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울고 싶은 날이 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펑펑. 왕과 사는 남자가 슬프다고 해서 영화를 빌미로 펑펑 울어보려고 예매했다. 하필 제일 핫할 시간에 예매를 하고 곧바로 모자를 쓰고 출발했다. 영화 자체는 심플했다.
우리가 아는 역사에서 조금의 감정선을 넣은 스토리.
문득 예고편에 나오는 박지훈의 정말 인생을 다 산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정말 죽음만을 기다리는 다 잃은 얼굴을 말이다. 모든 권력을 다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는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선택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내 의지로 무언가를 선택해 본 적이 없는 17살 허수아비 왕. 단종.
지금은 조선시대도 아니고, 신분제도도 아니다. 옛날만큼 개천에서 용 나는 게 쉽지 않다고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생각한 것은 아, 나는 신분제도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왜 선택을 하지 못할까.
지금 나는 쉰 청년의 2년을 맡고 있다. 그래서 이력서를 쓸 때도 어딘가에 지원할 때도 내 나이가 발목을 잡는다. 계속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해왔고 나름 나는 자부심이 있었다. 첫 직장을 잘 성공적으로 매듭지었고 그 권태로움 대신에 야망을 선택했다. 조금 더 큰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기를 가지고 싶었다. 내가 잘하는 것은 뭘까. 사람들의 말도 좋아하고 오지랖도 좋아하고 사람관리 하는 걸 좋아하니 인사를 하고 싶었다. 인사팀에서 막내로 일하면서 온갖 더러운 일을 하면서도 배움의 목이 말랐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자격증을 따고 싶었고 나중에 내 정년이 노무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일을 다니면서 노무사를 따면 그걸 따는 내 모습이 나한테는 엄청난 성취감을 들게 하지 않을까. 그렇게 미래를 그리는 게 행복했다.
인사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 열심히 했고 그 열심히의 방향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업무로 내 능력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증명하려고 했다. 내가 가진 웃음과 젊음으로 내 위에 남자 아저씨들을 상대했고 거기서 단순히 "사고"를 당한 것이다. 여기서 내 잘못은 없다. 그러나 그 "사고"로 나는 내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마치 단종처럼 말이다. 모든 걸 잃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처럼 말이다.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우울감이 울컥울컥 치밀어 오를 때마다 뭐를 떠올려야 할지 모르겠다. 누구나 삶의 주인공을 나라고 생각하고 잘 살고 싶어 한다. 나도 치열하게 잘 살고 싶다.
그러다 문득 왕과 사는 남자에서 제일 오열했던 부분이 떠올랐다. 이홍위를, 단종을, 구 학기 위해서 모였던 지지세력들의 싸움이 말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맞서는 정의로운 사람이, 나에게는, 제일 큰 가치였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자 했다. 내가 누군가를 서포트하는 사람관리의 일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가치"를 위해서 맞서서 소신 있게 단단하게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였다.
나는 비록 "사고"에서 소신 없이 줏대 없이 쓰러졌지만 아직 조금의 용기가 남아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달린다. 목표는 땀이 날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