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이 폭발한 지 엿새째 되던 새벽, 압록강 위를 드리운 안개는 모든 경계를 지워버렸다. 강물은 잿빛 화산재로 뒤덮여 흐르고 있었고, 물비린내와 유황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부교 위로 장갑차의 쇳소리가 낮게 울렸다. 중국군이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단순한 구호 현장이 아니라, 새롭게 설정된 국경선의 남쪽 끝이었다.
화염에 잠긴 평양의 영상이 전 세계에 방송되던 바로 그 순간, 중국은 더 이상 지켜보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북한 주민 보호를 위한 평화유지 임무’였지만, 병사들의 눈빛에는 연민이나 구호의 기색은 없었다. 그들은 북으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경을 남쪽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압록강을 건넌 중국군은 곧바로 북한 북부 전역을 행정 구역으로 재편하기 시작했다. 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는 ‘조선 자치 행정구’라는 이름 아래 새롭게 단장됐고, 폐허가 된 마을마다 붉은 오성홍기가 걸렸다. 행정기관의 간판은 한글이었지만, 그 안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언어는 표준 중국어였다.
군청 자리에는 중국 공산당 간부가 앉아 있었고, 식량 배급소에는 중국 인민지원군 마크가 찍힌 쌀 포대가 놓였다. 주민들은 그 포대를 받아 들며 고개를 숙였지만, 속삭임은 이미 바뀌고 있었다.
“남쪽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중국은 벌써 우리를 지켜준다네.”
“미국은 왜 아무 말이 없는가? 남한은 우리를 받아줄 준비가 된 건가?”
이것은 총성이 없는 전쟁이었다. 마음을 점령하는 전쟁이었다.
만주에서는 이미 다른 지도가 준비되고 있었다. 선양 북부전구 사령부의 대형 전자 지도 위에는 새로운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것은 압록강이나 두만강이 아니라, 평양을 기준으로 북쪽 100km 지점이었다. 대동강 이북 전체가 중국의 새로운 전략 경계선으로 선포된 것이다.
지도의 하단에는 작게 적힌 문구가 있었다.
“이 선은 우리의 전략 한계선이자 새로운 국경이다. 이남으로 내려가면 미국과의 전면전이 된다. 이북은 중국이 안정화한다.”
이는 ‘철수 조건’이 아니라 ‘점유 선언’이었다.
만주에 주둔한 중국군은 명령과 동시에 움직였다. 기동군은 길목을 장악했고, 공병대는 도로를 복구하며 고속철도 선로를 부설했다. 심리전 부대는 방송차를 이용해 주민들에게 새로운 통치 질서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군대가 움직인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경을 옮기고 있었다.
신의주 일대에서는 중국 공병대가 부지를 측량하며 임시 기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자강도와 양강도 산악 지대에는 ‘경제협력특구’라는 명패만 걸렸을 뿐, 그 아래에서는 시추 장비와 임시 막사가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평양이 누구의 손에 들어갈지 결정되기도 전에, 북한의 자원은 ‘운반’이 아니라 ‘확보’라는 이름으로 이미 지도 위에 표시되고 있었다.
중국의 진출은 군사 작전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난민을 통제함으로써 새로운 심리전선을 만들었다. 중국은 총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북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압록강과 두만강의 다리는 굳게 닫혀 있었지만, 남쪽을 향한 모든 도로는 열려 있었다. 중국군은 국경을 차단하는 대신, 사람들의 흐름을 남쪽으로 돌렸다. 식량과 의약품이 부족한 상황에서 배급이 통제되자, 난민들은 중국의 의도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살 길을 열어주지만, 남한은 준비되지 않았다”는 심리가 퍼져나갔다.
중국 관영 매체는 연일 메시지를 퍼뜨렸다.
“미국은 한국의 통일을 진정으로 원하는가?”
“한국이 북한을 흡수하면 부담은 오직 한국이 짊어지게 될 것이다.”
“미국은 평양보다 서울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있다.”
이 메시지는 단순한 보도가 아니라, 한국 내부 여론을 분열시키기 위한 전략적 도구였다.
그날 새벽, 평양 북방 70km 지점. 중국군 선발 정찰대가 도로 위에 멈춰 섰다. 열화상 장비 너머로 남쪽에서 접근하는 한국군과 미군 연합 정찰대의 모습이 포착됐지만, 그 누구도 한 발 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선을 넘는 순간, 전쟁은 우발적 충돌이 아닌 미중 간 전면전이 되기 때문이었다. 지도 위에 그어진 이 70km 선은 단순한 군사적 경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앞으로의 한반도 질서를 재편할 새로운 정치적 분할선이었다.
중국군 지휘관은 무전기를 들어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이 북측 지역을 안정화할 책임이 있습니다. 평양 이하는 귀측이 관리하십시오. 우리는 충돌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선은 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은 협상이 아니라 선포였다. “이 선 이북은 우리의 통제 아래 있다.”
그 순간, 남쪽 평양 시내에서는 태극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총 한 발 없이 얻은 승리였지만, 도시 북쪽 하늘에는 또 다른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붉은 별 아래 오성홍기였다. 한반도는 해방과 통일의 길목에서 또 다른 분할의 현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이번엔 휴전선이 아니라, 강대국의 이해가 만든 보이지 않는 선이 땅을 가르고 있었다. 그 선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한반도의 다음 100년을 결정하고 있었다.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