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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글을 써보겠다는 결심

아팠지만, 하이라이트

by Joyce 노현정
프롤로그(prologue)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일기처럼 써 내려간 글들이 있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내가 스무 살 때 미국에서 와서 지금까지 지내온 약 20여 년간의 시간들 중의 몇몇 조각들을 글로 나누고 싶었다. 몸이 많이 아팠던 이야기 또는 꿈을 쫓아가는 동안 넘어지고 좌절한 이야기를 굳이 다시 꼼꼼하게 꺼내본다는 것이 -거기다 기록으로 상세히 남겨보는 것이 - 과연 어느 누구에게라도 의미가 있는 일일까 싶어 오랜 시간 종종 망설였다.


하지만 그저 너무 아프기만 했던 시간들이 실은 지금의 나를 빚어낸, 어쩌면 내 인생 하이라이트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고 외치는 내 마음을 발견했고, 이 마음을 잃기 전에 활자로써 끊임없이 되뇌고 싶었다.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은 결심은 조금이라도 유사한 상황에 처해져있는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를 살아갈 나 스스로를 위해서이기에, 그래서 가장 진솔하고 싶다. ‘다시, 숨쉬고 걷는 기적‘에서는 2019년 내가 병을 만났던 시간에 대해 깊게 나누고 싶다. 2023년 1월에 쓴 글부터 아래 시작해볼까 한다.




"최근 퇴사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기한 병가를 내고 회사를 쉬게 되었다. 잘 회복하고 있다고 믿은 내 몸이 다시 약해진 것을 느끼는 요즘, 내가 다시 회사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도 불쑥 올라온다. 쉽지 않은 마음으로 많은 감사가 쌓인 일터를 떠나겠다는 결정을 하면서, 얼마나 허락될지 모르는 쉬는 시간에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을 때 나는 글쓰기를 떠올렸다. 스스로를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꼭 써 내려가고 싶은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 울컥울컥 올라와 있다. 언제 그이야기의 퍼즐을 모두 완성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담백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고 싶다.


그날은 2019년의 9월 13일 금요일 저녁이었다. 두어 달 남은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내가 많이 수척해 보였는지 약혼자는 그날 나를 바라보며 유독 염려했다. 알뜰살뜰 데이트를 하는 우리였지만, 그날은 내가 많이 힘들어 보인다며 약혼자는 나를 데리고 자랑스러운 BTS가 종종 방문한다는 LA 한인타운 내 유명한 고깃집에 가서 맛있는 고기를 잔뜩 시켜주었다. 기력이 많이 없긴 했지만 나는 그날도 회사 일을 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기에 그저 결혼을 앞둔 내가 너무 많이 피곤한가 보다 싶었다. 무엇이든 잘 먹는 내가 생각만큼 음식을 많이 먹지 못했던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잠들기 위해 우선 늘 습관대로 양치질을 하며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무언가가 이상했다. 세로로 반이 접혀 못생기게 구겨져 있는 나의 혀. 눈을 비비며 다시 거울을 바라보았지만 내 빨간 혓바닥은 종이가 구겨지듯 울퉁불퉁 무서운 모양으로 접혀있었고, 믿을 수 없게도 나는 전혀 나의 의지로 내 혀를 바르게 펼 수가 없었다. 세면대 거울을 바라보면서 몇 번이나 내 눈을 비볐는지 모른다, 그 순간 마치 이상하고 무서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서. 놀랍게도 꿈이 아닌 현실임을 영화 속 누군가가 그러듯 몇 번이나 내 볼을 꼬집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렇게 내 몸에 숨어있던 병은 어느 날 양치질을 하다가 내 혀 끝으로 나타났다. 내 인생의 모양과 방향을 바꾼 내 병은, 그렇게 2019년 9월 어느 날 아무 예고도 없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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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