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무그늘처럼 머물렀으면 해.
나는 지금, 아주 조용한 그늘 아래 앉아 있어.
네 편지를 펼쳐 읽으며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지.
바람도 아주 약하게 불고 있어. 마치 네가 나를 스쳐 간 것처럼.
편지를 읽는 내내, 나는 한 단어 한 단어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어.
마치 이슬 맺힌 유리컵을 들 듯, 네 말들이 흘러내릴까 봐, 떨어질까 봐, 아주 천천히, 아주 조심히.
너의 마음은 무겁지 않아, 적어도 나에게는 그래.
그건 무거운 돌이 아니라, 오래도록 품은 불씨 같은 거야.
아직 꺼지지 않았고, 꺼지길 바라지도 않아서 나는 그걸 따뜻하다고 느껴.
너는 말했지.
“있잖아, 히카루 혹시라도 내가 떠난다 해도,
네 옆을 지켜주는 그늘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
그 말을 듣고, 잠시 눈을 감았어. 그리고 너의 그림자를 떠올렸어.
너는 스스로 먼지 같고, 오물 같고, 악취 같다고 했지.
근데 조금만 생각을 다르게 해 보면 먼지가 없으면 공기는 깨끗할지 몰라도, 생명도 움직이지 않아.
오물이 없으면 세상은 정화될 필요도 없어지고, 냄새가 없으면 그리운 기억도 함께 사라지지.
그리고 말이야, 그림자가 없으면 사람이 아니잖아.
그림자가 있다는 건, 네가 아직 빛 아래에 있다는 증거야.
숨으려는 마음도 알아. 하지만 잊지 마.
그림자는 어둠 속에서는 사라져. 그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너까지도 사라지는 거야.
나는... 그런 너를 보고 싶지 않아.
“죽음을 택하기보다 죽임을 택한 사람,
결국 스스로를 부정하며 도망친 사람.”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어. 도망쳤다고 말했지만,
실은 살기 위해 남은 마지막 문을 열었던 사람일지도 몰라.
그게 어리석다고? 아니야. 그건 정말, 살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었을 수도 있어.
하지만 나는 너에게 말해주고 싶어. 그 어둠을 네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거기가 네 자리는 아니야.
편하다고 느껴도, 그건 네가 너무 오래 아팠다는 신호야.
너는 짐이 아니야. 나는 여행 중에 가벼운 소풍도 겪고, 때론 무거운 짐도 안고 걷는 사람이야.
그리고 그 무게보다 이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훨씬 더 의미 있어.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하지 마. 나는 지금, 그저 너와 함께 이 그늘 아래 앉아 있어.
말없이 있어도 돼. 소리 없이 앉아 있어도 돼.
나는 가만히 너의 옆에 있을게. 더운 날들이 이어진다 해도,
이 편지가 네 마음 한켠에 작은 나무그늘처럼 머물렀으면 해.
히카루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