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시선이 가 닿은 딸아이의 책꽂이에는 책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다. 아이돌 가수의 앨범들이다. 형형색색의 재킷은 화려하지만, 정작 그 안의 둥근 원반이 돌아갈 곳은 이 집안 어디에도 없다. 우리 집에는 CD 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이다. 비닐만 뜯어진 채 먼지가 앉아가는 앨범을 보며 묻는다. "듣지도 못할 걸 왜 샀니?"
아이는 덤덤하게 대답한다. "포토카드 때문에 산 거야."
자세히 보니 같은 앨범이 여러 장이다. 원하는 멤버의 사진이 나올 때까지 '음악'을 대량으로 사들인 셈이다. CD는 그저 포장지이자 굿즈를 담는 그릇일 뿐, 본질인 음악은 멜론이나 유튜브라는 보이지 않는 전파를 타고 흐른다. 알맹이는 버려지거나 방치되고, 껍데기가 귀한 대접을 받는 풍경. 주객전도(主客顚倒)도 이런 유난스러운 주객전도가 없다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그 모습이 꽤나 한심해 보였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기형적인 상술에 아이들이 놀아나는 것 같아 혀를 찼다. 문득, 오래전 가수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섰던 때가 떠올랐다. "음반 시장을 살리자", "mp3 다운로드 반대"를 외치며 비장하게 행진하던 그들. 덕분에 저작권법은 강화되었을지 몰라도, 크리스마스 거리의 캐럴은 저작권료 걱정에 자취를 감췄고, 스키장은 적막 속에 눈 긁는 소리만 가득하게 되었다. 기술의 흐름을 거스르며 대중을 가르치려 들었던 그 뻣뻣함이 나는 늘 불편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음반 100만 장 시대'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전시'하고 싶어 하는 팬덤에 의해 부활했다.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는 것이 되어버린 지금, 나는 이 현상을 그저 비웃을 수만은 없다는 걸 깨닫는다. 내 기억의 서랍을 열어보면 나 역시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먼지 쌓인 창고 깊숙한 곳, 누렇게 바랜 잡지들이 생각난다. ‘PC 챔프’, ‘스크린’, 혹은 패션 잡지들. 나 역시 그 두꺼운 종이 뭉치를 사들고 가슴 뛰던 시절이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부록' 때문이었다. 정품 게임 CD 한 장, 꽤 쓸만한 캔버스 가방, 혹은 브로마이드. 잡지의 기사 내용은 읽는 둥 마는 둥, 서점 문을 나서자마자 부록 박스부터 북북 찢어 확인하던 그 조급함.
나에게 잡지는 500페이지짜리 포장지였고, 부록이 곧 본체였다. 그때 어른들이 나를 보며 혀를 찼던 이유를, 이제야 내가 딸아이를 보며 똑같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종종 '본질'이 무엇인지 따지기를 좋아한다. 책은 읽어야 하고, 앨범은 들어야 하고, 옷은 입어야 한다고.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그렇게 기능적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마음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이라, 우리는 자꾸만 그것을 만질 수 있는 물성(物性)으로 확인받고 싶어 한다. 스트리밍으로 흘러가 버리는 음악은 붙잡을 수 없기에, 아이들은 만질 수 있는 포토카드에 집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게임 공략집보다는 그 게임이 담긴 얇은 CD를 손에 쥐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했던 것처럼 말이다.
가수들이 띠를 두르고 훈계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대상을 지갑을 열어 지켜내고 있었다. 비록 그 방식이 '음악 감상'이라는 고전적인 형태가 아닐지라도, 그것은 분명한 애정의 투영이다. 기술과 싸워 이기려던 억지스러움보다, 차라리 굿즈에 열광하는 이 '속물적인 사랑'이 훨씬 더 솔직하고 인간적이지 않은가.
딸아이의 책상 위, 플레이어가 없어 침묵하고 있는 CD들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것은 쓸모를 잃은 플라스틱 덩어리가 아니라, 무형의 음악을 손에 쥐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빚어낸, 반짝이는 조약돌 같다.
어쩌면 우리 삶의 낭만은 '주객전도'에서 오는지도 모르겠다.
커피 맛보다 카페의 분위기를 마시러 가고, 여행지보다 그곳으로 가는 기차 안의 설렘을 더 사랑하는 것처럼.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는 것을 압도할 때, 우리는 그것을 '열정'이라 부르기도 하고 '취향'이라 부르기도 한다.
당신의 방구석 어딘가에도, 기능은 잃었지만 차마 버리지 못한 무언가가 놓여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안심하시라. 당신은 비합리적인 소비를 한 것이 아니라, 당신만의 방식대로 무언가를 깊이 사랑했던 증거일 테니까.
쓸모 있는 것들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쓸모없는 것들은 삶을 사랑스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