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실신을 경험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버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더 용감한 일이라는 것을.
돌이켜보면, 세 번의 실신은 내 몸이 보내는 강력한 신호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신호를 무시하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간호사들에게 묻고 싶다. 혹시 당신도 다음과 같은 증상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 만성적인 피로감과 무기력
□ 잦은 두통이나 어지러움
□ 수면 장애 (잠들기 어렵거나 자주 깸)
□ 식욕 변화 (과식 또는 식욕 부진)
□ 잦은 감기나 면역력 저하
□ 업무에 대한 흥미와 의욕 상실
□ 환자나 동료에 대한 냉소적 태도
□ 쉽게 짜증이 나고 감정 조절이 어려움
□ 죄책감이나 무력감을 자주 느낌
□ 우울하거나 불안한 기분이 지속됨
□ 업무 효율성과 집중력 저하
□ 지각이나 결근이 늘어남
□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위축됨
□ 퇴근 후에도 일 생각으로 괴로움
□ 술이나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 해소 시도
� 체크 결과
5개 이상 해당: 심각한 번아웃 상태, 전문가 도움 필요
3-4개 해당: 번아웃 진행 중, 적극적 대처 필요
1-2개 해당: 주의 단계, 예방적 관리 필요
어느 정도였냐면 업무처리 속도 1위이던 내가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출근해서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뭘 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컴퓨터 내에 있는 파일들을 여러 번 클릭해 볼 뿐, 머릿속이 멍해진 바보처럼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도 마음이 아프다는 사실을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퇴근 후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잠이 들었고, 온종일 한 끼를 먹지 않았지만 내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내가 조금 아프다는 것을 느낀 순간은 직원회의에서 날이 선 말투로 쓴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나에게 상사가 무섭다고 말해줬을 때였다. 그리고 체중이 10kg 이상 빠지고 쇄골이 움푹 파였을 무렵 거울을 보고 아, 내가 지금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년간 단 한 번도 업무 일정을 놓친 적이 없던 내가 "주임님 회의 왜 안 오셔요?"라고 전화가 오는 일이 많아졌고, 나는 그때마다 아차! 하며 부리나케 회의 장소로 갔다.
내가 깨달은 것은 번아웃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정당한 신호였고, 그 신호에 귀 기울여야 했다.
3번의 실신을 경험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버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더 용감한 일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는 병원을 떠나 새로운 길로 향했다.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방향이었다.
그렇게 병원을 떠나기로 결심한 날, 나는 기숙사 책상 앞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RN-BSN 수료증과 병원 입사 초기에 붙여두었던 '3년만 버티자'라는 손글씨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종이를 바라보며 천천히 펜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썼다.
"나는 나를 지키는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
병원을 떠나는 마지막 날, 출근길의 바람이 이상하게 다정하게 느껴졌다. 매일 아침 뛰듯이 들어서던 출입문 앞에서, 처음으로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복도 곳곳에 스며든 환자들의 목소리, 밤새 쏟아낸 눈물과 긴장, 그 안에서 나를 지켜준 사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퇴근길엔 간호사 동기 셋이 모여 조촐한 송별회를 열어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병원 간호사가 아닌 길을 가보려 해. 무모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간호를 배우고 싶었던 진짜 이유를 다시 찾고 싶어."
그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해줬다.
"정은아, 너는 항상 환자한테 진심이었어. 어디서든 그 마음이면 괜찮을 거야."
간호사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나의 여정은, 병원의 벽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흔들리고, 부딪히고, 무너졌던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사람을 위한 간호'가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몸이 무너지고 나서야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고, 할아버지의 치매를 겪으며 병원 바깥의 고통을 체감했다. 결국 병원은 나를 깨뜨린 공간이 아니라, 나를 밖으로 이끈 공간이었다. 그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병원을 떠나며 나는 결심했다.
'이제는 누군가의 퇴원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퇴원 이후의 삶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번아웃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면, 이것만은 기억해주세요.
번아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의 한계 때문입니다.
1. 신호를 무시하지 마세요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기
"조금만 더 버티면"이라는 생각 버리기
휴식은 사치가 아닌 필수
2. 도움을 요청하세요
동료, 상사와 솔직한 대화
전문가 상담 받기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기
3.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세요
업무 우선순위 재정리
퇴근 후 일 생각 멈추기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찾기
4. 때로는 용기 있는 선택을
로테이션 요청
근무 형태 변경
때로는 이직도 하나의 방법
그렇게 나는 '지역사회'라는 이름 없는 현장으로 나아갔다. 다음 여정이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내 심장이 먼저 반응한 길이기에.
나는 흔들리되, 멈추지 않기로 했다.
병원에서의 5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 시간 동안 배운 것은 의료 기술만이 아니었다. 사람을 돌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때로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이었다.
이제 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병원 밖에서,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간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고 싶다.
� 다음 회 예고 복지관 간호사라는 낯선 길을 찾아나서는 이야기. 채용되는 간호사는 단 한 명뿐이라는 현실과 마주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번아웃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그때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혹시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이 이야기는 화,목,금,일 연재됩니다
《나는 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는 병원 밖 삶을 고민하며
간호와 복지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실천자의 기록입니다.
・일상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 종종 남기고 있어요
https://blog.naver.com/ju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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