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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쟁이, 장모 속 터지게 만든 날

복숭아 네 개가 집안을 발칵 뒤집었다..

by 감차즈맘 서이윤

구라쟁이랑 결혼하고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갖게 된 나는,

심한 입덧 때문에 하루하루 링거로 버티고 있었다.

복숭아 하나에 눈이 뒤집히고, 자두 한입에 하루를 살아내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엄마가 나를 돌보러 오시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구라쟁이는 솔깃해졌다.

곧장 비행기표를 끊어 부모님을 불러오더니 "이제 살았다."는 두수 싱글벙글이었다

.

하지만 엄마가 도착해 작은 아파트를 둘러보시자마자 첫마디가 이랬다.

“애 낳고 한국으로 들어와라.”


그렇게 다 같이 살게 되었는데, 엄마의 한숨은 점점 늘어갔다.


나는 엄마가 오기 전까지 과일만 먹고 버텼다.

특히 복숭아와 자두가 내 주식이었다.

복숭아를 좋아하시던 엄마도 드시고 싶으셨는지, 남편에게 복숭아를 사 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남편이 사 온 건 고작 네 개.


염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뻘쭘했던 구라쟁이가 말했다.

“나는 안 먹을게. 밴댕이, 너 하나 더 먹어.”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셨다.

“손이 적어서 어디다 쓰냐. 너는 어떻게 살아갈 거냐.”


남편은 입술을 대빨 내밀고 툭 내뱉었다.

“내일 또 사 오면 되지, 뭘 그렇게 쟁여. 과일은 신선할 때 먹어야지.”


그 순간,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아주 자랑스럽게 봉지를 내밀었다.

“오늘은 제대로 준비했어!”


그 안에는 복숭아가 무려 여덟 개 들어 있었다.

남편은 흡족하게 웃었지만, 엄마는 더 큰 한숨을 내쉬셨다.

“아이고야… 이걸 어쩌냐. 우리 딸 과일 좋아하는데… 너 애만 낳고 한국 들어와라.

엄마가 키워주마 ”


엄마는 한술 더 뜨셨고, 남편의 표정은 또다시 삐죽해졌다.


엄마는 손이 크신 분이었다.

내가 어릴 적 엄마가 과일을 낱개로 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사과도 두세 박스는 기본이었고, 고구마도 서너 박스씩 들여놓았다.

김장을 담으면 600 포기, 많을 땐 800 포기까지.

겨울이면 아빠는 땅을 파서 장독을 줄줄이 묻으셨다.


밥상 위엔 늘 김치만 대여섯 가지.

엄마는 손도 크셨고, 음식 솜씨도 대단했다.


그런 엄마 눈에, 네 개 혹은 여덟 개 복숭아를 사 오는

사위가 얼마나 답답하게 보였을까.

숨 넘어가며 나까지 원망하는 눈빛을 쏘셨다.


결국 엄마는 '다음엔 꼭 시장에 나를 데리고 가라"라고 당부하셨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시작은 좋았다.

엄마는 "김서방 ~"하시면서... 깔깔 웃으셨고, 남편도 함께 웃으며 장바구니를 들고나갔다.


그런데 집에 돌아올 때는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엄마의 얼굴빛은 어두워져 있었고, 남편은 눈이 충혈된 채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가 과일을 박스로 집을 때마다 이번엔 구라쟁이가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 너무 많아요... 신선할 때 조금씩만 사야지요."


구라쟁이가 도로 빼내자, 엄마는 눈을 부릅뜨셨다.

"과일은 원래 넉넉히 있어야지. 우리 딸이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리고 손이 커야 마음도 넉넉한 거야."


"아니, 그래도 너무 많다니까요.... "

구라쟁이는 또 중얼거리자, 엄마는 결국 버럭 소리를 치셨다.

"그냥 넣으라니까."


그리고는 마지막에 한마디 더 얹으셨다.

"에휴, 왜 밴댕이가 키 크고 덩치 큰 사람이랑 결혼을 안 하고,

키 작고 덩치도 작고 손도 작은 사람하고 결혼해서 이 고생을 하는지...."


그 순간, 구라쟁이는 씩씩대며 장바구니를 들쳐 매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결국 집에 돌아와서 참다못한 엄마는 한국으로 들어가자고 나를 채근하셨다.


믿을 수가 없다고... 너를 맡길 수가 없다고."

그렇게 엄마의 한숨과 눈물이 그렇게 터져 버렸다.


그러자 이번엔 구라쟁이가 울면서 소리쳤다.

"안 사준다는 것도 아니고 더 신선한 거 먹이려고 하는데 엄마가 그런다고..".

결국 장모와 사위는 나를 한가운데 두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 순간 나는 속상해서 울었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아빠는

한숨을 쉬시며 말없이 냉장고에서 복숭아를 꺼내셨다.

물에 깨끗이 씻어내고, 한 조각 한 조각 정성스레 깎아 접시에 담아 조용히 나에게 건네주셨다

"먹어라."

그날의 복숭아, 그날의 아빠의 슬픈 눈망울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이후로 구라쟁이는 나에게 단 한 번도 no를 말한 적이 없다

내가 많이 사든, 적게 사든

입술이나 눈빛으로만 표현했을 뿐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날, 엄마의 가르침 덕분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지금도 나에게 묻는다.

"김서방, 이제 손 좀 커졌냐?"

"아직도 복숭아 4개만 사 오냐?".


돌이켜보면, 그날의 복숭아 사건은 그저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그 안엔 분명 우리 가족이 다 들어 있었다.


웃음 끝에는 늘 아빠가 깎아주던 묵묵한 복숭아가 있었다.

그리고 엄마의 포효하는 외침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날 이후 한 번도 "No"라 하지 말하지 않는 구라쟁이의 조용한 배려가 있었다.


결혼은 뭐 대단한 비밀이 아니다.

결국 복숭아 네 개로 울고 웃고,

박스째로 쟁여놓고 또 티격태격하다가도,

다시 같이 먹는 게 결혼이고 가족이다.


..... 단 하나 확실한 건,

우리 집에서 복숭아 네 개는

구라쟁이의 귀가 빨개지는 신호라는 거다.


구라쟁이 귀는 복숭아 네 개만 봐도 빨개진다.


이미지 제작 도움: ChatGPT (AI 이미지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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