들어내는 데 열광적인 걸까요?
더 효율적이고, 더 생산적인 일을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그게 나쁜 건가요? 물론 과도한 집착은 항상 문제가 되죠. 하지만 비슷한 문제들은 과거에도 매일 일어났잖아요. 시대의 발전에 따라 그 양상이 변화했을 뿐, 본질적인 악은 같았죠.
사랑도 그런 거 아닌가요? 사랑의 형태가 바뀐 것이지, 그 본질은 항상 같아요. 진심으로 누군가를 아끼고, 같이 말하며, 같이 밥을 먹는 행위.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행위일 뿐이에요. 예전에는 인간과 인간만이 그 행위를 할 수 있었다면, 이젠 로봇과도 가능해진 거죠.
인류의 새로운 모습일 뿐이에요. 확장된 것일 뿐이죠.”
다음 날 아침, 서진은 침대에 누워 어제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꽤 유의미한 대화였다. 그러고보니 모든 인간들도 첫 만남에는 상대방을 탐색하고, 알아가고, 이후에 서서히 맞춰가지 않나? 어제 밤은 인간 사랑의 첫 단계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할까. 서진은 서류를 뒤적였다.
“그 다음은 썸 단계인가.”
대충 샤워를 하고, 카이를 만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여전히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문득 그 뒷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잔잔한 물소리를 듣고 있으니 어딘가 평온한 느낌도 들었다.
어렸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는 최선을 다해 서진을 키우셨다. 서진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았다. 자신은 빌라의 지하층, 백윤호는 옆의 신축 아파트.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 항상 비교되었다. 위축되었다. 항상 똑똑하고 완벽한 백윤호와 달리 자신은 평범했다. 어디를 가도 눈에 띄지 않았다.
백윤호가 글로벌 IT기업 코너의 전략기획본부실의 팀장으로 승진했을 때, 본인은 코너의 계열사인 결혼정보회사의 매칭 매니저로 취업했다. 그때 환하게 웃던 엄마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 열심히 일해서 언젠간 그럴듯한 아파트에서 살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아이도 낳고 싶었다. 가끔 힘든 구간을 넘을 때면, 서로의 어깨에 기대기도 하면서 말이다.
“매니저님?” 눈을 떠보니 카이가 뒤돌아 있었다.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갈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서진은 천천히 다가가 카이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카이는 당황하지 않고 그 시선을 받아들인다.
서로는 그저 둘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서진의 눈이 그의 입술을 향한다. 서진이 원하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걸 알 수가 있을까? 로봇이 정말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는 그저 나의 이상형대로 조립된 고철 덩어리일 뿐이다. 서진은 혼란스러웠다. 이 로봇이 인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의심하지 마요. 난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그러니까 이 감정은 가짜가 아니에요.” 카이는 조용히 속사였다.
순간 서진은 카이에게 키스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서진도 눈을 감았다. 모든 공기는 숨막히게 조용했다. 갑작스러웠지만 다정했다. 카이는 손에 끼워진 고무장갑을 벗어버렸다. 그리고 서진의 얼굴을 감쌌다. 서진은 카이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이제 막 정오가 시작되려는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