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라는 말이, 어쩌다 내 감정을 집어삼키는 무기가 되었을까. 나는 늘 웃고, 늘 양보하고, 늘 괜찮다고 했다. 상대방이 불편할까 봐 말끝을 흐리고, 불쾌한 순간에도 애써 웃어 넘겼다.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내 안에 피어오른 불쾌함과 분노를 감췄다. 그렇게 나를 가리는 데 익숙해졌다. 착한 사람이라는 말, 그건 늘 타인을 위한 내 역할이었다.
그 역할이 나를 삼켜버렸다. 기분 나빠도 애써 넘기고, 마음에 안 들어도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는 법을 몰랐고, 속상해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인정받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넌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내 감정 하나쯤은 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착한 척을 하면 할수록, 내 감정은 자리를 잃었다. 화나도 화낼 수 없고, 싫어도 싫다고 말할 수 없고, 지쳐도 쉬자고 말할 수 없었다. 대신 “괜찮아”, “아니야, 별일 아냐” 같은 말들이 내 입에서 자동처럼 나왔다. 감정의 생략이 습관이 되고, 결국엔 진짜로 내가 뭘 느끼는지조차 모르겠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밉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게는 밉기만 한 사람이 되어갔다.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죄책감을 느껴야 했고, 불편한 감정을 얘기하면 누군가가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 감정은 늘 타인의 기분을 먼저 고려한 후에야 꺼낼 수 있었고, 그조차 꺼내지 못한 채 삼킨 날들이 많았다. 그렇게 쌓인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에서 곪아갔다. 눈물도 나지 않을 만큼 무뎌지고, 말문도 막혔다.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해받지 못할 걸 알았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착한 ‘척’을 하며 버티는 사람이었구나. 마음은 늘 불편했고, 감정은 늘 억눌러졌으며, 말하지 못한 수많은 문장들이 내 안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내가 바란 건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그냥 나다운 사람이 되는 거였다.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이제는 좀 달라지고 싶다. 거절하는 것도 연습하고 있고,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가 실망할 수도 있고, 나를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것까지 다 나의 책임은 아니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잘 보일 이유가 없다. 그렇게 하나씩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고 있다.
감정을 드러낸다고 해서 이기적인 게 아니고, 불편함을 표현한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진짜 관계는 그 안에서 시작된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 때, 진짜 나를 사랑해줄 사람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더는 착한 척으로 관계를 연명하지 않을 거다. 착한 사람이 되는 대신, 나를 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는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보다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쪽을 택한다. 불편한 건 불편하다고 말하고, 힘든 건 힘들다고 표현한다. 그렇게 해서 얻는 관계라면, 더는 혼자 감정을 삼키지 않아도 되는 관계일 거다. 착한 척을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나는 내가 느낀 감정을 지키면서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미안하다고 말하기 전에, 진짜 내 마음부터 묻기로. 괜찮은 척하지 않고, 내가 괜찮아질 수 있는 선택을 하기로. 나를 지우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기로. 착한 척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매일 연습하며, 그렇게 조금씩 나를 되찾아가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