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질문

뒤늦은 후회와 뒤늦은 깨달음: 덜 자란 나의 성장통

by 덜자란사십대

다단계에 있을 때, 가끔 외출할 기회가 있었어요. 오랜만에 집에 가서 좀 쉬고 있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진 거죠. 제가 늘 들고 다니던 가방을 같은 숙소 형이 잠시 썼는데, 그 안에 모르는 사람 연락처와 그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적힌 '영업 메모' 같은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어머니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방을 뒤져보셨다가 그걸 발견하신 거죠.


어머니는 그 메모들을 보시고 울면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제발 그 일 그만두면 안 되겠니?" 그때 제가 어땠냐면, 일도 잘 안 풀리고 숙소에서도 제대로 적응 못 해서 되게 좌절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속으로는 '아, 이거 그만둘까?' 하는 고민을 정말 셀 수도 없이 하고 있었어요.


근데 그때 당장 "네, 그만둘게요!" 하고 말씀드리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 조직 안에서는 먼저 포기하고 나가는 사람을 '패배자'로 낙인찍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 시선도 무섭고, '혹시 저도 저 사람들처럼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발목을 잡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만두지 않았으면 더 크게 후회했을지도 몰라요. 돌이켜 보면, 거기서 진짜 성공했다고 할 만한 사람은 제가 2년 동안 지켜본 사람 중에 열 명도 안 됐던 것 같거든요.


그렇게 어머니의 눈물 덕분에 다단계를 그만두게 됐어요. 거기서 나와서 다른 일자리를 구하고 일하기 시작했지만, 2년이라는 시간이 제 인생에 너무 큰 구멍을 남긴 거죠. 대학교는 결국 자퇴하게 됐고, 군대 제대하고 짧게나마 쌓았던 경력도 다 끊겨버렸지 뭐예요. 좋은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었고, 학교도 못 다니는 신세가 되니까 그때는 진짜 너무 후회되더라고요.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에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그때 제가 품었던 그 마음들이랑 노력들을 과연 그냥 아무 의미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그 방식이랑 환경이 잘못됐다 해도, 잘 해내고 싶었던 제 열정,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고 싶었던 진심, 그리고 돈 벌어서 가족 돕고 싶었던 그 순수한 마음만큼은 진짜였던 것 같아요. '덜 자란' 시절의 저는 좀 잘못된 길에서 헤매긴 했지만, 그 진심 어린 방황 덕분에 뭐가 진짜 성공이고 소중한 관계인지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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