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조금 나아졌을까?
슈퍼맨 놀이를 아세요? 아마 모르실 겁니다. 왜냐면 제가 만들어낸 놀이니까요. 높디높은 미끄럼틀 위를 뛰어내리면서 슈퍼맨!이라고 소리치며 노는 놀이였습니다. PVC 파이프로 혼난 기억 덕분인지, 혼나는 게 너무나도 무서웠던 한 아이는 그렇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시골에 살 때, 항상 같이 놀던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옆집에 살던 친구였는데, 굉장히 장난기가 많은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와 자주 놀았던 거 같은데, 어머니는 이 친구와 노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자세한 이유는 몰랐지만, 이 친구와는 같이 놀지 말라고 하신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였는지 이 친구와 놀았던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이 친구와 놀다 왔어도 혼자 놀다 왔다고 한 적도 있었고, 아니면 이 친구를 언급하지 않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여느 때처럼 몰래 이 친구와 놀던 어느 날. 이 친구가 학교 놀이터에 있는 미끄럼틀에서 놀자고 합니다. 그렇게 저와 그 친구는 신나서 미끄럼틀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고, 곧 커다란 미끄럼틀과 마주합니다. 조금 특이한 미끄럼틀과 말이죠.
이 미끄럼틀은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녹이 많이 슬어 있었고, 높이가 아주 높았습니다.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서 아래를 보면 우와... 소리가 나오는 높이였습니다. 물론 아이의 기준에서요. 무엇보다 눈에 띄는 큰 특징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 미끄럼틀은 틀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미끄럼틀인데 미끄러지는 틀이 없는 미끄럼틀이었죠. 계단만 있는 미끄럼틀. 미끄럼틀이라고 부르기 조금 그런 미끄럼틀.
이미 부서져서 사용할 수 없는 미끄럼틀이었지만, 이 친구는 재밌고 멋진 걸 보여주겠다고 합니다. 곧 부서진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더니, 빈 틀로 뛰어내립니다! 멋지게 착지. 저에게 으쓱해하며 멋지지? 너도 해봐!라고 제안합니다.
친구가 할 수 있으니, 저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미끄럼틀 위로 올라갑니다. 올라가 보니 제 생각보다 더 높았고, 더 무서웠습니다. 못할 거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무서워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한번 더 뛰어내리며 괜찮다고 합니다. 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하기 싫기도 하고...?
그렇게 어서 뛰어내리라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저는 미끄럼틀에서 뛰어내립니다. 그렇게 뛰어내리면 친구처럼 멋지게 착지할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던 듯합니다.
이 이후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뛰어내린 기억은 있는데 그 외에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너무 아팠던 기억만 듬성듬성. 기억나는 건 근처 태권도장 관장님이 발목에 침을 놓고 피를 뽑았던 기억, 그리고 그게 너무 무섭고 아파서 덜덜 떨면서 울었던 기억, 그리고 한동안 걷지 못했던 기억만 남아있네요.
나중에 어머니께서 '어쩌다 뛰어내렸냐'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거절하지 못해서 뛰어내렸단 말을 할 수 없어, 슈퍼맨 놀이를 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슈퍼맨이 되고 싶어서 미끄럼틀 위에서 뛰어내렸다고.
그 결과 어머니는 최근까지도 슈퍼맨 놀이 때문에 발목을 접질렸다고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한적 없는 보따리 망토도 하고 뛰어내린 걸로 기억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해 드렸더니, 왜 그 친구를 싫어하셨는지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시네요. 그 친구는 저와 같이 놀았다기보다, 데리고 나가서 여러 가지를 시켰다네요. 전 기억나지 않는데, 제 신발을 남의 집에 던져놓고 가지고 와!라고 한다던지, 남의 집 벨을 누르고 도망가게 시켰다던지. 그리고 미끄럼틀 위에서 뛰어내리게 시켰다던지. 절 이용하고 그래서 싫어하셨다고.
아이에게 싫은 건 거절해야 한다는 걸 계속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추억이죠. 아이는 원하지 않을 때 거절하고, 피할 수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어서 틈 날 때마다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덕분인지, 아이는 거절하고 싶을 때 망설임 없이 거절합니다.
"자, 아빠도 안아줘!"
"싫어!!"
... 아마 저보다 거절을 잘하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