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2화. 아들의 편지

by 김정은

일은 못했지만, 마음은 통했다

그렇게 나는 그 대학병원에 취업하였다. 신입 간호사 교육의 마지막 날, 희망 부서를 적어 제출하는 시간이 왔다. 나는 망설임 없이 내과 부서를 적어내었다.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이 인기부서였는데, 나는 사람과 대화하며 라포를 형성하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내과는 기피 부서 중 하나였다. 업무 강도가 센 곳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병동에 배치되었을 때, 나는 정말 일을 잘하지 못했다. 주사를 잘 놓지 못해 병실 전체에서 나를 거부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일의 우선순위를 알지 못한다고 많이 혼났다.

나는 매일 혼나는 사람이었고 동기들은 그런 나를 보고 "아 저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를 배웠다. 회사에 꼭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어떤 일로 혼이 나는 사람을 보며, 아 저렇게 하면 혼나는구나,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상황.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 하나는 내가 동기 중에 최후의 3인에 남았다는 것이다.

"일은 못 하는데, 그래도 사람이 약아 빠지진 않았어, 그래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야."라고 중간 연차 선생님들이 나를 평가해 주셨다.

간호사의 업무 중에는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고, 공통으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예를 들면 약물이 올라오면 정리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나는 내 일보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공통의 일을 먼저 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이 일을 할 테고 그럼 힘들 테니까 말이다.

그럴 때면 나를 아껴주시던 시니어 선생님께서 "정은아, 이거는 내가 할 테니까 너 일해도 된다"며 웃으며 말해주셨다.


위기의 순간, 그리고 배움

병원에 다니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병원은 사건 사고의 연속이다. 그리고 늘 책임소재가 따라붙는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 간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어느 날 병동에 큰 문제 상황이 발생했고 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멍하니 바라볼 뿐 적극적으로 나의 입장을 어필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순식간에 나는 사건의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다들 자기 입장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는데, 그냥 멍하니 있다 보니, 모든 화살의 방향이 나로 향했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라 그냥 울어버렸다.

울어버리니, 나는 진짜 그 사건의 주범이 되었다. 억울해서 울었다. 그러면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내 입장을 잘 전달하면 될 것을 병동 스테이션에서 엉엉 울고만 있었다.

그런 나를 시니어 선생님들이 조용히 탈의실로 데리고 들어가셨다. 적어도 20년 이상 간호사를 하신 베테랑 선생님들. 내가 아주 존경하는 시니어 선생님들이셨다.

아직도 시니어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말이 기억난다.

"정은아, 사건이 발생하면 진실은 언젠간 밝혀질 거라고 하고, 네가 너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 거야, 울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해, 그리고 이제 여기서 나가면 침착하게 너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거야 알겠지?"

그렇구나! 사회는 이런 곳이구나.

눈물이 차올라 목까지 아파져 왔지만, 울음을 꾹 참고 나는 그제야 내 입장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병원 생활 중 나의 태도가 병원 사람들에게 신뢰를 해주었는지 나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옆을 지켜주었다.

나는 일을 잘하지 못하는 그런 간호사였다. 똑똑한 간호사가 되겠다고 면접 때 포부를 밝혔지만 똑똑한 간호사도 아니었다, 그저 솔직하고 신뢰를 주는 그런 간호사였다.


환자들이 남긴 따뜻한 기억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미숙한 간호사였지만 환자들이 바라보는 나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나보다. 그래서 환자들이 입원 중 또는 퇴원하며 고객의 소리 함에 넣는 칭찬 글이 많아져 병원 전체 친절간호사 MVP에 당선되기도 했다.

환자 가족이 남긴 편지

"정말 친절하고 잘 대우받고 갑니다. 너무 한 직원에게 많은 업무량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로의 기술과 노하우는 틀리겠지만 내가 위고 아래고라는 선입견은 버리고 환자를 위했으면 합니다. 나는 못 해 넌 이거 할 줄 알지 라는 식의 기술이전은 이제 벗어나야죠. 그러기에 김정은 씨 같은 분은 정말 대단해 보였어요. 저도 서비스업에 종사하지만, 더욱더 잘 보였지요"

또 다른 환자의 편지

"환자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천사. 바쁘고 힘든 업무에도 변함없는 웃는 모습에 환자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아름다운 간호사(나이팅게일 정신 보유자)임. 반드시 칭찬이 필요합니다."


