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탄치 않은 시작도 괜찮아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총 5번의 대만 여행 후, 드디어 기다리던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하게 되었다. 원래 계획은 7월이나 8월에 출국하는 것이었지만, 일정이 조금 앞당겨져 5월에 출국하게 되었다.
혼자 해외에서 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거주 공간 마련이었다. 여행할 때는 그저 호텔만 잡으면 되었지만, 장기 거주를 위해서는 호텔이 아닌 집이 필요했다. 한국 포털, 외국 포털, 대만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부동산 사이트는 ‘591’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직방, 다방 같은 사이트다.
하지만 문제는, 부동산 업자와 연락하려면 대만 라인 계정이나 현지 전화번호가 필요했다.
또한 한국 라인과 서비스가 달라, 한국에서 미리 연락해 볼 수 없었다.
(한국에서도 라인 가입이 가능하나, 한국에서 가입한 계정을 대만에서 로그인하면 기능이 제한됩니다...일단 라인 페이(LINE PAY)가 활성화가 되지 않아요.)
일단 관심 있는 매물을 몇 개 저장해 두고, 현지에서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1월에 대만에서 만난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아는 사람이 ㅇㅇ역 근처에 방을 내놓는다는데, 어때?”
나는 당연히 좋았다.
위치가 트리플 역세권이고, 예전에 여행으로 다녀온 곳 근처라 지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 친구의 도움으로 대문에서 엘리베이터, 복도, 내가 계약할 문 앞 복도까지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내부는 못 봐서 궁금했지만 가족과 친구에게 보여주었을 때도, 보안이 가장 마음에 든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게다가 대만에서 혼자 집을 구하려면 보증인이 필요한데, 아는 언니와 언니의 지인이 있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국 2일 전, 언니에게 충격적인 연락이 왔다.
“정말 미안, 갑자기 집주인이 외국인에게 방을 내놓지 않겠대”
순간 정말 멘붕이었다.
이미 비행기표를 사고, 짐과 서류 준비까지 끝낸 상황에서 사실상 거의 계약될 것 같은 집이 사라지다니. 언니에게 이유를 물었다.
나 : “분명 외국인도 가능하다고 했고, 이미 다 결정됐던 거 아니야? 그날 집 계약 가능하다고 해서, 만나기 하루 전날로 비행기 예약한 건데... 갑자기 안된다고? 왜???”
언니 : “정말 미안해, 근데 나도 이유는 몰라, 황당해.”
물론 언니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순간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 마음이란 참 간단하지 않다.
도와줄 땐, 도움 받을 땐 그렇게 따뜻하다가도,
일이 틀어지면 그 따뜻함이 금세 식는다.
내가 나쁜 걸까?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들었다.
어쩌면 조상님이 그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미리 알려주신 걸지도 모른다.
복도는 좁았고, 내 방의 수납장과 냉장고가 그 복도에 있었다. 그리고 집 내부도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나는 생각 정리 후, 웃으며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그냥 내가 도착해서 집을 직접 찾아볼게! 도와줘서 고마워. 대만 가면 밥 한 끼 살게!”
드디어 출국 날.
아빠가 휴가를 내고, 인천공항까지 데려다주셨다.
혼자 가려 했지만, 딸바보 아빠는 마지막인데 혼자 보내기 아쉽다고 하셨다.
인천 공항 도착 후, 30인치 캐리어와 27인치 캐리어를 들고 체크인을 마쳤다. 체크인 후 바로 입국 심사하고, 라운지에서 잠깐 쉬며 밥을 먹으려 했지만, 아빠는 나와 같이 밥을 먹고 싶어 하셨다.
