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빨간 빛에 스며든 달의 세계 (9)
#9 [호박빛 작은 기적]
여인은 아이들에게 살짝 미소 지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여러분, 잠시 이 테이블에 앉아볼래요?”
아이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마치 알 수 없는 비밀이 곧 펼쳐질 것을 예감한 듯, 숨을 고르고 조심스레 의자에 앉았다.
낡은 나무 의자는 아이들의 체온을 품듯 부드럽게 흔들렸고, 테이블 위로는 은빛 먼지가 흩날리며 작은 별무리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 순간, 창가를 스치는 바람조차 잠시 멈춘 듯 고요했다.
여인은 서혁과 서빈의 커피잔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잔에서 피어오르는 향을 천천히 들이마시며,
가볍게 한 모금, 또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따뜻함과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지자,
그 속에 묘하게 아린 감정이 심장을 살짝 조여왔다.
잠시, 쓰라린 기억이 여인의 가슴을 스치듯 스며들었다.
그 감정은 한순간도 오래 머물지 않고,
커피의 온기와 함께 잔잔히 사라지며,
아이들을 향한 부드러운 시선만이 남았다.
아이들은 그녀의 표정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치 몸속 깊은 곳의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듯, 살짝 뒤로 물러섰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마치 처음으로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신 것처럼 숨을 고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와… 이 시원한 느낌은 뭐지?”
서빈과 서혁의 목소리에는 경이와 호기심이 가득 섞여 있었다.
둘의 눈동자는 반짝였고, 마치 숨겨진 세계의 문이 살짝 열리는 것을 본 듯한 표정이었다.
공기 속에 퍼진 신비로운 온기와 향기가, 그들의 마음속 깊이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여인은 아련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 이제 제가 여러분의 아픔과 상처를 다 마셨답니다.“
마음이 한결 시원해졌을 거예요.”
여인은 노란빛을 띤 루나 카드를 꺼내,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카드에는 은은한 빛이 도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아이들의 손에 닿는 순간, 작은 별빛이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 흘렀다.
“자, 이제 정말 원하는 소원을 적어봐요.
달이 세 번 뜨는 동안, 단 한 번만 소원을 빌 수 있답니다.”
여인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소원을 빌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순간, 이 카드를 달빛에 비추면 티백으로 변해요.
그리고 그 티백으로 차를 우려내어 마시면… 바로 소원이 이루어진답니다.”
아이들의 눈동자에는 설렘과 호기심이 가득 찼고,
방 안에는 은은한 달빛과
신비로운 향기가 감돌았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작은 손에 쥔 노란 루나 카드 위에는 아직 아무 글자도 없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작은 소망이 파도처럼 조용히 밀려왔다.
그 파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설렘과 기대를 함께 품고 있었고, 방 안의 은은한 달빛 속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살짝 떨렸다.
“소원은 굳이 거창할 필요는 없어요.”
여인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진짜 원하는 것, 내가 정말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답니다.”
아이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음속 작은 바람들이 천천히 꿈틀대며,
카드 위에 글자를 적기 전부터 이미 소망의 파동이 퍼져 나오는 듯했다.
서빈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매일 웃으면서 살고 싶어요.
달콤한 케이크에 촛불을 불고, 가족들과 함께 웃으면서…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며 덧붙였다.
“사실, 여기서 지낸 모든 순간이 저에겐 이미 소원 같았어요. 그런 삶을 계속 살고 싶어요.”
아이들의 눈과 마음 속에 작은 빛이 스며들듯,
여인의 시선도 부드럽게 그 마음을 받아주었다.
서혁이는 주먹을 꼭 쥐며 다짐하듯 말했다.
“저는 멋있는 사람이 될 거예요.
누군가를 웃게 하고, 그 웃음을 보며 저도 웃는… 그런 사람이요.”
그리고 잠시 머뭇이며 말했다.
“그리고 오늘처럼 가족들과 생일을 함께 보내고 싶어요.”
그 말 속에는 결심과 따뜻한 기대가 묻어났고,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의 마음속 작은 소망을 조용히 품었다.
“아! 여러분, 혹시 글로 적는 게 어렵다면,
말로 대신 해도 괜찮아요.
