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려다 병 날 뻔

by 괜찮지않은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불편한 사람이 되지 않고, 말 한 마디에도 배려가 묻어나며, 타인의 입장을 먼저 헤아릴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 세상에서 덜 미움받을 것 같았다. 사람들의 인정과 호감을 얻고 싶었다. 무례하지 않고 상냥하게, 적당히 듣고 적당히 웃으며 공감하는 사람. 그렇게 살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 마음보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살폈다. 싫어도 웃었고, 불편해도 애써 이해하려 했다. 화가 나도 나쁜 사람으로 보일까 봐 꾹 참았다. 누군가 부탁하면 거절은 선택지에 없었다. “그래, 괜찮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말 속엔 내가 없었다. 괜찮지 않은 날에도 괜찮다고 말해야 했고, 내 감정은 늘 뒷순위였다. '좋은 사람’이라는 틀에 갇혀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어느 순간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자주 두통이 오고, 이유 없이 잠이 안 왔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온몸이 무거웠다. 병원에 가봤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했다.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말만 들었다. “조금 쉬세요.” 그 한마디로 돌려보내졌지만, 나는 뭘 어떻게 쉬어야 할지도 몰랐다. 감정적으로 피폐해졌다는 건 그때 처음 인정했다. 문제는 감정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전체가 무너져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강박은 의외로 깊고 단단했다.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버려지지 않고 싶다는 마음은 그 강박을 점점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오해하면 어쩌지, 뒤에서 흉보면 어쩌지, 이런 걱정들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늘 조심했고, 말수를 줄였고, 감정을 감췄다. 그렇게 나를 지우는 방식으로 ‘좋은 사람’을 연기했다.

그러다 결국 번아웃이 왔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인간관계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심지어 내 이름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나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누구의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했고, 기대에 부응하는 나만이 존재할 자격이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런 착각 속에서 나는 나를 소모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척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진짜 좋은 사람이란, 자기 마음도 살피고 남의 마음도 아끼는 사람이다. 나는 내 마음을 돌보지 못한 채 남의 기분만 챙기며 살았다. 그것이 배려인 줄 알았지만, 나에게는 폭력이었다. 나를 챙기지 못하면서 남을 챙긴다는 건 위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연습하고 있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 불편한 건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 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 ‘아니요’라는 한 마디를 말하는 데 하루가 걸려도, 그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믿기로 했다. 다정함과 호구는 다르다는 걸, 배려와 자기부정은 다르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먼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 감정을 무시하고, 내 필요를 외면한 채 살아간다면 그건 결국 나를 병들게 만든다. 진짜 좋은 사람은 자신을 지키면서도 타인을 향한 따뜻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이제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려다 병 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자고. 지금 나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냐고.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희생하고 있지는 않냐고. 결국,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는 걸 잊지 말자. 그렇게 조금씩 나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어가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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