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보다 끈질긴 집주인
드디어 대만, 그리고 인생 처음으로 자취를 하게 되었다.
워낙 독립적인 성향이기에 자취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창문이 없어서 그런가, 대만 날씨가 습해서 그런가, 계약 전에는 깨끗해 보이던 집이 직접 보니 너무 더러웠다. 옷장에는 이끼처럼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세탁조 안에는 검은 덩어리들로 가득했다. 처음엔 곰팡이라고 생각도 못 했다.
세탁조 클리너를 사 와서 돌려놓고, 고무장갑을 낀 채로 락스를 사용해 화장실 청소를 했다. 그리고 앞으로 살 때 필요한 청소기도 구매했다.
샤워기에도 곰팡이가 가득 피어 있었기에, 한국에서 가져온 필터 샤워기로 바로 교체했고, 기존에 있던 샤워기는 집주인에게 물어본 후 버렸다.
옷장은 알코올을 묻힌 걸레로 닦은 뒤 사용하려 했지만 냄새가 너무 심했다. 도저히 옷을 넣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결국 한동안은 옷을 침대 위에 올려두고 생활하기로 했다.
대만 집의 침대는 대부분 더블 사이즈라 혼자 사용하기에 아주 넉넉하다. 그래서 반은 잘 곳으로, 반은 짐을 놓을 곳으로 나눠 사용했다.
청소를 마치고 빨래를 하려는데, 세탁기를 보니 곰팡이가 아까보다 더 많아졌다. 분명 세탁조 클리너를 넣고 청소했는데도 말이다. 한 번으로는 부족할까 해서 세탁조 클리너를 한 번 더 넣고 돌렸지만, 할수록 더 지저분해지는 느낌이었다. 집주인에게 바로 연락했더니, "원래 그렇다. 여러 번 돌리면 괜찮아진다"는 답변뿐이었다.
결국 인터넷에서 세탁조 청소법을 찾아 모조리 시도했고, 그럼에도 곰팡이는 계속 나왔다. 이곳에 옷을 넣고 돌리면 모든 옷이 망가질 수준으로 말이다. 그래서 세탁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코인 빨래방을 이용했다.
이틀에 걸쳐 세탁기를 약 20번은 돌렸던 것 같다.
마트에서 얇은 행주천을 사 와 락스와 세탁조 클리너를 넣고 돌리고 또 돌렸다.
화장실에는 곰팡이 제거 스프레이 한 통을 다 썼고, 세탁조에는 클리너 두 통, 락스 반 통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쯤에서야 세탁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세탁기 곰팡이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에어컨을 켜니 곰팡이와 함께 물이 뚝뚝 떨어졌다.
여름이고 선풍기도 창문도 없었기에 에어컨은 필수였는데, 이것까지 문제가 생기다니...
어느 날은 자다가 "쿵! 쿵! 쿵!" 하는 소리에 놀라 깼는데, 에어컨에서 얼음덩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몇 분 뒤, 굉음과 함께 거대한 곰팡이 얼음이 확! 하고 쏟아졌다.
자다 깬 상태라 정신이 멍했는데, 직접 보니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처음엔 벌레 시체인 줄 알았다)
한여름에 이게 무슨 담력 체험인가...
이땐 새벽이라 집주인에게 연락할 수 없었고,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새운 후 아침에 집주인에게 연락했다. 얼음덩이가 쏟아지는 걸 영상으로 담아놨기에 집주인에게 메시지와 함께 영상을 전송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황당했다.
"에어컨 온도를 낮게 설정해 둬서 그래요."
순간, '그럴 수 있나?'싶어 확인했더니 온도는 27도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27도로 맞춰져 있는데도 그래요."라고 답장했다.
돌아온 답변은 더 가관이었다.
"그럼 더 높은 온도로 설정해서 써보세요. 곰팡이는 직접 업자 불러서 청소하면 돼요.
이 정도 가격 나와요 (집주인이 예상 가격까지 알려줌)"
원래 이렇게 무책임한 건가?
그리고 27도보다 높은 설정의 에어컨은 과연 냉방기기라 할 수 있을까?
주변 대만 친구들에게 물어봤더니 한결같이 돌아오는 말은 같았다.
