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그리고 머묾의 시작

by 덜자란사십대

군대 제대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대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죠. 주말에는 웨딩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 수입으로 평일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학비도 어렵고 집 경제 사정도 좋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는 정말 필수였죠.


하루하루 버텨내듯 살아가던 그때, 군대에서 먼저 제대한 친구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요즘 뭐 하면서 지내냐고 묻기에 아르바이트하면서 지낸다고 이야기했더니, 이번 여름에 자기가 좋은 일자리가 있다며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하더군요.


근데 그 제안 중에서 저를 가장 끌리게 했던 건 바로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요. 친구는 그곳에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강조했거든요. 저는 사실 대학 생활하면서 사람 대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였거든요. 낯선 환경, 새로운 관계들 속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마음을 열어야 할지 늘 고민이었습니다. 그런 저한테 '좋은 사람들'이라는 말은, 어쩌면 돈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했던 위안이었는지도 몰라요. 물론 돈도 절실했고요. 방학 동안만 일해서 돈을 많이 준다는 그 말은, 당시 학비와 생활비에 허덕이며 극심한 경제적 압박을 느끼던 저에게 엄청나게 큰 유혹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친구 손을 잡고 그곳으로 향했는데, 저를 오라고 했던 친구한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소개해줬던 일이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니고 방문 판매라는 거예요. 그것은 소위 말하는 '다단계'였습니다. 저는 곧바로 안 한다고 돌아서서 집에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가 계속 저를 붙잡더라고요. 하루, 아니 이틀만 있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죠. 어차피 돌아가 봐야 할 일도 없는데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어서 알겠다고 하고 그곳에 머물게 되었어요.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다 보니, 그곳 사람들이 정말 제게 극진히 잘해주는 겁니다. 작은 것에 칭찬하고, 격려하고, 밥도 살뜰히 챙겨주었죠. 저는 어디서도 그렇게 대접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 따뜻한 친절이 너무 좋았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모든 것이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그들의 '작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들이 제게 베풀었던 그 따스함은 아직도 저에게 너무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덜 자란' 20대였던 저는, 그들의 의도된 친절에 서서히 마음을 열고 말았어요. 외로움에 굶주렸던 저는, 그 의도된 친절이 비록 거짓일지라도 당장 필요한 위안이었기에 현실의 경계심을 놓아버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단계라는 곳에 2년 가까이 머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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