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는 흐림 -25
수요일 아침,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이 시간이면 커튼 사이로 조금씩 밝은 빛이 스며들 법도 한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째깍 거리는 시계 속으로 아침이 숨어버린 듯 조용하기만 했다. 세상은 아직 어둠으로 고요했고 나는 휴대폰 시간만 계속 확인하며 진실과 거짓을 나의 잣대로 구분하느라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분명 휴대폰 시계도, 벽에 걸린 시계도, 조그만 협탁 위에 놓인 동그만 메탈 탁상시계조차도 같은 시간을 가리키는데 뭐가 그리 이상한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더는 버티지 못할 시간쯤이 되어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의 아침은 흐림 속에서 시작했고 그 안에서 움직이며 하루를 맞을 준비를 했다.
급하게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줄이 길게 늘어지는 흰색 스니커즈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공용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역시나 안갯속에 있는 듯 뿌옇고 흐린 세상이었다. 그때 나는 생각 없이 움직이느라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지난주부터 예고되었던 비소식이었다.
지금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안으로 들어가기에는 출근시간을 맞추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다행히 회사까지 가는 동안은 날이 흐리기만 할 뿐 비는 내리지 않았다.
"낙엽 다 졌겠네. 진짜 겨울이 오려나 봐."
"그러게."
지난 주말에 단풍구경을 하고 온 수찬은 나에게 막바지에 이른 쓸쓸한 늦가을 풍경에 대해 한껏 늘어놓았었다. 그런데 며칠 사이 겨울이라니, 수찬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표정을 구기며 씁쓸해했다.
그런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익숙하지 못한 생각과 함께 한 나의 일상도 어느새 적응되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놀라울 뿐이었다.
오늘은 회사에 있는 시간이 지겹고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아마도 날씨 탓이거나, 기분 탓이겠지.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자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우산을 살까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비가 머리 위로 뚝뚝 떨어지는 데도 걸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빨라지지 않았다. 한동안 묻어두었던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다시 떠오르는 듯했다. 어느새 지하철역에 도착했고 비가 오고 날이 흐려서 인지 지하철 승강장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머리와 어깨에는 아까 내린 빗방울들의 흔적이 남았는데 지하철 역 계단을 올라와서 보니 그 새 굵어진 빗방울은 어둠 속에서 타닥타닥 둔탁한 소리를 내며 세상을 적시고 있었다.
나는 그 와중에도 뛰지 않고 걸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탔고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적막 속에서 나는 소리는 경쾌하면서도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아무도 없는 공간에 존재감을 알렸다.
나는 평소대로 휴대폰 알람을 여덟 시에 맞추고 샤워를 했고 욕실을 나온 뒤 긴 머리카락을 말렸고 스킨과 로션과 크림 등을 순서대로 발랐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테이프 클리너로 밀어서 정리했고 물티슈로 널브러진 화장대 위의 먼지를 닦았다. 그리고 정수기에서 온수를 머그잔에 가득 담아 들고 소파 위에 앉아서 한 모금씩 마셨다. 손은 의미 없이 리모컨을 찾았고 갈 곳 없는 손가락은 아무 버튼이나 찾아 눌렀다. 티브이 속에서 활기찬 소리들이 쏟아져 나오자 그제야 진짜 세상을 만난 듯 집은 밝아지기 시작했다.
원치 않던 그리움에 내 마음이 아파와.
휴대폰 벨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시계는 8시 55분을 가리켰고 휴대폰 액정에는 그 사람의 이름이 떠있었다. 나는 바로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혹여나 그 사람이 잘못 누른 건지 몰랐다. 그런데 음악은 계속되고 휴대폰의 불빛은 끊기지 않았다.
"여보세요? 창윤 씨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서로 공유하지 못한 일을 전화로 이야기할 것은 없었다. 마치 공지사항을 알리 듯 메일로 또는 짧은 메시지로 중요한 일은 함께 알았고 공적인 일처럼 처리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서은 씨 집에서 맥주 한잔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창윤 씨,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맥주 한잔하고 싶은데 오늘은 도저히 혼자 마시고 싶지 않아서요."
그 사람과 통화를 마치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조금 있으면 알게 될 테지만 가슴은 두근두근 내 귀 가까이에서 웅성웅성대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