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눈을 떴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방, 여전히 숨 막히게 버거운 현실, 그리고 아무런 계획도 의욕도 없이 시작된 하루. 하지만 어쨌든 나는 일어났고, 씻었고, 밥을 먹었다. 혹은 아무것도 못 했지만, 살아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어쩌면 오늘을 충분히 버틴 거였다.
세상은 끊임없이 말한다.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미래를 설계하라고, 끊임없이 노력하라고. 꿈이 있어야 한다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그래야만 가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하지만 나는 어느 날, 더는 목표가 떠오르지 않는 순간을 맞이했다. 하고 싶은 게 없었고,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냥 이불 속에서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루를 살아내는 일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나 큰 숙제였다.
무기력함은 천천히 스며든다. 처음엔 ‘좀 쉬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이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들이 나를 잠식한다. 다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나만 멈춰 있는 기분.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나만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착각. 그래서 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침대에 틀어박혔다. 눈을 감고, 세상을 차단하고, 그렇게 또 하루를 버텼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묻는다. “너 요즘 뭐해?” “계획은 있어?” “앞으로 뭐 할 거야?”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자꾸 무너지고 있었다. 성취 없이 흘러가는 하루가 자꾸만 죄책감으로 변했고, 그 죄책감은 다시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하고 싶다. 그런 하루도 분명히 의미가 있었다고. 목표 없이 보낸 하루가 무가치하지 않았다고. 그날의 나는 그냥 살아내는 게 전부였고, 그걸 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거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루를 끝냈고, 그렇게 또 다음 날을 맞이했다는 게 중요했다. 그건 나만 알고 있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생존의 기록이었다.
세상은 ‘무언가를 해야만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가르치지만, 나는 반대로 느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존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가치라고. 숨 쉬고 있는 것 자체가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그 하루가 목표가 없었다 해도, 그 안에서 나는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때론 그런 무의미한 날들이 쌓여,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사실 어떤 날은 목표를 세우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미래를 떠올리는 것조차 벅차다. 그런 날들에는 그냥 버티는 것이 최선이고, 살아 있는 것이 성취다. 그런 하루를 버텼다는 이유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해줘야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만큼은 그 하루의 무게를 알고 있으니까.
목표 없이 살아간다고 해서, 의미 없이 살아가는 건 아니다. 남들이 보기엔 무기력한 하루였지만, 그 안에는 나만의 싸움이 있었다. 무너진 마음을 붙들고, 불안한 마음을 눌러가며, 그저 존재했다는 것. 그건 절대 작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쉬지 않고 달릴 수는 없다. 때론 멈춤이 필요하고,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나는 다만 지금, 내 삶의 숨 고르기 구간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말해주고 싶다. 아무 목표 없이 하루를 버텨낸 당신, 정말 잘한 거라고. 그 하루를 견뎌낸 당신은 약한 게 아니라 단단한 사람이라고. 세상의 속도에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고. 언젠가 다시 움직일 수 있을 때가 오면, 그때 천천히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중요한 건 지금도 살아있다는 거,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도 그저 숨만 쉬고 있었다고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목표가 없었다고 해도, 너는 무가치한 게 아니야. 멈춰 있는 것 같아도, 네 안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을 거야. 그러니 괜찮아. 네가 지나온 그 하루는 결코 헛되지 않았어.