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자동차 바퀴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새벽이다. 머리맡에 둔 가습기가 뿜어내는 하얀 수증기만이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생명체 같다.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려 보지만, 서늘한 기운은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사실 잠이 오지 않는 건 방 안의 온도 때문이 아니다. 조금 전, 뇌리에 박힌 장면 하나가 자꾸만 천장에 영사기처럼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낮에 있었던 미팅이었다. 별것 아닌 대화였는데,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미간을 아주 미세하게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 찰나의 순간이 슬로모션처럼 반복된다. "아, 그때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혹은 "좀 더 세련되게 받아칠 순 없었을까?" 차가운 물 한 잔을 들이켜고 다시 누워도,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그 장면은 내려갈 줄을 모른다. 오늘따라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 거리며 귓가를 어지럽힌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가진 것 같은 평범한 재능들이 유독 부족한 사람이다. 살면서 늘 부러워했던 능력이 딱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술을 잘 마시는 능력이다. 나는 그 이름도 찬란한 알쓰(알콜쓰레기) 체질이다.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는지,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온몸이 홍당무처럼 붉어진다. 젊은 시절, 술잔이 오가는 왁자지껄한 회식 자리에서 사이다 잔을 들고 머쓱하게 앉아있을 때면 왠지 모를 소외감이 들곤 했다. 그 알딸딸한 기운을 빌려 형님, 아우 하며 끈끈해지는 그들이 부러웠다. 술은 사회생활의 윤활유라는데, 나는 늘 뻑뻑한 톱니바퀴처럼 겉도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는 머리만 대면 잠드는 능력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탓에 불면은 나의 오랜 친구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해"라며 코를 골고 자는 사람들을 보면, 그 단순함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마지막, 사실 가장 절실하게 갖고 싶었던 능력은 바로 '실수를 빨리 잊는 능력'이다.
앞의 두 가지야 체질 탓이라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이건 좀 다르다. 나는 사소한 실수 하나를 저지르면 며칠, 아니 몇 년을 곱씹는다. 이불킥을 날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하이킥으로 이불을 찢을 지경이다. 실수를 툭 털어버리고, "아,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했네요!" 하며 씩 웃고 넘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당당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들. 그들의 '쿨함'이, 그 단단한 멘탈이 나는 너무나 질투 났다.
내 마음속에는 가혹한 편집자가 한 명 살고 있나 보다.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멋진 장면은 다 잘라내고, 내가 더듬거리고 넘어지고 얼굴 붉히던 NG 장면들만 모아서 '디렉터스 컷'으로 보여주니까. 그러다 보니 실수가 두려워 자꾸만 움츠러든다. '또 틀리면 어떡하지?'라는 공포가 발목을 잡으니, 새로운 시도 앞에서는 늘 주저하게 된다. 실수를 잊지 못하는 성격은 꼼꼼함이 아니라, 그저 나를 갉아먹는 형벌 같았다.
그런데 말이다.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정말로 우리가 부러워하는 그 '쿨한' 사람들은 정말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실수를 뇌에서 지워버린 걸까?
도자기 수선 기법 중에 '킨츠기(Kintsugi)'라는 것이 있다. 깨진 도자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깨진 틈을 옻으로 붙이고 금이나 은가루를 뿌려 장식하는 기술이다. 수리된 도자기는 깨지기 전보다 더 아름답고 독창적인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깨진 흔적(실수)을 감추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황금빛으로 드러내어 그 도자기만의 고유한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부러워했던 '실수를 빨리 잊는 능력'의 본질은 단순한 망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수를 '소화하는 속도'였다. 배탈이 났을 때 음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죽부터 천천히 먹으며 위장을 달래듯, 그들은 실수를 꿀꺽 삼켜 내 몸의 양분으로 만드는 소화력이 좋은 사람들이었던 거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매끄러운 미끄럼틀이 아니다. 오히려 울퉁불퉁하고 거친 계단에 가깝다.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들은 그 계단의 한 칸 한 칸을 형성하는 벽돌이다. 실수를 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하며 잠 못 이루는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사실 그 벽돌을 단단하게 굽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야구 전설 베이브 루스는 홈런왕이자 동시에 삼진왕이었다. 그가 삼진을 당했을 때 그 수모를 잊기만 했다면 다음 타석에 설 수 없었을 테다. 그는 삼진을 당한 그 궤적을 몸에 새겼고, 덕분에 다음 공을 담장 밖으로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실수를 빨리 잊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 순간이 너무 따갑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따가움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고, 더 나아지려 한다는 증거다. 실수를 거울삼아 비슷한 상황에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힘. 그것은 '망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직시하고 끌어안는 '용기'에서 온다.
그러니 나는 이제 '실수를 잘 잊는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려 한다. 대신 '실수를 잘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제 저지른 말실수 때문에 오늘 밤 이불을 걷어찼다면, 그것은 내일 더 사려 깊은 말을 하기 위한 예행연습이었다고 생각하려 한다. 그 부끄러움이 굳은살처럼 박혀, 다음에는 같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나를 지탱해 줄 테니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혹시 아까 낮에 저지른 실수 때문에 잠 못 들고 있는가? 상사의 꾸지람이, 거래처에서의 실수가, 혹은 연인에게 뱉은 모진 말이 가슴을 찌르고 있는가.
괜찮다. 당신이 지금 괴로워하는 이유는 당신이 부족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쿨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자책하지 말자.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에, 오답을 지우개로 빡빡 지운다고 해서 깨끗해지지 않는다. 대신 그 위에 붉은색 펜으로 별표를 치고, "다음엔 이렇게 해야지"라고 적어두는 건 어떨까.
오늘 당신이 겪은 그 실수는, 당신을 주저앉히는 족쇄가 아니라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 디딤돌이다. 밤이 깊었다. 실수는 이 밤에 잠시 뉘어두고, 내일은 그 실수 덕분에 조금 더 현명하고, 조금 더 당당해진 당신을 마주하길 바란다.
당신의 욱신거리는 그 마음이, 머지않아 단단한 굳은살이 되어 당신을 지켜줄 것이다.
오늘도 치열하게 흔들리며 하루를 버텨낸 당신에게, 깊은 위로를 보낸다.
실수는 지워야 할 얼룩이 아니라, 당신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금빛 훈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