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하며 살아왔다. 지하철 문 앞에 잠깐 서 있었다는 이유로, 회식에서 먼저 나간다는 이유로, 누구보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도 표정을 밝게 짓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안하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몸에 밴 탓에, 내가 불편함을 느꼈을 때도 사과부터 했다. 그 말이 때론 내 감정을 무시하게 만들고, 내 입장을 지워버리는 도구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근데 이제는 정말, 그 말이 싫어졌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자꾸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순간들이 너무 많다. 내가 조금 힘들어하는 것도 누군가에겐 민폐일까 봐, 내 사정 설명도 하기 전에 “미안해”라고 선수를 쳤다. 이유를 설명하고 감정을 나누는 대신, 사과로 다 덮어버리는 습관. 이건 배려가 아니라 나를 줄이는 방식이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많았다. 늦은 밤 연락이 와도 피곤해서 답을 안 했을 뿐이고, 혼자 있고 싶어서 약속을 미뤘을 뿐인데, 나는 그럴 때마다 "미안, 내가 너무 예민했지?"라고 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너무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근데 진짜 너무했던 건 나였던 것 같다. 내 마음을 너무 모른 척하고, 내 감정을 너무 함부로 넘기고.
세상은 자꾸 나한테 말한다. 착하게 살아야 하고, 둥글둥글해야 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게 너무 숨 막혔다. 왜 모든 관계의 마무리가 내가 먼저 사과하는 걸로 끝나야 했을까. 서로 상처받았는데도, 늘 내가 먼저 미안하다 말하고. ‘괜찮다’는 말도 내가 먼저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나를 놓치고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할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그 실망을 감당하기 위해 자꾸 나를 깎아내리는 건 지쳤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 마음을 돌봐야 한다. 미안하다는 말 뒤에 숨는 게 아니라, “지금 나도 힘들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용기라는 걸 알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미안하다는 말은 분명 따뜻한 말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때, 잘못을 인정할 수 있을 때 그 말은 깊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이 남을 위한 방패가 아니라, 나를 향한 칼이 될 때, 그건 진심이 아니다. 그냥 침묵보다 나은 무기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그런 무기로 나를 감싸고 싶지 않다.
나는 나대로 살아도 된다. 기분이 나쁜 날도 있고, 실수하는 날도 있고, 아무 말도 하기 싫은 날도 있다. 그런 날들조차 ‘미안해’라는 말로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내 마음을 솔직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나 자신에게까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 이제는 조금씩 바꿔보려 한다.
사람들에게 잘하고 싶지만, 그게 나를 잃으면서까지는 아니어야 한다. 솔직해지고 싶다. 괜찮지 않으면 괜찮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감당하기 어려우면 힘들다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 그걸 듣고 서운해하더라도, 그건 내가 책임질 감정이 아니다. 내 감정 하나조차 설명하지 못한 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미안하다는 말, 꼭 필요한 순간에만 아껴두려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죄책감을 덧씌우고, 나를 작게 만드는 방식으로는 쓰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을 숨기는 말이 아니라,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조금씩 나에게 솔직해지고 싶다. 내가 살아가는 하루가 더는 변명으로 가득하지 않도록.
오늘 하루도 수십 번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그중 단 한 번만 진심이었다. 나머지는 그냥 살아남기 위한 습관이었다. 내일은 그 습관을 조금 덜어낼 수 있기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미안해”가 아니라,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라는 걸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