어머님을 잃은 아들이 남긴 편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어르신의 아들이 남긴 긴 편지였다. 어머님을 잃은 아들이 남긴 편지였다.

"어머님 생전에 도움을 준 고마운 분들이 있어 아들인 제가 감사의 글을 올립니다.

시골에서 평생을 농사만 짓던 어머님은 당뇨가 심하여 대·소변을 못 보던 중에 귀원에 입원하게 됐습니다. 집에선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시던 분이 신장 투석 몇 번과 물리적인 의학의 힘을 빌려 식사도 잘하시고 화장실도 가실 정도로 많이 나아지셨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복도를 왔다 갔다 운동을 하시며 퇴원하기를 손꼽아 기다리셨습니다. 그날 아침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식사를 다 하시고 복도로 나섰습니다. 서관 창문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시는 모습을 아들은 핸드폰에 담으려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바로 그때 복도의 보조 보행기를 붙드시고 가녀린 어머님이 쓰러지셨습니다. 단 몇 초만 의식이 있었다면 '어머니 사랑해요. 어머니 아들로 태어나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라고 고백 했을텐데,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 하다 약국을 차려도 될 만큼의 약봉지를 보고 한없이 울었고 밭의 하우스에 가서 주인을 잃은 장화와 흙 묻은 옷가지를 부둥켜안고 그리움에 미안함에 한없이 울었습니다.

3주의 짧은 투병 생활이었지만 어머님과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여행으로 기억될 겁니다.

더러운 병실에 무릎을 꿇고 환우들의 오물을 치우던 키 큰 김정은 간호사님 감사합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늘 어머님 당을 체크했고 임종 전에 심폐소생술을 하며 땀을 많이 흘리셨던 통통한 의사 선생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어머님을 잃고 나서야 거리에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너무도 위대하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럼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나는 어떤 간호사였나

이 편지를 읽으며 나는 처음으로 내가 어떤 간호사인지 알게 되었다.

일은 서툴렀지만, 진심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 진심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이별 여행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더러운 병실에 무릎을 꿇고 환우들의 오물을 치우던" -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알았다. 내가 누군가에게는 정말 의미 있는 사람이었구나.

주사를 제대로 놓지 못해서 혼나고, 일의 우선순위를 몰라서 야단맞던 그 시간들이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5년 차 간호사로서의 나의 병원 생활을 정리해 보자면, 일을 참 못했지만 누군가에겐 진심이 전해져 따뜻한 기억을 두고 퇴원하게 하는 그런 간호사였다고 정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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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결심, 그리고 준비

퇴사 무렵 나의 상황을 점검했다. 계획했던 3년보다 1년을 더 채운 나는 1억 원 정도의 돈을 모아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고, ○○대학교 RN-BSN도 졸업한 상태였다. 지역사회로 나가기 위한 모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수간호사 선생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힘들어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말씀드렸다. 내가 계획하고 있는 일을 A4 용지에 잘 정리해서 보여드렸다.

나의 목표는 이러하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치매 전문 교육도 들어야 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은데, 병원에 다니면서 이 모든 것을 할 수 없으므로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다.

최종적으로 간호국장님과의 면담 때, 국장님이 하셨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네가 그 간호사구나. 내가 기숙사 라운딩할 때, 네가 옷장에 붙여놓은 계획표를 보고 신입 간호사 교육할 때 너의 이야기를 했단다. 힘들어서 그만둔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이 간호사처럼 계획을 세워서 나가라."

그리고 나에게는 "너는 뭘 해도 잘할 것이다, 혹시 지역사회로 나가서 도움이 필요하거나 잘 되면 꼭 연락을 줘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는 대학병원 5년 차,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지역사회 간호사에 도전하게 되었다.

병원을 떠나는 마지막 날, 출근길의 바람이 이상하게 다정하게 느껴졌다. 매일 아침 뛰듯이 들어서던 출입문 앞에서, 처음으로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간호사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나의 여정은, 병원의 벽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흔들리고, 부딪히고, 무너졌던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사람을 위한 간호'가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 다음 회 예고 병원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까지. 번아웃을 극복하고 자신을 지키는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일은 서툴렀지만 마음만은 진실했던 경험이 있나요? 그런 진심이 누군가에게 전해진 기억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이 이야기는 화,목,금,일 연재됩니다
《나는 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는 병원 밖 삶을 고민하며
간호와 복지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실천자의 기록입니다.


・일상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 종종 남기고 있어요
https://blog.naver.com/ju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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