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은 어디서 살아야 하나
3일 차 아침, 간단히 과일을 먹고 집을 나섰다.
조금 걷다 보니 배가 고파 타이베이 메인역에서 도시락을 샀다. 줄이 길어 잠시 기다렸고, 도시락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인종차별을 겪었다.
앞의 대만 사람들에게는 “봉투 필요하세요?”, “영수증 드릴까요?”라고 묻던 직원이, 내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국어로 주문했는데도 말이다.
맛은 있었지만, 마음은 씁쓸했다.
도시락을 들고 표를 끊은 뒤 HSR(高鐵, Gāotiě — 대만의 고속철, 한국의 KTX와 유사)을 타고 타이중으로 향했다. 대만의 MRT에서는 음식 섭취가 금지지만, 기차에선 가능하다.
그래서 도시락을 샀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도착해서 결국 타이중역에 도착해서야 먹을 수 있었다.
타이중은 처음이었다. 도시가 깔끔하고, 구획이 정돈된 느낌이었다. 예술적인 분위기도 느껴졌다.
타이중 TMRT(타이중 MRT)를 타고, U-BIKE를 이용해 미리 찜해둔 방 근처로 이동했다.
타이중은 오토바이가 많은 도시라 15분 거리도 멀게 느껴진다는 말이 이해됐다. 타이베이보다 더운 날씨에 오토바이 속에서 자전거를 타며 땀을 뻘뻘 흘렸다.
대형마트, 이케아, 미술관 등 인프라는 훌륭했지만 교통은 불편했다.
MRT 노선이 많지 않아 자전거나 도보로 이동해야 했고, 버스는 배차 간격이 1시간이 넘는 경우도 잦았다.
더위에 지쳐 쓰러질 것 같아 결국 편의점에 들어가 잠시 쉬며 음식을 먹었다. 그제야 조금 살 것 같았다.
원래는 부동산 업자를 만나 집을 볼 예정이었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허위 매물도 많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자전거로 동네를 돌아다니며 살기 좋은 지역을 눈에 익혔다. 야시장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체력이 바닥나 살기 좋은 지역만 저장해 둔 뒤, 타이베이로 돌아가기로 했다.
타이중역에 도착해 표를 예매했는데, 기차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 몰라 역 안을 헤매다가 결국 현지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불안해하던 그때,
뒤에서 들려온 그 한마디에 심장이 철렁했다.
그녀는 내 표를 확인하더니, 내가 잘못된 열차(로컬 트레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리고 매표소로 함께 가서 환불을 도와주고, HSR로 환승하는 법도 자세히 설명해 줬다.
자신의 열차 시간을 미루면서까지 나를 도와준 그녀에게 너무 고마워 감사 인사와 함께, 불편하지 않으면 라인(Line) 아이디를 교환하자고 말했다. 그녀는 흔쾌히 허락했고, 나는 타이베이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감사인사와 함께 스타벅스 쿠폰을 보냈지만, 그녀는 “정말 괜찮아요. 마음만으로 충분해요.”라며 끝내 거절했다.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국인에게 도움을 많이 받아 이번엔 자신이 돕고 싶었다며... 지금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타이베이에 도착하니 이미 밤 11시.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 있었다.
숙소까지는 자전거로 15분 거리였지만, 더 이상 힘이 나지 않아 택시를 탔다. 까르푸에 들러 도시락을 사서 숙소로 향했다. 밥을 허겁지겁 먹고 나니, 붙잡고 있던 에너지까지 방전되었다.
밥을 먹으면서 또 생각해도
타이베이의 월세는 비싸고, 가격에 비해 집 상태도 별로였다. 심지어 방 매물도 많지 않았다.
결국 처음으로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깊이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대만 집 관련 단어 간단 정리
公寓(Gōngyù) 아파트
透天厝 (Tòutiān cuò) 단독주택
電梯 (Diàntī) 엘리베이터
樓梯 (Lóutī) 계단
套房 (Tàofáng) 원룸 (욕실 포함)
雅房 (Yǎfáng) 방 하나 세 놓음 (보통 공용 욕실)
押金 (Yājīn) 보증금
租金(Zūjīn) 월세
仲介費 (Zhòngjièfèi) 중개 수수료
집을 구하려면 언어도 되어야 하고, 보증인도 필요했다. 아니면 대만 신분증이 있거나, 회사의 재직 증명으로 신뢰를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인 부동산을 통해서 계약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인 부동산을 통해 계약하면 거의 2배라고 들어서, 무조건 현지 부동산을 통해 직접 집을 찾고 싶었다.
열심히 찾은 결과, 집 하나를 보러 가기로 했다. 타이베이 메인역 근처에 있는 집이었다.
위치는 굉장히 좋았지만, 엘리베이터가 없고 계단이 너무 가팔라 무릎을 잡고 올라가야 했다. 심지어 화장실은 문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좁고, 바퀴벌레 시체가 여럿 있었다.
대만에서는 바퀴벌레를 ‘짱랑(蟑螂, Zhāngláng)이라고 부르는데, 오죽 많았으면 보자마자 머릿속에 ‘짱랑 하우스’로 각인됐다.
