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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 끝에 이뤄진 소원

대만 현지 부동산으로 집 구하기

by 대미녀

내 힘으로 집을 구하겠다고 마음먹은 다음 날, 부동산 업자들과 연락이 닿아 두 집을 보러 가게 되었다. 하나는 타이베이에서 집값이 높기로 유명한 신이구, 하나는 카페 거리로 유명한 중산구였다. 신이구는 중산보다 2,000TWD정도 비쌌지만, 내 예산 안에 들어서 방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왜 그랬는지, 시간을 착각해서 정각이 아닌 30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급하게 택시를 타고 부동산 업자가 보내 준 집 주소로 향했다. 덕분에 약속 시간에는 정확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부동산 업자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잘못온건가 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기다리다가 라인으로 연락했다. 그러고 몇 분 후, 내가 보기로 한 집 대문을 열고 나와 "이쪽으로 들어오세요"라며 나를 안내했다. 나는 '아, 중개인이 미리 집 상태를 확인하느라 그렇구나'하고 생각했다.


이후, 중개인에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집값이 비싼 편인 만큼 엘리베이터는 있었지만, 내가 보기로 한 집은 옥탑방이라 꼭대기층에서 1층 정도는 계단으로 걸어올라야 했다. 그래도 창문도 크고 집도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옥탑방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나 말고도 세 명 정도가 이미 그 집을 보고 있었다. 방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는데, 중개인이 대학생처럼 보이는 대만인에게 계속 "미안, 집 못 내놓겠어요. 시간 내서 와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했고, 결국 학생은 황당한 표정으로 집을 나갔다. 순간 '뭐가 잘못된 걸까...?'하고 생각했지만, 나는 다시 원래대로 집을 둘러보았다. 그때 중개인이 나에게 물었다.


"집이 어떠세요?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들어요. 혹시 오늘 계약하면 바로 입주 가능한가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그럼 계약하실래요?"


나는 조금 빠른 감이 있긴 했지만, 굳이 더 미룰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서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내 뒤에서 한 대만 아주머니가 큰소리로 외쳤다.


"안 돼! 이 집은 내가 계약할 거야!"


이 얘기를 들은 부동산 중개인은 멈칫하고, 나도 그 상태로 얼어붙었다.

그리고 중개인은 아주머니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한참 대화를 나눈 후, 아주머니는 조금 진정되신 것 같았다. 이 순간, 중개인은 내게 말했다.


"미안해요, 계약이 어려울 것 같아요. 아주머니가 마음에 든다고 하셔서 이분과 계약하기로 했어요."

나는 황당했다.


방금 전, 오늘 바로 입주할 수 있냐고 물었고, 마음에 들어서 계약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다니. 이대로 바보 같이 서있을 수 없어서, 나 역시 중개인에게 물었다.


"제가 먼저 얘기하지 않았나요? 오늘 계약하면 바로 들어올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왜 갑자기 저 아주머니가 한다고 하시는 거예요?"


중개인은 내 말을 듣고 맞다고 하며, 다시 아주머니에게 가서 말했다.

"미안해요~ 이 젊은 친구에게 양보하세요. 사실 이 친구가 먼저 계약하자고 해서... 오늘 입주 가능하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또 화가 나셨는지, 부동산 중개인이 아닌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내가 왜 양보해야 돼? 나도 이 집이 마음에 들어. 그리고 내가 너보다 먼저 왔어. 너 외국인 같은데, 나가! 난 이 집 절대 양보 못해. 그리고 나도 오늘 입주할 수 있어!!"


부동산 중개인은 다시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아주머니가 진짜 마음에 든다고 하셔서, 오늘 계약하겠대요~"


나는 정말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중국어 실력이 부족해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나 자신도 답답했고,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아 여기 있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냥 그 자리에서 나와버렸다.

헛웃음을 지으며 터벅터벅 집을 나왔는데, 아까 먼저 나간 학생이 대문 앞에 서있었다. 학생도 어딘가 전화를 하며 황당함을 토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부동산 중개인에 무책임한 상황에 너무 화가 났고, 박쥐처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모습도 정말 미웠다. 무엇보다 택시까지 타고 온 시간과 비용이 너무 아까워 부동산 중개인에게 돌려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한숨 돌리고 있을 때, 갑자기 라인 메신저 알림음이 울렸다. 중산구에 있는 집을 볼 수 있다는 다른 부동산 중개인의 메시지였다. 주소를 받아보니, 호텔 근처였고 위치도 신이구 하우스보다 더 좋아 보였다. 편의점, 마트, 패스트푸드점도 가까워 마음에 들었다.


단점은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3층까지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고, 창문은 복도로 연결된 작은 창문뿐이라는 점. 하지만 *보증인도 필요 없고, 가격도 신이구 하우스보다 저렴했다. 그리고 오늘 안에 결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는 조건이 있어, 집을 보고 온 뒤 30분 정도 고민 끝에 결국 계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나는 몇 시간 뒤, 집주인 그리고 중개인과 만나 서류에 서명하고 집 열쇠를 받았다. 중국어로 계약을 진행하기엔 내 중국어 실력이 부족했는데, 중개인분이 영어로 설명해 주어 문제없이 계약을 마칠 수 있었다. 집주인은 계약 후 얼마 전 다녀온 신주(대만의 한 지명) 여행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도 했다. 집주인도 잘 만나야 된다고 하던데, 이런 것까지 보여주는 집주인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보증인은 필요 없었지만, 집주인이 비상 연락망을 요청했다.

현지인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야 해서, 대만 언니의 도움을 받을까 했지만, 언니는 이건 못 도와줄 것 같았나 보다. (지난 글에 몇 번 나왔던 언니)


나는 나름 가깝다고 생각해서 부탁했지만 언니는 나에 대한 신뢰가 없었던 건지, 이 이야기를 듣고 단칼에 거절했고, 재차 몇 번을 거절했다. 결국 나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고, 그 사람은 거리낌 없이 나를 도와주었다.


하지만 언니 입장도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다. 언어교환어플에서 몇 번 만난 외국인에게 본인 전화번호를 내주긴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는 대만 현지 부동산을 통해 스스로 집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사건이 너무 많아 한 달 정도 지났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약 열흘 정도였다. 짧은 시간 안에 혼자 힘으로 집을 구했다는 뿌듯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과연 나는 이 집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순간만큼은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잠깐 내려두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외국인이 대만에서 방 구하며 알게 된 점

- 보증금

보통 월세의 2개월치를 요구한다. (간혹 1개월인 경우도 있지만, 극히 드문 것 같다)


- 월세

한국보다 시설은 낡은 편인데,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다.

'이 상태에 이 가격?'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때가 많다.


- 중개수수료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계약할 경우, 월세의 절반 정도를 수수료로 내야 한다.

반대로 집주인과 직접 거래(직거래)하면 수수료가 없다!

다만, 외국인이 이런 매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 외국인 조건

학생증이나 직장 증명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대만인 보증인이나 현지인 비상연락망이 필요할 때도 있다.


- 한인 부동산 이용 시

현지 부동산에 비해 집 구하기는 쉽겠지만,

수수료가 현지보다 2배 정도 비쌀 수 있다. (보통 1-2개월치 월세라고 한다)


-사기 주의

현지인 말로는 대만도 부동산 사기가 꽤 있다고 한다.

만약 집을 보러 갔는데, 미리 돈을 달라고 한다면 거의 사기라고 보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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