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소를 하다 서랍장 한구석에서 비닐도 뜯지 않은 블라우스를 발견했다. 퇴사 전 출근할 때 입으려고 사두었던 옷이다. 잊고 있었는데 막상 마주하니 기분이 묘했다.
이 옷을 살 때의 기억이 난다. 영업직이다 보니 복장에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많았다. 거래처 사람들에게 특히 병원 관계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깔끔하고 신뢰감 있는 인상을 주고 싶어서 골랐던 옷이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당당하게 내 몫을 해내고 싶었던 그때의 의욕이 생각난다.
나름대로 잘해보려고 준비했던 옷인데 결국 한 번 입어보지도 못한 채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옷을 펼쳐보니 이 옷을 입고 거래처를 활보했을 내 모습이 상상되어 마음이 조금 복잡하다. 그때의 나는 참 잘해보고 싶었구나 싶어서 스스로가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허무하기도 하다.
사실 영업이라는 게 나 자신을 먼저 보여주는 일이다. 그래서 더 좋은 옷, 더 깔끔한 차림새가 내 실력을 증명해 줄 무기라고 믿었던 것 같다. 빳빳한 옷깃을 만져보니 이 옷을 입고 병원 복도를 걸으며 마음을 다잡았을 내 모습이 그려져서 자꾸만 눈길이 갔다.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그렇게 공들여 준비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없어져 버린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