계약할 때까지만 해도 사람 좋아 보였는데, 역시 첫인상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것 같다.
나는 일주일? 아니, 한 달간 미친 사람처럼 청소했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청소는 진행 중이다. (이사 오고 나서보단 덜 하는 편...)
다행히 한 달 가까운 청소 끝에 옷장 냄새는 거의 사라졌고, 그제야 옷을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침대 매트리스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여전히 올라온다.
어떻게 해도 해결되지 않아 괴롭다. 알코올을 뿌리고 바로 선풍기를 틀면 시큼하면서도 퀴퀴한 냄새가 방을 뒤덮는다. 얼마 전에 찾아보니 매트리스용 곰팡이 제거제가 있던데, 조만간 그걸 사서 청소해 봐야겠다.
그럼에도 점점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으로 변해가고 있다. 침대만 빼고 말이다.
아 참, 침대에 누울 때 요령이 생겼다. 선풍기를 얼굴 쪽으로 향하게 하면, 곰팡이 냄새가 날아가면서 냄새가 덜 난다. 좋은 일이라고 해야 될 진 잘 모르겠다.
대만의 습기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강적이었다.
특히 우리 건물은 신호도 잘 안 터지고, 환기도 잘 안 돼서 그런지 습도가 유난히 높았다.
컵에 티백을 넣으려다가 티백에 피어있는 곰팡이를 발견한 적도 있고, 비타민을 꺼냈더니 속까지 까만곰팡이로 뒤덮인 것을 본 적도 있다. 건강 챙기려던 비타민이 건강을 해칠 뻔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경험이다... 만약 모르고 이걸 먹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대만 언니 말로는 "창문 없는 집이면 제습기를 기본 제공한다"라고 했는데,
집주인에게 물으니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는 듯 답장이 왔다.
"날씨가 습해서 그래요. 날씨 탓이고, 제습기는 없어요."
1년 살면서 얼굴 붉히기도 싫고,
제습기 없이 살자니 내 건강이 문제 될 것 같아 결국 내 돈으로 제습기를 구매했다.
내가 처음에 구매한 건 소형 제습기였는데, 역부족이었다.
하루 제습량이 350ml 정도라 내 방의 습기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최근에 대형 제습기를 새로 구입했다. 약 13만 원짜리 제습기다.
사기 전 고민을 엄청 했었는데 돈이 전혀 아깝지 않고, 오히려 삶의 질이 확 달라져 스트레스가 줄었다.
(진작 큰걸 살 걸)
그래서 지금 제습기의 이름은 '구원자'로 지어주었다.
나를 곰팡이와 습기의 지옥에서 구해준 나만의 구원자
구원자의 전원을 처음 켰을땐 습도 88%.
습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30분도 안 되어 물통이 꽉 찼고, 하루에 2L 물통을 네 번이나 비워냈다.
'구원자'가 많은 물을 만들어낸 만큼, 이 이후에는 곰팡이는 다시 생기지 않는다.
얼마 전 같이 일하는 언니와 동생이 잠깐 우리 집에 왔는데, "곰팡이 냄새 안 나고 좋은 향기가 난다"는 말을 해줘서 너무 기뻤다. 예전엔 냄새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였는데, 그 말 한마디에 그동안의 고생을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아, 진짜 내가 이렇게 열심히 청소한 보람이 있구나...'
내 손으로 깨끗한 집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이렇게 뿌듯할 수 있다니, 정말 보람찼다.
이젠 진짜 매트리스만 청소하면 될 것 같다.
TIP │대만 전자제품 사기 좋은 곳 (제습기 등 가전제품)
대형마트나 인터넷에서도 구매할 수 있지만, 燦坤線上購物(찬쿤)을 추천한다.
가끔 세일도 하고, 제품 종류가 많아 선택지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집까지 빠르게 배송되며, 오프라인 매장도 있어 직접 가서 보고 구매할 수도 있다.
한국의 하이마트와 비슷한 곳으로, ‘3C燦坤’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3C는 이런 뜻이에요!
Computer 電腦 : 노트북, 데스크톱, 주변기기 등
Coummunication 通訊 : 스마트폰, 태블릿, 통신기기
Consumer Electronics 消費性電子產品 : TV, 이어폰, 게임기 가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