그래도 계약을 고민할 만큼 집이 절실했다.
다음 날엔 타이중 부동산 업자와도 연락이 닿아 다시 타이중으로 갔다.
외국인도 가능하다고 하고 보증인도 필요 없다고 해서, 이번에는 뭔가 될 것 같다는 마음으로 버스를 탔다.
(HSR보다 저렴하고 좌석도 넓어서, 시간이 여유롭다면 타이중 갈 땐 버스를 추천한다.)
타이중 집은 엘리베이터도 있고, 시설도 타이베이에 비해 훨씬 좋았다.
하지만 단점이라면 담배 냄새가 많이 났다는 것, 그리고 위치가 좋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집 구경을 마치자 중개인이 보증인을 요구했고, 어딘가 급한 태도가 느껴졌다.
(보증인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나도 절실했지만, 대만 언니가 했던 “사기도 많으니 조심해”라는 말이 떠올랐다. 결국 하루 동안 고민해 보고 타이베이로 돌아가서 답변하겠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 한참을 고민했다.
타이중에는 외국인 노동자도 많고, 내가 본 지역은 치안이 썩 좋지 않아 조금 불안했다.
결국 이렇게 이 집 계약은 무산됐다.
타이베이 -> 타이중
버스 : 약 3시간, 저렴하고 좌석 넓음.
HSR : 약 1시간, 빠르고 쾌적하지만 비쌈
타이베이로 돌아온 뒤, 다음날 체크아웃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당장 숙소를 찾기엔 너무 늦은 시각이라, 이틀을 연장했다.
다음 날, 하루 종일 부동산 앱을 들여다봤지만 마음에 드는 매물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이 매물이 많은 시기도 아니라고 했다.
집 때문에 복잡하던 때, 언어교환 앱에서 알게 된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대만 오고 나서 계속 우여곡절이 많았고, 항상 급하게 하루하루를 버텼는데, 오랜만에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으니 마음이 안정되고 조금 위로가 됐다.
그때 갑자기 폭우와 천둥이 쏟아졌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라 더욱 놀라 계속 창밖만 바라봤다. 마치 내 복잡한 마음을 대변하듯,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내렸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멎었다. 밥을 먹으면서 추천받은 음료가게에 함께 가서 음료를 포장했고, 산책하며 얘기를 나눴는데, 처음 만난 사람 같지 않게 편했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된다.
다음 날은 숙소를 옮기는 날이었다. 그런데 또 폭우가 쏟아졌다.
택시를 부르려 해도 잡히지 않아 까르푸에 들어가 택시 서비스를 요청했지만, 불러준 택시도 오지 않았다.
온몸이 젖은 채, 몸보다 큰 캐리어를 끌고 서성이다가 우연히 한 택시 기사님이 나를 보고 멈춰주셨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내리는데 기사님이 웃으며 “이거 너무 무거워요. 도와주세요~”라고 하셨다.
합쳐서 거의 50kg이나 되니, 무거울만했다.
새 숙소에 도착해 비에 젖은 채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다 보니 졸음이 쏟아졌다. 이전 숙소에서 방음이 안 되어 편히 자지 못했던 탓도 있었다.
씻고 나서 침대에 눕자, 쾌적학 침대가 천국 같았다. 종일 굶은 상태였지만 몸이 풀리며 꼼짝도 하기 싫었다. 저녁도 포기하려다가, 갑자기 고생한 내 몸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편의점에서 구기자 등 한방재료가 들은 한방라면과 차예단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차예단(茶葉蛋)
대만의 대표 간식인 ‘찻잎 달걀’
찻잎과 향신료, 간장을 넣고 삶아내,
껍질째 금을 내어 간장과 향이 스며들도록 만든 음식이다.
편의점, 기차역 등 쉽게 볼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데, 계란이라 영양가도 있다.
계피, 팔각, 정향 등 향신료가 들어가 꼭 한방 장조림 같은 맛이 난다.
편의점 문을 열자마자 나는 향이 바로 차예단 냄새다!!
호불호가 있지만, 매운 걸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면 매운 차예단은 꼭 시도해 볼 만하다.
집을 구한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을까.
우체국 계좌 개설보다, 언어보다 더 큰 고비는 ‘살 곳을 찾는 일’이었다.
그래도 언젠가 성공할 거라 믿었다.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그저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타국에 와 있으니 집을 구하는 일이 더 어려웠나 보다.
하지만 나는 머물 곳을 찾고, 그 근처에서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구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상 속에서 천천히 대만 중국어를 배우고 싶었다.
어학당에 등록도 고민했지만, 교실보다 시장과 카페, 그리고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배우는 게 지금의 나에겐 더 잘 맞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마주한 순간엔 왠지 모를 막막함이 몰려왔다.
내가 사랑하는 대만에 서 있는 내가, 조금은 작고 불안해 보였다. 그래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던 내가, 어느 날은 그렇게 하루를 술로 버텼다.
자신감 가득한 상태로 온 대만이기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말이다.
그리고 집 문제만 빼면 모든 순간이 좋았기에,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한인 부동산이 아니라, 현지 부동산과 직접 부딪혀서라도 내 손으로 내 집을 구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