당분간 같이 하는 마지막 식사다. 우린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채 식당에서 밥을 먹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방금까지 따뜻했던 우리 아빠가 어딘가 낯설어 보였다. 내 눈을 계속 피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울음을 참다가 결국 터뜨리며 말없이 떠나셨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의 모습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나는 애써 웃으며 "잘 다녀올게"라고 말하고, 출국장에 들어섰다. 눈물이 맺혔지만,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 잘 다녀올게”
스마트 패스를 사용해 입국 게이트를 통과하려는 순간,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얼굴이나 여권 인식 오류인 듯해 뒤로 물러나 다시 시도했지만, 이번에도 같은 소리가 났다. 그때 공항 직원분이 다가와 쪽지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심사가 끝나면 검사장으로 이동하세요”
나는 뭔가 잘못된 걸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검사장에 들어가 쪽지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혹시 무슨 문제가 있나요?, 여기로 가보라고 하셔서 왔어요”
직원은 웃으며 말했다.
“아 그거 잘못됐어요. 아무 이상 없으니까 그냥 가시면 돼요.”
다행이었지만, 조금은 황당했다.
‘그럼 아까 그 사이렌은 뭐였던 거지?’ 싶었지만, 집 문제에 이어 이번 일도 그냥 액땜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비행기 탑승 후, 기내식도 맛있게 먹고 조금 쉬다 보니 대만에 도착했다. 대만은 벌써 여섯 번째 방문이라 입국 심사도 여유로웠다.
단, 이번엔 여행자가 아닌 ‘워킹홀리데이 거주자’로서 입국해야 했기 때문에 e-gate 대신 일반 입국 심사 줄에 서서 비자 확인을 받아야 했다. 아 그리고 예전처럼 ‘럭키드로우 이벤트’도 참여할 수 없었다.
짐을 찾고 나와 대만 언니를 만나기로 했다. 언니는 일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내가 1터미널, 언니는 2터미널에 있다는 걸 알았다.
결국 그날은 만나지 못하고, 다음 날 다시 보기로 했다.
나는 우선 1년짜리 USIM 카드를 구매하고, 라인(Line) 등록을 마쳤다. 그 후 공항철도를 타고 내가 예약해 둔 숙소로 이동했다.
타이베이 메인역에서 내려 택시비를 아낄 겸, 또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해서 걸어가기로 했다. 네 달 전 여행 때 왔던 길이라, 구글 지도 없이도 찾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30kg 캐리어와 15kg 캐리어를 끌고 20분을 걷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여행 때는 오빠와 짐을 나눠 들었는데, 이번엔 모든 게 내 몫이었다. 그제야 ‘이제 정말 혼자 다 감당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 도착하자 운 좋게도 방이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더블베드 두 개가 있는 넓은 방이었다.
마치 오늘 하루의 고생을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짐을 풀고 씻은 뒤 잠시 누워 쉬었는데,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었다. 첫날이기에 근처에서 밥을 먹고 야시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나는 숙소 앞 볶음밥 가게에 들어가 소고기 볶음밥을 주문했다. 그러고나선, 음식이 나오는 동안 야외 의자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았다.
형형색색의 간판 불빛,
오토바이 소리, 대만 특유의 습한 공기-
정말 도착했구나 실감이 났고,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런데 그 여유도 잠시
몸이 힘들었던 걸까? 코로나 후유증 때문인지,
사람 많은 곳에 오래 있거나 불빛이 아른 거리는 공간에 있으면 종종 심박수가 100 가까이 오르며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고,
이럴 땐 조용한 곳에 누워 안정시키는 게 가장 좋단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볶음밥이 나왔지만 반도 먹지 못하고 계산을 마친 뒤, 정신을 붙잡은 채 숙소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신발을 벗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심호흡을 반복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안정이 찾아왔다.
몸이 진정되자 허기가 밀려왔지만, 이 상태로 식당이나 야시장에 가기엔 무리일 것 같았다. 그래서 숙소 근처 까르푸에서 과일을 사 왔다.
과일을 천천히 씹어 먹으니, 첫날의 피로와 설렘이 뒤섞였다. 오늘 하루를 잘 버텨냈다는 안도감과, 앞으로의 워홀 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도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 속에서도 나는 분명히 알았다.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1년 동안, 누구보다 행복할 나를 상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