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회복력은 작은 실패에서 자란다.
아이는 실패를 많이 할수록 강해집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실패를 ‘당해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그 순간마다 먼저 손을 내밀어
넘어질 기회를 없애버리기 때문입니다.
“실패하면 안 돼.”
“넌 잘해야 돼.”
이 말을 직접 하진 않아도,
우리는 은연중에 그렇게 말하며 아이를 키워왔는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달리기에서 2등을 하면
“아쉽다, 조금만 더 하면 1등도 할 수 있었는데…”
시험에서 96점을 받아와도
“잘했어!” 하고 칭찬한 뒤 곧바로 묻습니다.
“뭐 틀렸어? 아깝다, 100점 받을 수 있었는데.”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 100점을 받던 당신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70점, 50점을 받던 그 시절의 당신은, 지금 어떤 어른이 되었나요?
이건 부모를 탓하기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그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어느 순간
성적과 등수로만 좁아지지 않았는지 되묻는 것입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무엇이든 잘해왔고 가진 것도 많은데
이상하게도 불안해 보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아이들은 스스로 실패를 겪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책으로, 말로, 조언으로 실패를 배웠지만
그건 아이 혼자 만난 실패가 아니라
대부분 부모가 ‘설계하고 관리한 실패’였습니다.
대학 원서를 쓸 때도,
활동을 고를 때도,
부딪히기 전에 부모가 먼저 방향을 정해주고
대비책을 깔아 두고 실패의 폭을 조절합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묻습니다.
“그 선택, 정말 아이가 원한 것이었나요?”
“아니면 ‘그래야 좋은 대학 간다’는 전략이 먼저였나요?”
어릴 때부터 아이들과 게임을 하면
저는 절대 봐주지 않았습니다.
열 번 하면 열 번, 아이들은 졌습니다.
남편은 말했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해서 애들을 이기고 싶어?”
하지만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응. 애들은 지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해.”
한 번 이기기 위해 열 번을 져본 아이는 압니다.
승리가 '누가 준 선물’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얻어낸 결과라는 것을.
달리기, 윷놀이, 카드게임, 체스게임...
게임을 시작라면 저는 끝까지 공정했습니다.
처음엔 져서 울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받아들이거나
더 집중하려 애를 썼습니다.
물론 아이마다 성향은 다릅니다.
바로 패배를 인정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지고 나면 게임을 아예 하지 않으려는 아이도 있습니다.
“왜 계속해야 돼? 재미없어.”
아이들은 지는 순간, 이렇게 말하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곤 합니다.
그럴 때면 저는 방식을 살짝 바꾸었습니다.
게임을 바꾸거나, 달리기로 대신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도전할 기회를 만들어주려 노력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묻습니다.
“아이가 지면 기죽지 않나요?
자존감 떨어지면 어쩌죠?”
저는 늘 말합니다.
"아니요, 오히려 반대예요."
요즘 아이들은
조금만 어려워도 금방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만 지면 기분이 상하고,
조금만 불편해도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세상은 도전의 연속입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 혹은 여러 번
반드시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래서 어릴 때 경험하는
패배의 감정, 억울함, 다시 도전하기 싫은 마음-
이 모든 감정을 스스로 견뎌보는 경험이
아이의 회복력을 키우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이기는 법보다 먼저, 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져본 아이가 결국 더 멀리 간다.
딸이 콩쿠르에서 떨어져 울던 날,
저는 감정적으로 편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심사위원이 이상한 거야.”
“네가 잘했는데 운이 없었네.”
이런 말들은 위로 같지만
사실은 아이가 패배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게 만드는 말입니다.
저는 아이의 눈물을 받아주되
불필요한 말을 덧붙이지 않고
그저 옆에서 조용히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면 딸은 울다가도 묻곤 했습니다.
"엄마는 왜 위로 안 해줘?"
그럴 때 저는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게 위로할 일이야?
끝까지 해낸 너를 축하할 일이야.
그리고 너는 또 도전할 거잖아."
그 순간에는 서운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딸은 배웠습니다.
감정에 끌려가지 않고,
현실을 바라보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스스로 찾는 사람으로
천천히 변해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설계된 실패’가 아닌,
스스로 버티고 다시 일어나는 경험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지난 6년 동안
매주 일요일 오후 아이들과 함께 한 짧은 하이킹이었습니다.
정상 앞에서 포기하는 날도 있었고
날씨 탓, 체력 탓을 하며
비옷을 입고 가다가 돌아와야만 했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도전하면 깨닫게 됩니다.
올라가는 길은 힘들지만
내려오는 길은 놀랄 만큼 쉽다는 것.
그리고 사람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다른 부모들이 그 시간에
레슨·온라인 수업·학습지를 선택했다면,
저는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을 택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평범한 시간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버티는 힘’을 키워준
가장 현실적인 실패 훈련이었습니다.
딸은 갭이어라는 큰 실패를 겪었습니다.
그때 저는 무너졌지만
딸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그 시간을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엄마, 그 시간이 있어서 나는 지금 더 멀리 갈 힘이 생겼어.”
실패가 아이를 뒤로 끌어내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밀어준 순간이었습니다.
그 경험 덕분에
지금 2학년임에도
뉴욕 NYSOS 오케스트라 오디션에서 합격하고,
비행기와 호텔까지 제공되는,
콘서트마스터 오디션 제안까지 받았습니다.
그 아이를 보며 저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겪은 실패는 아이를 더 멀리 데려간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가장 중요한 성장이다.
저는 아이에게 말합니다.
"하나는 부모가, 하나는 네가 선택하자."
부모의 선택과
아이의 선택이 1:1로 있어야
아이가 스스로 넘어진 실패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아이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넘어지는 것—
그게 진짜 실패입니다.
그리고 그 실패를 자기 힘으로 통과한 경험이
아이가 흔들리지 않는 어른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는 아이들 안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어려운 일을 마주할 때
그들은 먼저 제 의견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서둘러 답을 주기보다,
아이의 이야기를 더 듣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상담현장에서 만난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위로만 해주는 사람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사람을
오히려 더 신뢰했습니다.
처음엔 서운해하다가도
막상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오면
부모님보다 저에게 먼저 연락해 오는 아이들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선생님은 기분이 아니라 현실을 말해주니까요.”
“힘들어도 다시 일어날 방향을 알려주잖아요.”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은 ‘위로해 주는 사람’보다
‘현실을 바라보게 해주는 사람’을
더 깊이 신뢰한다는 것을.
저는 아이에게
위로보다 다시 서는 법,
그리고 중심을 잃지 않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아이는 실패 앞에서도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는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이 아이 인생의 가장 튼튼한 뿌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