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30분. 휴대폰 화면의 불빛이 꺼진 지 한참이 지났지만, 눈꺼풀은 여전히 무겁게 내려앉을 줄 모른다. 좋은 사람들과의 단체 채팅방 대화는 즐거웠다. 무거운 이야기들이 중심이 되기는 했지만 서로의 사람됨을 알기에 각자의 불안을 감싸줄 수 있었고, 중간중간 섞이는 유쾌한 말들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대화가 끊겨 정적만이 남은 방 안, 공기청정기 모터가 '웅-' 하고 돌아가는 낮은 소리만이 귀를 채우자 여지없이 익숙한 친구가 찾아온다. 불면증이다.
잠들기는 글렀다. 억지로 눈을 감아보아도,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여 봐도,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의 파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결국 침대 맡에 두었던 안경을 다시 쓰고 책상 앞으로 돌아와 PC를 켠다. 캄캄한 방 안, 모니터가 뱉어내는 창백한 푸른빛이 내 얼굴을 비춘다. 나는 마치 무엇엔가 홀린 사람처럼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다. 내 마음을 할퀴고 지나간 장면들이 가시처럼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 오전, 협력업체와의 미팅 자리였다.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의 방향을 결정짓는 자리였기에 공기는 다소 무거웠다. 문제가 된 건 협력업체의 팀장인 K였다. 그는 나보다 연배가 위였고, 업계 경력도 제법 긴 사람이었다. 하지만 회의가 시작되고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그가 프로젝트의 핵심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논리 구조에 오류가 있었다. 지적을 받자, K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뭐 논리를 세우고 문서를 작성하는 작업이 익숙하지 않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였다. "아, 그 편이 더 설득력이 있겠군요. 수정하겠습니다." 이 한마디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K는 달랐다.
"아니, 그렇다고 빠진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건은 이렇게 처리하는 게 맞다니까요"
"그러면 직접 작성을 해주시겠습니까?"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대신, 목소리를 높여 자신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회의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빙판길처럼 차갑고 위태로워졌다. 그의 동료들도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보였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 옹색한 변명, 그리고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고집. 그 시간을 견디며 나는 속으로 그를 맹렬히 비난했다. '나이 먹고 왜 저럴까', '정말 추하다'.
하지만 하루가 더 지난 이 새벽, 모니터 앞에 앉은 지금. 나는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땠을까? 혹시 나 역시 내 무지나 실수가 드러나는 순간, 쿨하게 인정하기보다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을 찾고 싶지 않았던가. 혹여나 내 권위가 상처 입을까 봐, "나 때는 말이야"라는 논리로 상대를 찍어 누르려했던 적은 없었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능력이 부족한 것은 죄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미완성의 존재다. 신이 아닌 이상, 모든 분야에서 완벽할 수는 없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저절로 모든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도 아니다. 젊은 신입사원이 엑셀 함수를 모르는 것이나, 중년의 팀장이 최신 트렌드를 읽지 못하는 것이나, 그 본질적인 '결핍'의 무게는 같다.
문제는 그 '빈틈'을 대하는 태도다. 오늘 K가 보여준 비극은 능력의 부재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 부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만'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사람은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의 빈틈을 타인의 지혜로 채울 줄 안다. "내가 잘 모릅니다, 가르쳐 주시겠습니까?"라고 묻는 순간, 그 빈틈은 성장의 통로가 되고 타인과의 연결 고리가 된다. 반면,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남을 탓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꼰대'는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0%로 설정해 두는 사람, 자신의 빈틈을 지적하는 것을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그리하여 소통의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사람이 바로 꼰대다.
K는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함께하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었고, 회의 시간을 낭비시켰으며, 사업주와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혼자만의 능력 부족은 개인이 감당하면 될 일이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아집은 집단 전체를 병들게 하는 '민폐'가 된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밤낮없이 욕을 먹는 삶, 그것만큼 비참한 노후가 또 있을까.
능력은 건물을 짓는 벽돌과 같고, 태도는 그 벽돌을 이어 붙이는 시멘트와 같다. 벽돌 몇 개가 빠진 건 보수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시멘트가 잘못되어 굳어버리면, 그 건물은 통째로 무너뜨려야 한다. 늙음이란 단순히 육체의 노화가 아니라, 마음의 유연성이 사라져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시계는 어느새 두시를 넘어 세시로 향하고 있다. 나는 뻣뻣해진 뒷목을 주무르며 생각한다.
나는 어떤 어른으로 늙어가고 있는가.
완벽한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기로 한다. 대신, 투명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틀렸으면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 그것이야말로 나이 듦이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좋다. 가끔은 실수투성이여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틈새로 사람의 온기가 드나들 수 있게 문을 열어두는 것이다. 나의 부족함이 당신의 도움으로 채워질 때, 우리는 비로소 '동료'가 되고 '우리'가 된다.
오늘 만날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너그러운 표정을 지어보아야겠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가 틀린 말을 한다면, 기꺼이 지적해 달라고, 당신의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일 준비를 해야겠다. 그렇게 유연하게 흔들리며 살아가고 싶다. 뻣뻣하게 서 있다가 부러지는 고목보다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갈대처럼.
컴퓨터를 끈다. 팬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자 다시 적막이 찾아온다. 이제는 조금 편안하게 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순간, 당신은 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사람으로 넓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