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은 순간들이 아이를 키웠다.
아이는 부모의 말투로 세상을 배우고,
부모의 태도로 마음의 구조를 만듭니다.
불만보다 고마움을 들으며자란 아이는
세상을 덜 두려워하고,
사람을 더 따뜻하게 바라보는 힘을 갖게 됩니다.
이 글은 부모의 '작은 말 한마디'가
아이의 평생을 어디까지 흔들고,
어디까지 붙잡아주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저는 종종 **질문 대마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아이들 학교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여러 배경의 부모님들을 만났을 때도,
혹은 '성공한 자녀'를 둔 부모님들과 대화할 때도
제가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늘 같았습니다..
"이 아이를 계속 움직이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저는 아이비리그에 어떻게 보냈는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 스스로 성장하게 만든 내면의 동력,
그 기준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내가 어떤 부모가 되려 하는 지를 결정하게 했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건네는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아이의 감정 구조, 인간관계의 기본값,
위기 상황의 회복력을 만드는 기초 설계도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한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불만보다 감사가 많은 부모가 되자.
억울했던 일, 서운했던 사람, 마음 상한 사건들은
아이 귀에 들리지 않게 하자.
아이들이 불평보다 감사의 구조를 먼저 배우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음악을 전공하는 딸을 키우며
저는 더 다양한 관계의 결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습니다.
딸이 직접적인 차별을 겪은 적은 없었지만,
다른 아이에게 보이는 태도를 보며
“이 관계는 조심해야겠다” 하고
조용히 마음을 접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서둘러 관계를 끊지는 않았습니다.
바뀌어야 할 순간은 자연스럽게 찾아온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본 부모들은 말했습니다.
“미련하다.”
“더 나은 선생님으로 옮겨야 한다.”
“재능 있는 아이를 왜 저렇게 두냐.”
“콩쿠르로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조언이라는 이름의 말들 속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음악이 딸의 인생 전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이미 시작한 길은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평가받는 삶이었기에
그 안에서만큼은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흔들릴수록 더 묵묵히
제가 옳다고 믿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 선생님 왜 저래?”
“저런 사람 조심해야 해.”
누군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마다
저는 의도적으로 침묵을 택했습니다.
그런 말 한마디는 아이 마음에
불신의 씨앗을 심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은
아이가 그대로 배워갑니다.
아이가 배워야 할 것은
‘세상이 위험하다’가 아니라,
**‘사람을 섬세하게 보는 눈’**입니다.
그래서 나는 판단은 하되 말하지 않는 부모가 되고자 했습니다.
2. 아이는 부모의 불평을 들으며 ‘감정 사용법’을 배웁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투와 감정을 정확히 베낍니다.
부모가 험담하면 아이는 이렇게 배웁니다.
“문제가 생기면 비난하면 된다.”
부모가 고마움을 기억하면 아이는 이렇게 배웁니다.
“문제가 생겨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어릴 적 저는
마당 툇마루에서 사람들이 모여 웃으며 험담을 늘어놓던 풍경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싫었습니다.
그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엄마의 모습도 낯설었습니다.
반면 아빠는 늘 짧고 단단하게 말했습니다.
“고마웠으면 덮고 가라.
한 가지가 고맙고 열 개가 서운하면,
그 고마운 한 가지만 기억해라.
그리고-
좋은 말만 흘려라.
그것이 네 세상을 지키는 일이다."
엄마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음에도
내가 아빠의 말을 더 마음 깊이 새긴 이유는
아마 그 말 한마디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결국,
내 아이들을 키우며 세운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스무 해가 지나고 보니,
부모가 일상에서 선택한 언어의 결이
아이의 성향과 회복력에 그대로 새겨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들 앞에서
• 서운함을 말하지 않았고
•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고
• 누군가를 함께 비난하지 않았고
• 무조건 아이 편을 들지 않았고
• 불만을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그 효과는 즉각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① 다툼이 생겨도 결국 부모의 말을 존중합니다.
감정이 강한 딸도
결국 돌아오는 지점은 늘 같았습니다.
“엄마 말이 맞았다.”
감사 중심의 아이는
관계를 끊기보다 회복하는 힘을 갖게 됩니다.
② 위기 상황에서도 빨리 긍정으로 회복합니다.
탈락, 갈등, 어려움이 와도, 또 때로는 인간관계에 갈등이 생겨도
상황을 분석하고 정리한 뒤
빠르게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③ 중요한 순간에 가장 먼저 부모의 의견을 묻는다
이는 의존이 아니라
비난하지 않는 부모에 대한 신뢰입니다.
④ 경제적·정서적 독립이 빠르다
두 아이 모두 대학생이지만
딸은 전액 지원을 받고, 아들은 장학프로그램을 통해
학비와 생활을 스스로 책임지고 있습니다..
지금 부모가 맡는 건 건강 보험 정도뿐입니다.
이것은 '잘 돼서'가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는 마음의 기반이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만들어졌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부모의 불평을 듣지 않으며 자란 아이는
누군가에게 기대야 한다는 마음을
자연스레 덜 갖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과 사람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그대로 아이의 자존감에 반영됩니다.
부모가 감사에 익숙하면
아이는 실패 속에서도 스스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부모가 불만에 익숙하면
아이는 작은 문제에도 쉽게 흔들립니다.
저는 그저 아주 작은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입을 조심한 것.
평가를 조심한 것.
고마움을 아이의 언어로 심어주려 했던 것.
그 선택들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작은 불편함이 생길 때나,
누군가에 대한 불만이 올라올 때
입을 닫는 일은 늘 스스로와의 싸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짧은 침묵이
아이에게는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기준'이 된다고 믿었기에
저는 끝까지 그 원칙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완벽한 부모는 아니었지만
두 아이가 대학생이 된 지금,
저는 비교적 편안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조금은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랍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사회로 나갔을 때도
“흔들리지 않는 아이로 자랐다.”
이 문장을 다시 쓸 수 있기를.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일은
시간이 걸리지만,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