제가 여러분의 마음을 대신 루나 카드에 적어드릴게요.”
여인의 말에 아이들의 얼굴에는 안도와 설렘이 함께 번졌다. 조금 서툴러도, 마음속 소망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작은 희망의 빛이 반짝였다.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여인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단어를 조심스레 내뱉자, 여인은 그 위에 정성스레 글자를 덧붙였다.
그리고 카드를 달빛에 비추자, 호박빛 노을 속에서 종이는 서서히 티백으로 변해갔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 안에는 묘하게 따스하고 신비로운 기운이 스며 있었고,
아이들의 마음속 소망도 함께 반짝이며 빛났다.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바라보다가,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여인은 티백을 컵에 넣고 따뜻한 차를 우려주며, 부드럽게 권했다.
“이제 마지막 인사를 나누어야겠죠.
서로 꼭 안아주세요…”
방 안에는 달빛과 차 향기가 은은하게 섞이며,
아이들의 마음 속 작은 파동과 따뜻한 기운이 조용히 퍼져 나갔다.
작은 팔들이 서로를 감싸며,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빈아, 고생 많았어. 좋은 곳으로 가… 꼭 행복해야 해.”
서혁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단한 결심이 묻어 있었다.
서빈은 울음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다가,
서혁을 꼭 안으며 속삭였다.
“오빠, 거기선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마.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방 안에는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과 달빛이 어우러진 고요한 기운이 흐르며,
서로의 온기가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여인은 티백이 우려진 차가 담긴 노란 잔을 아이들에게 내밀며 말했다.
“눈을 꼭 감고, 천천히 이 차를 마셔보세요.
여러분의 소원이 이루어질 거예요.”
잔 속에서 피어오르는 향기가 아이들의 코끝을 스치자,
마치 달빛과 별빛이 섞인 듯한 신비로운 기운이 방 안에 감돌았다.
하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수많은 말이 끝내 소리로 나오지 못하고,
그저 눈가에 맺혀 조용히 흘러내렸다.
그 눈물 속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마음과,
아이들이 서로에게 건넨 따뜻한 마음이 함께 스며 있었다.
아이들은 그의 눈물을 마지막 인사처럼 받아내며,
조용히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미소 속에는 울음과 웃음, 그리고 서로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한데 어우러져,
방 안을 은은한 빛과 온기로 채웠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레 차를 마셨다.
그 순간, 두 몸은 은은한 투명한 빛으로 변해 사르르흩어졌다.
남은 것은 작은 씨앗 두 알뿐이었다.
그 씨앗은 마치 모든 희망과 소망을 품은 듯,
달빛 아래 조용히 반짝이며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인은 씨앗을 소중히 품고 밖으로 나가 조심스레 땅에 심었다.
호박빛 노을이 강물처럼 땅 위를 흘렀다.
그녀는 땅을 가만히 어루만지며,
기도하듯 속삭였다.
“잘 자라다오… 너의 힘으로, 그들의 소원을 지켜다오.”
잔잔한 바람이 지나가며, 땅과 씨앗 사이로 은은한 빛이 스며들었다.
마치 작은 생명이 이 세상과 소원을 이어주는 다리처럼 빛났다.
“예쁜 아가들… 너희는… 꼭 행복…할 거야…
무조건 행복… 해야 해… 만나서… 반가웠…어…”
“이 아이들은 이제… 부모를 선택…해 다시… 태어날 거예…요.
쌍둥이였지만… 이제는 각자의… 삶을… 걷겠지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꽃으로… 별빛으로… 태어날 수도… 있죠…
노란 루나 카드는… 그런 힘을 가진… 카드랍…니다…”
그녀가 씨앗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씨앗에서는… 곧 황금빛 사과가… 열릴 거예…요… 아주 달콤…하고 아삭…한 사과가요…”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말의 틈마다 담긴 진심과 기도가 은은히 방 안을 채웠다.
만약 누군가 옆에서 들었다면, 소름이 돋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인의 눈빛은 여전히 고요했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기도의 울림이 잔잔히 퍼졌다.
여인은 다시 카페 안으로 돌아와 하빈 곁에 앉았다.
그녀는 그의 앞에 놓인 작은 양초에 부드럽게 불을 붙이며 말했다.
