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두 장의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by Tugboat



요즘 서점가나 유튜브를 보면 피해야하는 사람 1순위로 ‘나르시시스트’를 이야기한다.

그들은 타인의 불행을 먹고 자라며, 남이 잘되는 꼴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존재라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주변의 누군가를 떠올리며 "맞아, 그 사람이 딱 그래" 하고 손가락질하지만, 나는 그 단어를 접할 때마다 묘한 서늘함을 느낀다.

그 손가락 끝이 언젠가 나를 향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하고도 근원적인 두려움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건 타인이 아니다. 내가 그토록 경멸하던 그 차가운 마음이, 혹시 내 안에도 똬리를 틀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다.




겨울바람 속에 선 기우(杞憂)

툭.

무심코 걷어찬 돌맹이가 얼어붙은 땅 위를 구른다.

겨울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지만, 내 마음을 더 시리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은 채, 성당 마당을 서성이고 있었다.

인간의 본성이란 본래 이기적이지 않던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타인이 가졌을 때 느끼는 박탈감은 생존 본능에 가깝다.

머리로는 축하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쎄해지는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나르시시즘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비릿한 질투의 감정이 내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은 좁아지고, 세상의 풍파에 깎여 남의 기쁨에 인색해지기 쉬우니까.

나는 나 자신을 믿지 못했다.

스스로를 선한 사람이라 포장하고 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튀어 나올지도 모를 내 안의 비겁함이 두려웠다.




준비했던 질투는 없었다

나에게는 둘도 없는 오래된 벗이 하나 있다.

서로의 찌질한 과거부터 빛나던 순간까지 모두 지켜봐 온, 내 인생의 증인 같은 녀석이다.

그 친구에게는 이번에 대입을 치른 딸이 있다.

어릴 적부터 영민하여 친구의 자랑이자 희망이었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이번에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대학, 최고의 학과에 수시 원서를 넣었다.

발표 날이 다가올수록 친구에게선 뭔가 모를 초조함이 느껴졌다.

나 역시 무언가 도울 일이 없을까 찾게될만큼…

주말 미사 시간, 차가운 장의자에 앉아 친구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친구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기를. 그 집안에 웃음꽃이 피기를.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는데, 문득 뱀 혀처럼 갈라진 질문 하나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만약 그 아이가 정말 합격한다면... 나는 100% 순도 높은 진심으로 웃어줄 수 있을까?'

내 자식의 입시는 그리 수월하지 않을 것 같은데.

친구의 딸이 보란 듯이 비상하는 모습을 보면, 혹시라도 내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리진 않을까.

'축하한다'는 말 뒤에 숨겨진 씁쓸함을 들키지 않으려 연기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내심 내가 나르시시스트와 다를 바 없는 속물일까 봐, 그게 무서웠다.

그리고 그 날, 기다리던 카톡이 하나 울렸다.

지잉- 지잉-.

"우리 딸 합격했다."
담백했지만 친구의 많은 감정이 전해오는 듯 했다.

그 순간이었다.

내가 걱정했던 모든 시나리오는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내 안의 어딘가를 관찰하고 검열할 틈도 없었다.

톡을 확인한 순간, 내 심장은 마치 내 일인 것처럼 쿵쾅거렸다.

"와우! 진짜? 축하! 크게 한턱 쏴라"

대단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이건 억지로 짜낸 축하가 아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뜨거운 안도감, 그리고 벅찬 기쁨이었다.

질투? 시기? 그런 감정이 들어설 자리는 단 1평도 없었다.

친구의 행복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내 마음까지 시원하게 씻어내리는 기분이었다.

내 입가에도 바보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 나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구나.




두 가지의 합격 통지서

탁.

나는 무릎을 치며 혼자 소리내어 웃었다.

오늘 나에게는 두 가지 좋은 일이 일어난 셈이다.

하나는 친구 딸의 합격이라는 경사요,

또 하나는 내가 '타인의 행복에 조건 없이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우리는 가끔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한다.

세상이 삭막하다 보니, 내 마음도 삭막해졌을 거라 지레짐작하며 스스로를 괴물 취급한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우리 안의 선한 본성은 생각보다 강력하게 작동한다.

이성은 "질투해야 해"라고 속삭일지 몰라도, 가슴은 "함께 기뻐하자"며 먼저 뛰어나가는 것이다.

내가 했던 그 모든 걱정들—'내가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을까'—은 역설적으로 내가 그만큼 친구를 아끼고, 내 마음을 정결하게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반증이었다.

진짜 뒤틀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친구의 기쁨이 나의 기쁨으로 전이되는 그 찰나의 순간.

그것은 마치 잘 조율된 악기가 옆 악기의 울림에 공명(共鳴)하는 것과 같았다.

나의 마음은 아직 녹슬지 않았고, 여전히 맑은 소리를 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당신의 마음은 생각보다 따뜻하다

성당을 나서며 올려다본 밤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차가운 겨울바람도 이제는 상쾌하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촛불이 환하게 타오른다고 해서 내 촛불이 초라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빛 덕분에 내 주변까지 환해질 뿐이다.

오늘 확인한 나의 '반사적인 기쁨'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큰 자산이 될 것이다.

타인의 행복을 내 행복의 연료로 쓸 수 있는 능력만큼 가성비 좋은 삶의 기술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오늘 밤은 걱정 없이 친구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거하게 한턱내라고 으름장을 놓아야겠다.

그 술자리에서 나는 그 누구보다 크게 웃고, 떠들고, 박수 칠 것이다.

연기가 아니라, 그저 터져 나오는 마음 그대로 말이다.



타인의 좋은 소식 앞에 잠시라도 머뭇거릴까 봐 두려워했는가?걱정하지 마라.
당신의 머리는 의심할지 몰라도, 당신의 심장은 이미 박수 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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