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 1화. 세 번의 실신

by 김정은

똑똑한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지방의 한 간호학과를 진학해서 대학 생활의 낭만도 없이 치열하게 공부했다. 성적이 곧 대형병원에 취업하는 첫 번째 합격선이기 때문이다. 기본 학점이 4.0은 넘어야 하고, 상위 20%에 들어야 우리가 들어봄 직한 대형병원에 1차 서류 통과를 할 수 있다.

아침부터 저녁 6시까지 빡빡한 수업 일정을 들었고, 방학에는 병원 실습을 했다. 그래서 남들이 하는 연애, 그리고 아르바이트, 여행 같은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했다.

졸업할 시점이 다가오면 병원 채용 공고에 맞춰 서류접수를 하는데, 상위 5대라 불리는 병원에 취업 된 친구들은 학교 내에서 자랑스러운 훈장을 찬 것처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때 아빠가 말씀해 주셨다.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는 너의 능력이 되는 선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이 좋아. 그리고 그곳에서 한 계단씩 내려오기는 쉬운데,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하면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이 더 힘들어."

때마침 서울의 한 대학병원 채용 공고가 났다. 다른 병원이 100명~200명을 채용할 때, 그 병원은 50명을 채용했다. 그리고 대면 면접을 2차까지 보는 유일한 병원이었다. 채용인원이 적다는 건 그만큼 이직률이 적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꽤 좋은 병원이라고 판단했다.

2차 면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 병원이 선생님을 뽑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저의 대학교 성적표를 보시면, 저는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올라가 결국은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미흡할지라도 노력과 끈기로 반드시 현장에서 적응해냅니다."

"어떤 간호사가 되고 싶나요?"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똑똑한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할아버지의 잦은 병원 입원으로, 보호자의 관점에서 간호사를 보니 주사를 한방에 잘 놓는 간호사, 그리고 업무처리를 신속하게 해주는 간호사, 똑똑해서 물어보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해주는 간호사가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반면에 마음은 따뜻한데, 주사를 여러 번 찌르는 간호사, 알아보겠다고 이야기했는데 반나절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는 간호사, 궁금한 사항을 여쭤보면 우물쭈물하거나 알아보겠다고 하는 간호사는 환자와 보호자 관점에서 도움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똑똑한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고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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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달랐다

그렇게 나는 그 대학병원에 취업하였다. 신입 간호사 교육의 마지막 날, 희망 부서를 적어 제출하는 시간이 왔다. 나는 망설임 없이 내과 부서를 적어내었다.

내가 지원한 내과 병동은 류마티스내과, 혈액종양내과, 내분비내과, 소화기내과를 주 관심사로 하는 병동이었고 신장내과, 순환기 내과, 호흡기 내과 환자도 받는 곳이었다. 그래서 다른 부서보다는 업무 강도가 센 곳이었다.

나의 동기는 총 10명이었다. 내과 부서에서 10명이 퇴사를 한 모양이다.

역시나 처음 병동에 배치되었을 때, 나는 일을 잘하지 못했다. 주사를 잘 놓지 못해 병실 전체에서 나를 거부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일의 우선순위를 알지 못한다고 많이 혼났다. 심정지와 같은 상황에서는 신속 정확하게 움직여야 했지만, 놀란 마음을 진정하지 못했고 적절히 조치하지 못해 또 혼이 났다.

나는 매일 혼나는 사람이었고 동기들은 그런 나를 보고 "아 저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를 배웠다. 나는 그런 나를 자책했다. 다른 동기들은 눈치 있게 잘하는데, 나는 왜 항상 경험을 통해서만 알게 되고, 혼나야만 알게 되는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는 내가 동기 중에 최후의 3인에 남았다는 것이다.

"일은 못 하는데, 그래도 사람이 약아 빠지진 않았어, 그래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야."라고 중간 연차 선생님들이 나를 평가해 주셨다.


세 번의 실신

처음부터 병원은 내가 지역사회로 나오기 위한 과정일 뿐, 오래 근무할 생각이 없었다. 나의 목표는 3년의 임상 경력이었다. 3년을 버티면 과감히 퇴사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런데 그 3년이 나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병원에 다니는 동안 나는 총 3번의 실신을 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실신은 병원 근무 1년 차, 아침 근무가 시작되기 전 다과 모임을 위해 잠시 모였을 때였다. 커피 한 모금을 마셨을 때 갑자기 어지러웠고, 식은땀을 흘리며 앉은자리에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병동에 있던 주치의와 시니어 선생님들은 나에게 바로 18G 주사를 놓고 적절한 투약 조치를 한 뒤, 이동 침대에 누워 응급실로 옮겨 주었다.

나는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기운이 없어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때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직장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항상 괜찮아하는 모습만 보였지만, 사실 나는 굉장히 나약하다.

그날 밤, 또 다른 목표를 하나 정했다. "내가 이곳에서 3번까지 쓰러진다면, 그때는 과감하게 퇴사하겠다."라는 목표였다.

두 번째 실신은 점심~밤 근무 출근 후 저녁 먹으러 식당에 내려갔을 때였다. 간호사는 밥을 마신다고 표현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먹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일을 다른 선생님께 부탁하고 식사하는 상황이라 마음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없다.

그날도 밥을 먹으며 '병동 올라가면 수혈하고, 퇴원 처리도 하고......'라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함께 식사하던 선생님이 이동 침대를 가져와 나를 눕히고 응급실로 달렸다. 다행히 응급실에 도착하니 의식이 돌아왔다.

세 번째 실신은 쉬는 날에 일어났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쿵' 하고 쓰러졌다. 버스 정류장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그 가운데서 말이다.

병원 밖에서 쓰러진 적이 없었는데, 일상생활을 하던 중 쓰러진 것은 꽤 큰 충격이었다.

그날 밤, 드디어 마음의 결심을 내렸다. 내가 마음속으로 퇴사를 결정했던 기준, 세 번의 실신, 카운트가 끝이 났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치매, 그리고 무력함

내가 지역사회 간호사를 결심하게 된 다른 이유는 우리 할아버지 때문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함께 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 대한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시고 날마다 술을 드셨다.

대학병원에 취업 후 나는 한동안 병원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할아버지가 건강이 나빠져 입원하게 됐는데, 그곳에서 알코올성 치매를 진단받았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퇴원 후 집에 오셨을 때 할아버지의 보살핌은 엄마의 몫이었다. 나는 간호사로서 엄마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병원에서 의사의 오더에 의한 처치만 능숙할 뿐, 의사의 오더 없이 지역사회에서는 어떻게 엄마를 도울 수 있는지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인터넷에 검색해보는 게 전부였다.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보건소에서 약제비를 지원받는 것부터, 장기요양등급 신청 등을 도왔다. 이 과정에서 정보가 부족해서 꽤 어려움을 겪었다.

분명 우리나라에도 많은 복지 제도가 있을 텐데, 서비스를 몰라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 다음 회 예고 병원에서의 마지막 시간, 그리고 환자들이 남긴 따뜻한 편지들. 일은 서툴렀지만 누군가에게는 진심이 전해졌던 이야기들을 들려드릴게요.



・이 이야기는 화,목,금,일 연재됩니다
《나는 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는 병원 밖 삶을 고민하며
간호와 복지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실천자의 기록입니다.


・일상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 종종 남기고 있어요
https://blog.naver.com/ju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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