“불멍… 불을 보면서 멍하니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하더라고요…”
흔들리는 불빛이 방 안을 은은하게 물들이고,
공기 속에는 따스한 온기와 달콤한 향기가 함께 스며들었다.
“아이들이 떠났으니, 카페는 당분간 조용할 거예요.
이제 하빈씨 마음 속의 소리에만 집중해보세요.”
방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흐르며,
하빈의 마음도 불빛을 따라 천천히 잔잔해졌다.
하빈은 불꽃을 오래 바라보다가, 마음속 깊은 곳 무언가를 삼켰다.
여인은 그의 마음을 읽은 듯,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양초의 불은 스스로를 태우며 빛을 내요.
끝내 사라져가더라도, 누군가의 어둠을 밝혀주거든요.”
방 안의 공기는 잔잔하게 흔들리며,
불빛이 벽과 하빈의 얼굴을 부드럽게 물들이고 있었다.
“소원도 그와 같을 거예요.
내가 조금 사라져야만, 다른 누군가가 빛을 얻는 것.”
말의 끝자락에 담긴 여인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진심과 부드러운 힘이 스며 있었다.
하빈은 불꽃을 바라보며, 그 의미를 천천히 마음속에 새겼다.
방 안에는 따스한 침묵과 은은한 불빛만이 남아 있었다.
불꽃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눈 속에도 작은 빛이 일렁였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요.
당신이 품은 그 소원은, 당신을 태우면서도 동시에 살려낼 테니까요.”
그 말이 방 안에 잔잔히 울려 퍼지며,
하빈의 마음속 어둠조차 서서히 녹아내리는 듯했다.
“…네, 고마워요.”
하빈은 한동안 멍하니 앉아, 불타는 양초를 바라보았다.
불꽃이 춤추듯 흔들리는 사이, 마음속 깊은 생각이 천천히 흘러왔다.
그의 시선과 불빛이 마주하며, 잠시 세상과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가 방 안을 감쌌다.
“아이들은… 어디로 간 걸까…
이곳에서 소원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는데…
나도…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걸까…”
하빈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낮게 떨렸고,
방 안에는 남은 양초 불빛만이 그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불꽃의 흔들림 속에서, 마음속 불안과 설렘이 동시에 일렁였다.
소원과 사라짐, 그 사이의 아름다운 착각 속에서,
하빈은 모순된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내가 사라진다면, 소원은 누구의 것이 되는 걸까…
그리고 나 자신은 어디에 남게 되는 걸까…’
방 안의 불빛이 조용히 흔들리며,
그의 마음속 갈등과 기대를 은은하게 비추었다.
달이 저물고, 다음 날이 오기 전,
하빈은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하며 조용히 일기를 썼다.
펜 끝에서 흘러나오는 글자들은,
그의 마음속 소원과 불꽃 속에서 깨달은 작은 깨우침을 담고 있었다.
창밖의 달빛이 은은하게 책장을 스치며, 하루의 끝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양초 위 아슬아슬 붙은 불꽃이
조용히 떨며 어둠을 밝힌다.
빛나려 애쓰며
뜨겁게 흔들리고,
스스로를 녹이며
촛농이 뚝뚝 흘러내린다.
나는 묻는다.
이렇게까지 빛나야 하는 걸까.
스스로를 소모하며 행복할 수 있을까.
모순 속에서 작은 빛
하나가 연기가 된다.
그 빛이 남긴 흔적 속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불꽃을 바라보며
나는 말없이 생각한다.
연기 속으로 스며드는 빛처럼
이 모든 것이
과연 행복일까.
-하빈-
이 밤, 호박빛 노을과 작은 불꽃은
아직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소원을 향해,
숨결처럼 조용히, 그러나 점점 깊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공기 속에는 미묘한 떨림이 스며들고,
빛과 그림자가 서로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방 안을 감쌌다.
말 없는 기대가 파동처럼 번져,
마치 세상 전체가 한숨을 쉬며 소원을 기다리는 듯했다.
불빛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흔들리며,
아이들과 하빈, 그리고 여인의 마음까지 고요하게 스며들었다.
본 작품 《빨간 커피를 마시는 여인》은 저자 채유달의 창작물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제·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