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땜

by 김소하연

어제는 정말이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멀쩡하던 충전기가 툭 하고 부러졌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마치 오늘 하루가 평범하게 흐르지 않을 거라는 예고편 같았다. 충전기는 소모품이라지만 하필 이 타이밍에 망가지는 건 하루의 시작이 평범하지 않겠구나 싶었다.

거기에다 더 황당했던 건 그 사람의 연락이었다. 딱히 호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평소에 깊게 생각하던 사이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 의아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 버젓이 여자친구가 있었다. 굳이 나한테 왜 연락을 해서 사람 신경 쓰게 만드는 건지. 평온한 일상에 뜬금없이 끼어든 그 무례함이 참 불쾌했다. 그저 자기 심심함을 달래보려는 가벼운 마음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불필요한 감정 소모이자 쓰레기 같은 연락이었을 뿐이다.

심지어 공들여 물건을 사러 나갔던 일마저 허무하게 끝났다. 큰마음 먹고 시간을 내서 사 왔는데 사고 나서 얼마 안 가 그 물건이 전혀 필요 없게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게 '액땜'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 된다. 충전기가 부러진 건 더 큰 가전제품이 고장 날 운을 막아준 것이고 여자친구 있는 사람의 밑도 끝도 없는 연락은 내 인생에 끼어들 뻔한 '질 안 좋은 인연'을 미리 걸러낸 증거다. 그리고 쓸모없어진 소비는 더 큰 투자 실수나 금전적 손실을 막기 위한 작은 수업료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제의 그 일들이 내 남은 액운을 몽땅 끌어안고 사라졌을 거라 믿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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